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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되뇌고 더없이 애틋한…제주서 만난 세월호

[저금통 끼끼의 모험]두 번째 이야기-우리는 함께 걷고 있다 (1)
아이들 흔적 좇아 찾은 제주 추모시·사진전 포스터 등
자연스레 '세월호'마주해
아픔 간직한 사람·풍경 잊어선 안 될 이유 알려줘

2017년 02월 23일(목)
이서후 기자 who@idomin.com

막상 끼끼를 데리고 제주도로 가겠다고 결정을 해놓고는 걱정이 많았습니다. 어디를 가서 뭘 해야 할지 막막했거든요.

먼저 세월호 참사 당시 단원고 아이들이 가려던 수학여행 코스를 알아봤습니다. 단원고 홈페이지에 그때 가정통신문이 아직 남아 있더군요.

4월 15일 - 학교에서 출발, 인천여객터미널 승선

4월 16일 - 제주 도착, 섭지코지, 선녀와 나무꾼 테마파크, 산굼부리, 더마파크, 숙소

4월 17일 - 윗세오름/어리목코스, 소인국 테마파크, 용머리해안, 정방폭포, 주상절리대, 숙소

4월 18일 - 한림공원, 용두암, 제주공항, 김포공항, 학교 도착

3박 4일간 쉼 없이 제주를 돌아다니는 일정이었습니다.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섭지코지에 간 끼끼. 4월 16일 제주도에 도착했다면 단원고 아이들이 가장 먼저 찾았을 곳이다.

이걸 똑같이 돌아다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지난해 2월 '졸업-학교를 떠날 수 없는 아이들'을 통해 세월호 단원고 생존자 박준혁 군이 친구들의 사진을 들고 다녀왔고요. 이어 4월에는 희생자 어머니 7명이 역시 수학여행 코스를 그대로 다녀왔습니다. 그렇다면, 끼끼가 이곳을 찾는 것에는 무슨 의미가 있지? 어떠한 결정도 내리지 못한 채, 일단 회사에 휴가를 내고 지난 8일 제주도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제주공항에는 회사 동료 이동욱 기자가 먼저 도착해 있었습니다. 자신도 모험에 동참하겠다며 선뜻 휴가를 내고 따라나선 것이죠.

어차피 아무 계획이 없었기에 다음 날 우리는 올레 14코스를 걸어보기로 했습니다.

이 기자가 한번 걸어보고 싶었다더군요. 저금통 끼끼의 모험은 뜻밖에 바로 이 올레 14코스에서 시작됩니다.

◇올레 14코스와 카페 '그곶'

다음날 9일 우리는 버스를 타고 제주 한림읍으로 향했습니다. 14코스 시작점은 한경읍 저지리지만 눈보라가 심해서 바다가 가까운 한림읍 월령리에서부터 걸었습니다. 백년초라는 선인장 자생지로 유명한 곳입니다. 현무암 돌담 안 한가득 백년초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곧 해변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몸을 날려 버릴 기세로 바람이 불더군요. 한참을 걸어 도착한 금능리 마을 길에서 우리는 문득 '세월호'를 만났습니다. 벽화가 그려지고, 드문드문 그림이 걸려 있던 길을 지나다 그 중 한 그림에서 얼핏 '세월' 어쩌고 하는 글귀가 스쳐 지났는데 혹시나 되돌아서 확인하니 세월호 추모시가 적혀 있었습니다. 다른 그림에서는 전혀 그런 게 없었는데 딱 그 그림만 그렇더군요. 뒤집힌 배, 두 손을 모으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 노란 리본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는 '세월은 간다'라는 제목입니다. 제주도에 사는 고성기 시인의 시 일부를 발췌한 것이었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초침까지 멎은 아침

산 자는 모두 죄인 하늘 향해 두 손 모은

그러나

신은 없었다

무책임만 있었다

퍼렇게 봄날은 간다

빨갛게 동백은 진다

제주시 한림읍 금능리 마을길에서 만난 세월호 추모시와 그림.

