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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보기]볕바른 좋은 땅, 걸음마다 누리는 '여유'

(2) 합천군 삼가면 일대
이순신 백의종군로·가미교 마을 곳곳 이야깃거리 풍성
삼가 기양루·만세운동탑 40년 넘은 이발소·철공소 역사와 사람냄새 '공존'

2017년 02월 24일(금)
최환석 기자 che@idomin.com

'축 봉두 심재현 자 심두보 군 농학박사 학위 취득 - 청송 심씨 종친회'. 합천군 삼가면 초입에 이런 펼침막이 있다. 한 집안 경사를 함께 축하하는 마을 분위기가 반갑다. 혈연이나 지연이 옅은 도심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삼가중학교 앞 도로에 소개문 하나가 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라는 설명이다. 억울한 옥살이를 하던 이순신 장군은 백의종군 명을 받아 정유년(1597년) 4월 4일 한양(서울)에서 출발한다. 천안과 구례를 거쳐 같은 해 6월 2일 삼가에 도착한 이순신 장군은 장맛비가 내리는 바람에 이틀을 이곳 관사에서 머물렀다. 도로 하나에도 뜻밖에 이야깃거리가 숨어 있다.

백의종군로 옆으로 좁은 다리가 하나 있는데, 이름이 '가미교(加美橋)'다. '단기 4246년 6월 준공'이라고 쓰여 있다. 서기로 1913년이니까, 100년이 넘은 다리다.

삼가교에서 바라본 양천강. 저 멀리 삼가면을 찾은 이방인을 반기는 문구가 보인다

삼가삼거리에서 걸음을 잠시 멈췄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한우의 고장'답게 식육식당이 줄을 잇는다. 가로등마다 달린 한우 캐릭터가 손님을 반긴다. 가게 안에선 살을 발라내는 손길이 분주하다. 이곳 식당은 인심이 꽤 후한 듯하다. 같은 1근(600g)도 대형할인점에서 살 때보다 양이 많아 보인다.

대부분 발길이 드문 골목에서 그 마을 매력을 느낄 수 있다. 골목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신미이발소'가 눈에 들어온다. 가게 안을 훔쳐본다. 한 손님은 대기 중이고, 다른 한 손님은 면도를 받고 있다. 이곳 사장님은 채현일(65) 씨. 45년간 신미이발소를 운영한 가위손이다.

사진을 찍어도 되느냐 묻자, "저기 골동품 있지예?"하며 가게 안쪽을 가리킨다. 머리 감을 때 쓰는 이발소 물뿌리개다. 30여 년을 사용했단다. 지금 당장 근현대사박물관에 모셔도 될 정도다. 면도솔, 거품통에도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삼가삼거리에서 바라본 풍경. 식육식당이 줄을 잇는다.

삼가면사무소 근처에는 적산가옥처럼 보이는 2층 건물이 있다. 1층은 '선금당'이라는 상점이다. 주인 김봉근(67) 씨가 묻기도 전에 "적산가옥은 아니고, 6·25전쟁 이후 한국인이 지은 건물"이라고 설명한다. 눈치가 빠른 분이다. 간판에 안경과 도장 모양이 붙어서 도장 파는 곳인 줄 알았는데 시계방이란다.

선금당 근처에는 누각 하나가 있다. '삼가 기양루'다. 도 유형문화재 제93호다. 누각 동편에 관아 터가 남아 있는 것으로 미뤄 조선시대 삼가현성 안 관청 부속 건물로 추정하고 있다. 누각에 이순신 장군이 머물렀다는 기록도 있단다.

양천강 위로 놓인 삼가교 앞에는 '삼가장터 3·1 만세운동 기념탑'이 우뚝 서 있다. 이곳에서 1919년 음력 2월 17일과 22일, 두 차례에 걸쳐 3·1 만세운동이 있었다. 삼가·쌍백·가회면민 등이 만세를 외쳤다. 이 일로 40여 명이 순국했고, 150여 명이 다쳤다. 50여 명은 옥고를 치렀다. 삼가 인심이 깊은 까닭을 알 것만 같다.

삼가시장 한쪽 '형제철공소'라는 곳이 눈에 들어온다. 온갖 장비가 즐비하다. 주인 이길영(62) 씨가 형제철공소를 40년간 운영하고 있다. 건물이 꽤 오래된 듯해 물어보니 100년이 넘었단다. 이 씨가 일제강점기에 '말 달구지' 만들던 곳이라고 설명한다.

"여기 (절삭가공)선반 있제? (길이가)열두 자인데, 국내산이야. 다른 데서는 보기 어려울 걸? 지금도 잘 돌아가. 정밀성은 떨어질지 몰라도 야물어." 신이 난 이 씨가 선반을 움직인다. 돌아가는 모양새가 아직 쓸만하다. 이 씨 말을 빌리면 "돌아가는 모습이 예술"이다. 연마기, 모루 등 다른 장비도 꽤 오래된 모습이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

신미이발소 채 씨, 선금당 김 씨, 형제철공소 이 씨 모두 생글생글 웃으며 낯선 이를 맞는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겪어보니 이곳 주민 대부분 외지인에게 텃세를 부리거나 짜증을 내지 않는다. 볕이 잘 들고 풍요로운 마을이어서 여유가 넘친다. 그러니 친절하고 사려 깊을 수밖에.

저 멀리서 옹기장수가 화물차를 몰고 마을을 돌고 있다. "옹기가 왔습니다. 옹기 사러 오세요. 된장 단지, 고추장 단지, 김치 항아리…." 운율이 흥겹다. 도심에서도 가끔 듣는 소리다. 삼가에서 들으니 더욱 정겨운 건 기분 때문일까.

이날 걸은 거리 2.2㎞. 6604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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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환석 기자

    • 최환석 기자
  • 문화부 공연, 문화정책 담당입니다. 010-8994-4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