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3.7%인 국공립 어린이집은 지금 입소 전쟁…접수 이틀 전부터 길가 장사진

맞벌이 엄마 아빠는 정말 피곤하다. 조금이라도 아이를 잘 봐줄 어린이집을 찾아 등록 이틀 전부터 나와 줄을 서야 했다. 하룻밤을 새우는 것도 모자라서 또 밤을 새워야 한다. 최근 선착순으로 영유아를 모집하는 진해 한 공공기관 어린이집 앞 풍경이다.

7일 오후 2시 창원시 진해구 진해 연세병원과 농협 하나로마트 사이 도로변에 있는 한 어린이집 앞에는 장사진을 이뤘다. 두꺼운 옷을 입고 야외용 간이의자에 앉은 30대 여성과 남성, 종이상자 위에 쓰러져 있는 60∼70대 여성 등 50여 명이 노숙 중이었다. 밤에는 담요와 간이난로까지 등장했다.

근로복지공단이 운영하는 진해 어린이집 앞에 줄을 선 이들은 내년 영유아 자녀를 이곳에 맡기려고 온 부모나 부모를 대신해 온 할머니들이었다.

어린이집 입구에는 '매년 과도한(숙박) 관심의 입소 대기열로 주변 상가와 보행자 불편이 초래돼 민원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대기는 8일 접수 당일 해 주십시오. 8일 오전 10시부터 어린이집 뒷마당을 엽니다'는 안내문까지 붙어 있었다.

보건복지부 어린이집 운영 지침에 따라 대부분의 어린이집은 11월 초부터 12월까지 입소 대상 신청을 받아 선정한다.

비교적 앞줄에 서 있던 김모(여·35) 씨는 "7일 새벽 3시부터 나와 있다. 저녁에는 퇴근한 남편이 나 대신 줄을 설 것이다. 내년에 복직해야 하는데, 마음 놓고 아이를 맡길 어린이집이 너무 적다. 퇴근하고 오면 오후 7시에서 7시 30분 정도 되는데, 그때까지 마음 놓고 아이를 맡길 곳을 찾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박모(여·61) 씨는 "일하는 딸 대신 줄 서고 있다. 저녁에는 딸이 와서 설 것이다"고 했다. 김 씨에 따르면 민간 어린이집이나 주택을 고친 가정 어린이집은 오후 7시까지 아이를 봐주지만 이후에는 야간 보육료를 따로 내거나 매일 시간에 쫓기면서 퇴근해야 한다고 했다. 김 씨는 "이곳은 다른 어린이집보다 30분 넘게 아이를 돌봐 줘 30분 차이가 천당과 지옥"이라고 했다.

7일 오후 2시 창원시 진해구 이동 진해근로복지공단 어린이집 앞. 내년에 아이를 이곳에 보내려는 부모들이 이날 오전 3시부터 줄을 지어 기다리고 있었다. /이시우 기자

창원시 진해구 국공립 어린이집은 이곳을 포함해 7곳이다. 이곳 이외는 시가 운영한다. 김 씨는 "시립 어린이집은 보통 오후 6시까지 봐줘 맞벌이 부부가 아이를 맡기기 쉽지 않다. 설령 들어가려 해도 대부분 서류 전형으로 뽑아 일반 맞벌이 부부 아이는 들어가기 정말 어렵다. 저소득층·기초수급권자·차상위 계층·장애인 부모·국가유공자 자녀가 아니면 못 들어간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이곳은 근로복지공단이 운영해 맞벌이 부부이고 이렇게 빨리 와서 줄을 서면 대부분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근로복지공단 운영 어린이집은 시립 어린이집과 달리 부부가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으면 최우선 입소 대상 자격이 된다. 진해 근로복지공단 어린이집 관계자는 "선정 방식을 선착순으로 할 때도 있고, 추첨을 할 때도 있다. 선착순일 때 부모님들이 이렇게 줄을 서 계시면 오히려 우리가 죄송스럽기도 하다"면서 "내년에는 퇴소하는 영유아를 기준으로 45명을 새로 뽑는다. 전체 입소 영유아는 158명"이라고 말했다.

창원 근로복지공단 어린이집 앞도 이맘때면 노숙자(?)로 가득하다. 국가에서 보육료가 나온다고는 하지만 출·퇴근 시간이 빠듯한 맞벌이 부부에게 마음 놓고 맡길 어린이집 찾기에 11월은 가히 전쟁이다. 이 어린이집은 9일 오후 7시 30분에야 서류를 받아 여기에 모인 이들은 꼬박 이틀을 길에서 지내야 한다.

영유아 부모들은 추가 비용 요구도 거의 없고, 시나 공공기관이 운영해 상대적으로 마음 편하게 아이를 맡길 수 있는 국공립 어린이집 선호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고 했다.

7일 경남도에 따르면 도내 어린이집은 올 9월 말 현재 3619곳으로 이중 자치단체와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국공립 어린이집은 전체의 3.7%(133곳)밖에 되지 않았다. 이외 사회복지법인 2.8%, 법인단체 등 1.4%, 기업체 0.7%이다.

주택이나 아파트를 고친 가정 어린이집은 60.6%로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이보다 규모가 있는 민간 운영 어린이집은 30.8%였다. 가정·민간 어린이집이 전체의 91.4%에 이르렀다.

이를 두고 4살짜리 여아를 둔 임모(36·창원시 마산합포구 월영동) 씨는 "부모들은 당연히 국공립 어린이집을 선호한다. 그런데 시립은 워낙 경쟁이 치열해 들어가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데다가 오후 6시면 마쳐 나처럼 오후 7시에야 일이 끝나는 직종의 엄마는 선택하기 어렵다"며 "시립 어린이집 운영시간도 좀 늘려주고, 국공립 어린이집도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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