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처녀뱃사공, 이제는 세계를 향해 힘찬 물살"

전국체전 K-1 200m 4년 연속 금메달 획득

"지금까지 국내 최고의 선수가 되는 과정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세계적인 선수가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임용훈 경남체육회 카누부 감독은 김국주 선수를 주저 없이 국내 최고 선수라고 설명했다. 더불어 김국주 선수와 임 감독의 목표는 국내 대회를 넘어 아시안게임 등 국제대회에 맞춰져 있었다.

뛰어노는 것이 마냥 좋았던 소녀에게 카누는 재미있는 놀이였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카누의 의미는 달라졌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장녀였던 그에게 카누는 어느 순간 생계의 수단으로 변해버렸다. 다른 선수들은 저마다 전국체전 메달, 세계대회 메달 등의 포부를 가슴에 담고 연습을 했지만 그는 실업팀에서 퇴출당하지 않는 것이 목표였다. 부상과 슬럼프라는 단어도 그에게는 사치였다.

그동안 가족을 위해 노를 저었던 '처녀 뱃사공'은 이제 2018년 아시안게임 메달 획득이라는 자신의 목표 달성을 위해 낙동강 물살을 힘차게 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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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국주 경남체육회 카누선수. / 유은상 기자

Q. 카누는 어떤 종목인가요?

"계곡에서 급류를 타는 것을 슬라럼이라 하고, 저희가 하는 것은 스프린트라고 잔잔한 강이나 호수에서 하는 경기입니다. 그중에서도 캐나디안 카누와 카약으로 또 나뉩니다. 캐나디안은 무릎을 꿇고 한쪽으로 노를 저어서 하는 경기고 카약은 앉아서 양쪽으로 노를 젓는 것입니다. K-1 200m, K-2 500m 이런 식으로 표시하는데 K는 카누를 뜻하고 다음에 오는 1, 2, 4 숫자는 몇 명이 타는지를 표시하는 겁니다. 마지막 숫자는 거리를 나타내죠. 저는 K-1 200m가 주 종목입니다."

Q. 접하기 쉬운 종목은 아닐 텐데요.

"초등학교 때 뛰어노는 것이 마냥 좋아서 육상 창던지기 선수를 했어요. 부산이 고향입니다. 중학교 2학년 말에 부산대표까지 뽑혔는데 키가 작아서 고교 육상팀 진학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기가 죽어 집으로 가는 모습을 카누 감독님이 보시고는 이유를 물으시기에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카누를 권유하더군요. 곧장 따라가서 배웠는데 정말 재미있었어요. 장작불에 젖은 옷을 말리다 손목에 화상을 당했지만 고무장갑 끼고 연습하고 그랬어요. 재미를 느끼다 보니 성적도 그럭저럭 나왔고 고등학교 마치고는 실업팀에 곧장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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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국주 경남체육회 카누선수. / 유은상 기자

가정형편 어려웠던 학창시절, 돈 벌어 부모님 돕자는 생각뿐

Q. 곧장 실업팀으로 간 이유는 뭔가요?

"제가 태어날 때쯤 아버지가 백내장인가 녹내장인가로 한쪽 시력을 잃었어요. 다른 눈도 점차 시력이 약해지면서 일을 제대로 못 했죠. 어머니가 생계를 책임졌는데, 제가 중학교 2학년 때 위암 수술을 받으시고는 건강이 약화했죠. 그런 상황에서도 어머니는 학교급식 일을 하셨고, 또 제가 고등학교 입학 전 집중 훈련을 할 때는 새벽 3시에 일어나서 밥 챙겨 먹여서 5시까지 낙동강 카누장에 태워줬어요. 그러니 제 머릿속에는 돈을 벌어서 부모님을 돕겠다는 생각이 뿐이었죠."

Q. 많이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런 상황이 더 도움됐을지 몰라요.(웃음) 고2 때 어깨 회전근개 충돌 증후군으로 통증이 너무 심했어요. 의사 선생님은 운동을 계속하기 어렵다고 그만두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저는 주사 맞고 치료하면서 억지로 참아 넘겼어요. 졸업하고 남양주시청에 입단했을 때 감독님이 '생각보다 못한다. 잘못 받은 것 같다'는 농담을 했어요. 그때 너무 무서웠습니다. 퇴출당할까 봐. 그러면서 어린 맘에 정말 열심히 훈련했어요. 그 결과 실력도 부쩍 늘었고…. 어찌 보면 힘들었지만 그런 상황이 저를 더 성장하게 했던 것 같아요."

Q. 자신의 장점을 꼽는다면, 뭐가 있나요?

"고등학교 1학년 때 전국대회서 메달 못 따면 삭발한다고 약속했는데 4등 했어요. 결국, 삭발했는데 모두 놀랐죠. 삭발 모습에 놀라기도 했지만 제 투지에 많이 놀랐다더군요. 그만큼 독했어요. 끈질긴 면도 있고요. 그런 게 선수에겐 장점이라고 생각하죠. 남양주 시청에서 3년 있다가 전북체육회로 옮겼습니다. 많은 금메달을 땄지만 전국체전에서는 이순자 선배에 밀려서 계속 은메달이었어요. 그래서 호랑이 잡으러 호랑이굴로 들어갔죠.(웃음) 전북체육회로 이적해서 한 팀에서 같이 뛰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결국 3년 만에 금메달을 따고 경남으로 왔죠. 항상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면도 장점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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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게임 메달 획득이 목표

Q. 경남체육회로 옮겼습니다.

"아버지 건강이 악화해 양쪽 모두 시력을 잃었습니다. 어머니도 아버지 챙기시느라 고생이 많으시죠. 고향에서 멀리 떨어져 지내다 보니 잘 챙기지를 못한 것 같다는 생각에 2014년 가까운 경남으로 이적했죠. 부산에는 여자 카누팀이 없거든요. 또 전북체육회가 이순자 선배 위주로 운영되면서 좀 손해를 본다는 생각이 있었고요. 뭣보다 임용훈 감독님이 먼저 손을 내밀어 주셨어요. 중학교 때부터 지역은 달라도 낙동강에서 같이 훈련하면서 잘 챙겨주시던 분이었죠. 뭣보다 믿고 존경하는 감독님이라 쉽게 결정했죠. 정말 감사하죠. 또 감독님과 저희 목표가 겹치는 부분도 많고요."

Q. 선수로서, 또는 은퇴 이후 계획이 있으십니까?

"앞에서 말씀드렸지만 아시안게임에서 메달을 획득하는 것이 꿈입니다.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예선에서 3등 했는데 결승에서 손가락 하나 두께 차이로 아쉽게 4등을 했어요. 이번에는 실수하지 않고 꼭 메달을 딸 겁니다. 이게 현재 선수로서 제 개인적인 마지막 목표라 생각하고 훈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K-1 200m 전국체전 4연패를 기록 중인데 10연패까지는 해보고 싶어요. K-1 500m에서도 일인자로 도약하고 싶고요. 은퇴하면 소를 키울 생각입니다. 소를 좋아해서 한 500마리 키우는 대농을 꿈꾸고 있습니다. 목장이 자리를 잡고 나면 중학교 후배 선수들 가르치는 재능기부를 하고 싶습니다. 오랫동안 배운 노하우를 그냥 버리면 아깝잖아요. 저보다 더 좋은 후배를 키우는 양분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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