“한땐 전기료 납부액 김해서 1등이었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집집마다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품이었지만 사라져 가는 것을 찾는다면 ‘성냥’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불을 때서 밥을 해먹던 시절만 해도 성냥이 없으면 불을 지필 수가 없었다.

▲ 안종삼(왼쪽) 전무가 예전에 만들었던 성냥을 들어보이고 있다. 오른쪽은 오덕규 관리사장.
석유풍로가 있을 때만 해도 그랬고 집들이 선물로 성냥이 빠지지 않았다. 그러나 값싼 1회용 라이터가 대량생산되고 아궁이와 석유풍로 대신 가스레인지가 대중화되면서 성냥은 우리 곁에서 사라져 갔다.

성냥이 태어나는 곳을 찾아갔다. 김해 진영읍 진영고등학교 인근에 위치한 오래된 공장, 경남산업공사. 지난 48년 고 조병철 씨가 창립자인 이 공장은 그의 딸 조창순(77) 씨가 가업을 이어받아 10년 전까지만 해도 직접 운영을 했었다. 지금은 오덕규(74) 관리사장과 안종삼(64) 전무가 운영을 맡고 있다.

한 개비 확 타버리 듯이 짧은 전성기를 누렸던 성냥의 기원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180년에도 못 미치는 근대 발명품.

성냥의 종류를 말하자면 벽이나 서부영화의 카우보이가 구두굽에 그어서 불을 붙이던 마찰성냥, ‘딱성냥’이라고 불렀다. 주재료인 황화인의 인체유해문제로 우리나라에서는 생산이 금지됐다.

48년 창업 김해 공장 1호제70년대 직원 150명 현재 15명

흔히 생각하는 성냥이 바로 안전성냥, 나뭇개비 끝에 묻은 발화연소제를 성냥갑의 마찰면에 그으면 불이 붙는 성냥이다.

경남산업공사에서 생산하는 것은 안전성냥으로 통성냥과 갑성냥. 통성냥은 모양에 따라 두 가지. 성냥개비 550개가 들어가는 사각통 성냥은 주황색 뚜껑에 ‘신흥’이라는 글자 사이에 화로 그림이 눈에 익다. ‘불조심하여 내 생명 내 재산 보호하자 화재신고는 119’라는 표어문구도 보인다. 붉은 글씨로 박혀 있는 ‘반공방첩’이라는 글귀는 지난 시간들의 단면을 보여준다.

동그란 통성냥, ‘기린표’라는 상표에 기린이 달려가는 그림이 그대로다. 동그란 통성냥은 수도권, 사각통 성냥은 영남권과 전국의 해안도시와 전국사찰을 석권했단다.

진례·한림면장을 끝으로 공직에서 물러나 진영농협조합장을 맡기도 했던 오 사장은 조창순 사장과 친분이 있어 지난 89년부터 관리를 맡고 있다.

오 사장은 “창립 당시만 해도 김해에서는 공장 1호에 물량이 많을 땐 전기요금도 제일 많이 냈을 정도로 잘 돌아갔다”고 전했다.

전국에 300군데에 이르던 성냥공장은 88 서울올림픽 전후로 사양길로 접어들기 시작해 지금은 진영에 한곳, 경북 의성에 있는 성광성냥 단 두 곳만 남고 모두 문을 닫았다고 했다. 직원 수만 150명이던 70년 초반만 해도 이틀에 6t짜리 한차 가득 실어 서울로 보내기도 했단다. 당시만 해도 성냥과 양초만 싣고 마을을 돌아다니는 장사꾼이 있을 때다.

88서울올림픽 전후 사양길 한때 300곳 성업 지금은 단 2곳

   
한국에서 공산품이라고는 특별한 게 없던 시절 중동지역과 아프리카로 수출도 했단다. 그러던 전성기를 뒤로하고 지금은 직원 열 다섯 명.

한평생을 이 공장에 뼈를 묻은 안 전무는 “지금은 광고사나 잡화상에서 주문을 받아 만들고 있지만 예전에 국회의원선거 때 후보자들이 성냥을 선물로 돌리던 시절도 있었다”고 했다. 조창순 사장의 고종사촌동생인 그는 서울지사장으로 오랫동안 있다 10년 전 내려와 공장을 도맡아 있다.

성냥이 만들어지는 공정은 복잡하다. 버드나무 등의 원목을 가로, 세로 2.2㎜로 잘라내는 축목을 거쳐 나뭇개비 끝에 황, 송진 등의 가연제와 염소산칼륨 등의 산화제를 바르는 윤전과정, 성냥개비를 통에 넣는 입갑, 갑에 적린(붉은 인)을 바르는 공정, 선별, 포장으로 마무리된다. 도안이 그려진 성냥갑도 똑 같은 크기로 재단을 거쳐 모양을 갖추게 된다. 나뭇개비에 염소산칼륨 등을 묻히기 전해 파라핀을 한번 먹이는데 이유는 나뭇개비에 불이 잘 옮겨 붙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답배 한 곽과 비슷한 개수로 20개비 이상 들어가는 갑 성냥은 기계화 공정이지만 통성냥은 손으로 일일이 담는 수작업, 그래도 숙련공은 한번에 개수를 채워 넣어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다.

성냥산업이 쇠퇴하면서 이 공정 중에서 성냥 알맹이를 만드는 과정은 사라져 몇 년 전부터 중국에서 모두 수입해온단다. 안 전무는 “천지에 나무가 있어도 운반해줄 업자도 없고 수요도 그렇게 많지 않으니 기계를 다 처분하고 이제는 수입해서 쓴다”며 “우스개 소리로 삼성의 이병철이 같으면 싸고 돈 안 된다고 성냥 안 만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전국이 판로이긴 하지만 겨우 호텔이나 카페의 홍보성냥 주문물량과 유통업체 주문이 고작이다. 사정이 이러니 적자라 언제 문을 닫을지 모른단다. 오 사장은 “성냥 팔아먹자고 하는 말이 아니라 후세에 물려줄 환경을 생각을 했으면 한다”며 “1회 용품규제처럼 1회용 플라스틱 라이터도 국가시책으로 제한을 했으면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안 전무도 “잘사는 네덜란드 같은 나라도 모두들 성냥을 사용하지 1회용 라이터는 찾아 볼 수 없었다”고 거들었다.

“네덜란드 1회용 라이터 없어…정부, 환경 고려 규제해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시장에서 성냥 알맹이만 파는 장사를 볼 수 있었다. 통성냥 알맹이를 다 쓰고 나면 알맹이만 사다 채웠던 시절, 통의 빨간 마찰면이 닳아 몇 번이나 그어도 불이 붙지 않을 정도까지 사용했던 시절. “그때가 인심이 좋았다”는 안 전무의 말처럼 그리운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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