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회부터 주인공 시한선고, 인생 끝 아닌 과정의 연속…삶과 이별 속 충만한 사랑

우리는 매일 죽음에 한발 다가선다. '오늘이 내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이다,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이 어제 죽은 이에게는 그토록 소망하던 내일이었다' 등 여러 명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독려하지만 우리는 그저 오늘 하루를 버텨내려고 아등바등한다.

죽음은 그토록 아득한 이야기며 현실은 분명하고 치열하다.

드라마에서 '죽음'은 말 그대로 '드라마틱하게' 변주한다.

'시한부', '불치병' 등의 설정은 그저 눈물이 뚝뚝 묻어나는 신파를 더하거나 모든 일을 한 방에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처럼 활용된다.

죽음을 단골 소재로 다루지만 '죽음'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지는 드라마는 흔치 않다.

올해 방영된 드라마 몇몇을 복기해보자.

악연으로 얽힌 두 남녀의 이야기를 다룬 KBS2 <함부로 애틋하게>에서 '애틋'보다는 '함부로' 여주인공을 대했던 남자주인공의 행동은 불치병이 모두 빨아들이며 애틋한 로맨스로 갈무리했다.

자기 죽음을 이용한 신준영(김우빈)의 희생 덕분에, 노을(배수지)은 아버지 사고로 맺힌 억울함을 단박에 풀 수 있게 되었다.

MBC 주말드라마 <가화만사성>에 등장했던 남자들은 하나같이 아내들을 힘들게 했다. 수많은 갈등을 어떻게 풀어낼까 궁금해하던 차에 불치병이 만능키로 등장했다.

지난 22일 종영한 JTBC 금토드라마 <판타스틱>은 첫회에서 여자주인공 이소혜(김현주)에게 시한부 선고를 내렸다.

잘나가는 방송작가인 소혜는 울고 짜는 신파 대신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인 시간을 보내다 홀연히 여행을 떠나 사라져버리는 '폼'나는 작가로 남겠다고 결심한다.

사느라 소원해진 친구들에게 먼저 연락하고 늘 짐이라 여겼던 가족의 진심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녀에게 두 남자가 나타난다.

한때 사랑했으나 앙숙이 되어 10년 만에 나타난 우주대스타 류해성(주상욱)과 판타스틱한 선물처럼 그녀 곁을 지키는 '암 동기' 홍준기(김태훈)다.

해성은 이소혜가 암환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자신의 사랑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암환자라는 사실보다 중요한 건 사랑하는 그녀가 옆에 있다는 것에 행복해한다.

'괴짜 의사' 준기는 소혜의 병명을 알리며 자신이 암에 걸렸고 항암제조차 듣지 않는 특이한 체질로 치료조차 받을 수 없게 된 처지를 고백한다.

암을 곁에 두고 준기는 자연스레 유한한 인생, '잘 사는 것이 곧 잘 죽는 것'임을 깨닫고 이를 실천하고 소혜를 응원한다.

소혜는 점점 심해지는 통증과 다가오는 죽음 앞에 절망하지만 작가의 메신저와도 같았던 준기를 통해 인생의 끝이 아닌 과정으로서의 죽음, 즉 웰다잉에 대한 긍정적 메시지를 전한다.

"아프지 않은 이별은 없다. 좋은 이별도 없다. 하지만 사랑이 충만한 따뜻한 이별은 있다."

1회 때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던 주인공은 마지막회에서 여전히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서 오늘만 살고 있다. 죽음의 그림자로 시작했던 드라마는 경쾌한 '판타지'를 선물하면서도 설득력을 잃지 않는 마법을 부렸다.

죽음은 두렵다. 누군가를 떠나 보내야 한다는 것도 두렵다.

영생을 누릴 것처럼 탐욕을 부리고, 자신을 잃어버린 채 껍데기뿐인 삶을 사는 막장의 현실에 <판타스틱>은 삶과 죽음에 대한 진지한 질문과 함께 주변을 돌아보게하는 여유를 선물한다.

"지금 이걸 보신다면 저는 죽은 거네요. 와! 드디어 제가 미지의 별로 여행을 떠났군요. 살아있는 동안엔 매일매일, 오늘이라는 선물 꾸러미가 도착합니다. 오늘 받은 선물은 오늘 풀어보시고 즐기면서 행복하게 그렇게 살다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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