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무학여고 역사동아리 '리멤버'…피해 할머니들 돕는 방법 고민하다, 직접 배지 제작·판매·수익금 적립

마산무학여고에는 '리멤버(Remember)'라는 다소 특별한 자율 동아리가 있다. '리멤버'는 위안부, 독도, 동북공정 등 다양한 역사 문제를 알리고, 잘못된 역사 인식을 바꾸고자 올해 초 만들어진 교내 학생모임이다. 현재는 조윤수 동아리장을 비롯해 김조은, 이연수, 김미소 등 2학년 학생 4명이 활동 중이다.

애초 이들은 역사, 디자인 등 관심 분야가 달랐지만 동아리 결성 이후 '위안부 피해 할머니 문제'라는 공통의 관심사가 생겼다. 모임을 결성한 이들은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찾다 직접 배지를 제작·판매해 수익금을 할머니들을 위해 쓰자고 의기투합했다.

동아리 결성을 제안한 조윤수 학생은 "평소 역사왜곡이나 빼앗긴 문화재 등에 관심이 많았는데 이 뜻에 공감하는 친구들이 모여 '리멤버'를 만들었다"면서 "많은 학생이 위안부 문제를 잘 모르기 때문에 먼저 알리는 게 급선무라 생각해 배지를 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왼쪽부터)마산무학여고 자율 동아리 '리멤버' 김미소, 조윤수, 이연수, 김조은 학생.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위한 일을 고민하다 직접 배지를 제작, 판매해 그 수익금을 마산의 한 병원에서 요양 중인 김양주 할머니에게 지난달 전달했다. /마산무학여고

배지 디자인은 평소 광고 디자인에 관심이 많은 김조은 학생이 맡았다. 흔히들 위안부 할머니를 '못다 핀 꽃'에 비유하는 걸 본떠 배지는 웃는 소녀 얼굴을 형상화했고, 머리에는 물망초 꽃 모양의 머리핀을 앉혔다. 물망초는 꽃말이 '나를 잊지 말아요'라는 데서 착안했다.

김조은 학생은 "재능 기부로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어 기뻤다. 할머니께 내가 직접 디자인한 배지를 달아드릴 때 가슴이 울컥했다"면서 "배지를 판매하면서 친구들과 위안부 할머니에 대해 많은 부분을 공유하게 돼 만족한다"고 말했다.

'리멤버'가 만든 배지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무학여고 학생만을 대상으로 한 1차 판매에서 450개가 팔렸다. 이들은 배지를 홍보하고자 1학년 1반부터 3학년 10반까지 모든 학급을 돌며 메시지를 전달했다. 배지를 교복이나 가방에 단 사진이 사회 관계망 서비스(SNS)를 통해 올라오자 인근 학교에서도 문의가 쇄도했다. 이들은 페이스북에 '리멤버' 페이지까지 개설하고 인근의 내서여고, 창신고, 마산여고, 용마고, 가포고, 함안고, 제일여고, 합포여중 등 8개 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총 1700개가량의 배지를 판매했다.

조윤수 학생은 "아직 학생 신분이나 쉬는 시간 틈틈이 만나 택배도 발송하고 다른 학교에 판매도 요청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무사히 판매를 마쳐 뿌듯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판매 수익금 중 제작비용을 뺀 200만 원을 가지고 지난주 마산우리요양병원에서 요양 중인 김양주(92) 위안부 할머니를 찾았다. 김 할머니는 당뇨 말기에 혈압도 높고 관절염이 심해 아예 걷지 못하는 상태다. 학생들은 할머니에게 직접 만든 배지를 달아주고 그동안의 활동도 설명을 드렸다. 몸이 많이 쇠약해져 의사소통이 어려웠지만, 할머니도 손녀 같은 학생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며 눈물을 훔쳤다.

지난 달 김양주 위안부 할머니를 찾은 '리멤버' 학생이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마산무학여고

학생들이 전달한 수익금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와 함께하는 마창진 시민모임'과 연계해 할머니의 집수리 비용으로 사용될 예정이다.

'리멤버' 지도를 맡은 허윤정 교사는 "학생들이 직접 위안부 할머니라는 의제에 맞게 배지를 제작, 판매해 수익금까지 전달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면서 "4명의 학생에서 출발한 작은 울림이 퍼져 8개 학교까지 판매가 이어진 것도 대단한 성과"라고 제자들을 대견해했다.

'리멤버' 회원들은 2학기 프로젝트도 고민 중이다. '리멤버'는 조만간 1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신입 회원도 모으고, 2학기에는 인근 중학교를 방문해 위안부 문제를 중심으로 강의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리멤버' 학생들은 이번 활동을 통해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을 많은 학생과 공유할 수 있었던 데서 의미를 찾았다고 입을 모았다.

3.jpg
▲ 학생들이 만든 '잊지 말자 위안부' 뱃지.

"또래보다 위안부 할머니에 대해 평소 관심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우리 지역에 할머니가 계시고 몸이 아픈 줄은 전혀 몰랐어요. 장래희망이 외교관인데 앞으로도 위안부 할머니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언지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계기가 됐어요."(조윤수)

"몸이 편찮으시지만 우릴 보고 한마디라도 더 하시려는 모습을 보고 좀 더 일찍 찾아갔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들었어요. 할머니가 하루빨리 건강을 되찾아 많은 이야기를 나눴으면 합니다."(이연수)

"배지를 만들고 판매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몰랐던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더 알게 됐다는 점에서 만족합니다. 최근 수요집회를 찾은 인근 학교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앞으로도 할머니들의 삶에 관심을 두는 친구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게 바람입니다."(김조은)

"병실에서 할머니를 뵌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 특히 할머니가 옷을 입혀드리려고 하면 꼬집거나 하는 등의 방어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말씀을 듣고 가슴이 찡했습니다. 간호사가 되고 싶은데 할머니처럼 어려운 처지에 놓인 분들을 정성을 다해 치료해드리고 싶다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습니다." (김미소)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