배낭에서 끼끼를 꺼내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엉겁결이었지만 제주도에서 마주친 첫 세월호 기억입니다. 그러고는 생각했습니다. 굳이 끼끼를 데리고 무언가를 하려고 애쓰지 말자, 아무렇게나 돌아다니다 보면 이처럼 자연스럽게 만나는 것들이 생기지 않을까, 라고요.

우리는 눈보라에 꽁꽁 언 몸을 녹이려 근처 카페에 들어갔습니다. '그곶'이라는 이름입니다.

분위기도 좋고, 의자나 소품들이 독특해서 제주도에 갈 때마다 한 번씩 들르던 곳입니다.

우리는 따뜻한 커피와 큼직한 고구마튀김으로 한숨을 돌렸습니다. 나른해진 눈으로 내부를 둘러보는데, '엇, 저건?' 카운터 근처 벽에 붙은 포스터가 눈에 들어옵니다.

아이들의 방. 2015년 4월 세월호 1주기를 맞아 열린 사진 전시회 포스터입니다. 서울이나 안산에서 열린 것으로 알았는데, 이곳 제주에서도 이 포스터를 만나다니요. 제주에서 만난 세월호 기억 두 번째입니다. 첫날 일정치고는 나쁘지 않네요.

◇제주 시내 '커피동굴'

제주도를 덮친 눈보라는 며칠째 그칠 줄을 모릅니다. 곧 휴가가 끝나는 이동욱 기자를 보내야 했기에 다음날인 10일 제주시로 향했습니다.

이날 오후 우리는 제주 시내에 있는 조그만 카페에 들렀습니다. '커피동굴'이라는 곳입니다.

바람커피로드, 이담 씨라고 커피 트럭을 몰고 전국을 돌며 길거리에서 커피도 팔고, 커피 모임도 여는 커피 여행자가 있습니다. 오래전에 제주도에 정착해 사십니다. 이분이 여행을 하지 않는 겨울 동안 쉬엄쉬엄 커피를 만들려고 만든 공간이 커피동굴입니다.

이담 씨와는 몇 년 전에 알게 됐는데, 안부도 궁금하고 해서 부러 찾아갔습니다.

카페는 일반 주택가 지하에 있어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담 씨와 함께 두정학 씨라고 멋진 분이 함께 운영하고 있더군요. 오직 핸드드립만 하는 곳이고요. 커피 인심도 아주 좋습니다.

이담 씨는 이날 종일 집에만 있는다해서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카페 한쪽에 세월호 노란 리본이 가득 담긴 통을 두고, 누구나 가져갈 수 있도록 해놨더군요. 얼른 끼끼를 가져와 사진을 찍었습니다. 제주도에서 만난 세월호 기억 세 번째입니다.

제주시 한림읍 금능리 카페 그곶에 있는 세월호 추모 전시 포스터.

그리고 11일, 이동욱 기자를 공항에다 태워주고 다시 커피동굴로 향했습니다. 이담 씨와 만나기로 했거든요. 조금은 무뚝뚝한 모습, 커피를 내릴 때 반짝이는 눈빛은 변함이 없더군요. 그에게 저금통 끼끼를 소개하고 제주도에 오게 된 사정을 들려주었습니다. 이담 씨에게도 세월호 참사는 남다른 데가 있었습니다. 커피 트럭 '풍만이'를 몰고 육지로 나갈 때나 제주도로 돌아올 때 자주 이용하던 배가 바로 세월호였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한동안 모든 일정을 취소할 만큼 큰 아픔을 준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바람커피로드>(감독 현진식·2015)의 가장 큰 모티브가 세월호라고도 했습니다.

세월호 이야기를 하며 허공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 잠시 물기가 어렸습니다. 제주도에서 만난 세월호 기억 네 번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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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후 기자

    • 이서후 기자
  • 국장석 기자입니다. 경남의 산 등 공공 기획. 15면/20면 지역민 참여 보도, 제휴 뉴스. 가끔 자체 기획. 한국언론진흥재단/지역신문발전위원회 업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