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 부족으로 인한 민심 이반을 자초한 게 '두려워서 마음이 거북했다'는 의미의 '송구'만 있고, 그 '송구'가 있게 한 허물에 대한 용서 빌기는 생략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엄밀히 따져 논한다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와 '사과 드린다'는 동일 개념의 말로 볼 수 없는 것입니다.
50~60년대(?) 초등학교 국어책에 실렸던 동시 <낮달>은 사과의 전범(典範)이라 할 만합니다. '틀렸니? / 틀렸니? // 용서 해 응. // 장난이댔어! / 장난이댔어! // 미안했어. // 틀어져 / 가 버리는 / 동무 등을 // 하아얀 낮달이 / 보고 있었다.'
역대 대통령 측근들 속엔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판 아첨꾼이 많았습니다. "대통령님, '사과'를 '송구'로 얼버무리시면 아니 되옵니다" 하는 직간(直諫)도 있어야 합니다.
인도네시아 전 대통령
메가와티는 질타했다죠
"내 주변엔 아첨꾼 많다
상황 나빠도 진실 말하라"
그 사실
정수리 찬물로 삼는
청와대 좀 볼 수 없나.
/전의홍(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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