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경남' 마지막 취재라 감내

지리산 물…. 참 막연한 주제였다. 갈피를 잡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뭔가가 필요했다. 자료를 찾아보니 남강 발원지인 천왕샘이 눈에 들어왔다. 천왕봉(1915m) 아래 자리한 천왕샘은 '지리산 물'의 시작점이자 곧 '지리산 물 취재'의 출발점이었다.

중산리∼법계사∼천왕봉 코스로 오르기로 했다. 등산 경험이 거의 없는 나로서는 힘겨운 여정이 될 게 분명했다. 산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미안한 노릇이지만, 국립공원 협조를 얻어 차도가 있는 곳까지는 최대한 자동차로 이동했다. 환경교육원이 마지노선이었다. 국립공원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환경교육원에서 천왕봉에 오르려면 3시간은 가야 한다"고 했다.

권범철 기자와 나는 그렇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마실 물 한 병도 준비하지 않은 채였다. '3시간 동안 참았다가 천왕샘 물을 마시면 꿀맛일 것'이라며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하긴, 계곡 물이 계속 따라다니고 있어 걱정할 문제도 아니었다. 산행한 지 20분 정도는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탄력이 붙으니 조금씩 나아졌다. 그러자 주변에 있는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계곡물이 우렁차게 쏟아지는 모습이야 그리 새로울 것이 없었지만, 새벽이슬 머금은 새싹·줄기·꽃잎은 가쁜 호흡을 잊게 해주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한 걸음씩 오르다 보니 어느새 법계사 아래까지 왔다. 그런데 계곡에는 거품 가득한 세제 물이 흐르고 있었다. 저 아래 계곡에서 목을 축였던 것이 매스꺼운 기억으로 다가왔다. '계곡 물은 1㎞만 흐르면 정화된다'는 누군가의 말로 애써 잔상을 지웠다.

   

법계사를 지나 다시 1시간 조금 넘게 산을 오르자 천왕샘이 보였다. 물맛부터 봤다. 시원하면서 입에 착착 감겼다. 텁텁한 느낌의 아래 약수와는 확실히 달랐다. 천왕샘 물소리를 들으며 '이 작은 샘이 흐르고 흘러 큰 강을 이루는 것'에 대한 경외감을 잠시 느끼려는데, 권범철 기자가 "내려가자"고 했다. 2시간 30분을 올랐지만, 천왕샘 물맛을 보고, 소리를 듣고, 사진을 찍고, 하산 준비까지 10분이면 충분했다.

내려오는 길은 역시나 무릎·발목을 힘들게 했다. 산을 오르고 내리는 것에 그리 익숙하지 않은 나는 꽤 힘든 길이었다. 그래도 1년 가까이 진행한 '맛있는 경남'의 마지막 취재라 감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잊고 있었던 게 있다. 이 기획이 끝나면 새로운 기획이 기다리고 있다. 다시 지리산에 오를 일이 분명히 있을 것 같다. 그나마 산행을 끝내고 나서야 이 점을 알아챈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이 취재는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기업 ㈜무학이 후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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