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너를 처음 본 순간 두 눈이 멀고 말았네

달콤한 그 향기까지 (마성의 매력)

부드런 너의 살결은 우윳빛 눈이 부시고

참을 수 없는 유혹에 빠져들고 말았지

나는 참을 수가 없어 자꾸만 숨이 너무 막혀서

너에게 다가가는데 (오늘밤)

이제는 참을 수 없어 제발 날 허락해줘요

마성에 빠져버려 오늘밤은 제게 그댈 맡겨줘요

손이가 너의 다리에 가슴에 참을 수 없는 유혹에

손이가 자꾸 손이가 오늘밤도 너를 찾네

손이가 자꾸 손이가 오늘은 참아야 하는데

하루도 참을 수 없는 매일 밤 치킨의 유혹

- 장미여관 '마성의 치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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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여관이 부른 '마성의 치킨'이란 노래. 얼핏 들으면 19금 가사처럼 들리기도 한다. 비라도 부슬부슬 내릴라치면 '치맥' 주문 전화 꼭 걸고 싶어지게 만드는 노래다. 배고픈 밤 정말로 참기 어려운 유혹의 소유자, 매혹 덩어리. 바로 닭이다. 아니 치킨이다. 치킨뿐만 아니라 닭은 삼계탕, 닭개장, 닭갈비, 닭튀김, 닭볶음탕, 깐풍기, 불닭, 닭똥집 같은 수많은 요리 재료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사람을 위해 소비되는 닭이 무려 10억 마리나 된다고 하니 그야말로 참 고마운 닭, 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닭이다.

우리가 키우는 닭은 인도나 동남아시아에 사는 야생 닭을 가금으로 개량한 것이다.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기원전 6, 7세기 무렵부터 사육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기록에서 닭의 존재가 확인된다. 신라 시조 설화인 김알지 탄생 설화에 등장하는 닭이 가장 유명하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제4대 탈해왕이 금성 서쪽 시림 가운데에서 닭 우는 소리를 듣고 신하에게 살펴보게 했다. 신하가 가보니 금궤 하나가 나뭇가지에 달려 있고, 흰 닭이 그 밑에서 울고 있었다. 신하가 돌아와 이 사실을 알리자 왕은 날이 밝는 대로 그 궤짝을 가져오게 해 열어보니 속에 총명하게 생긴 어린 사내아이가 있었다. 왕은 이를 기뻐하며 아이 이름을 알지라 부르고, 금 궤짝에서 나왔으므로 성을 김 씨라 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때부터 숲의 이름은 계림이 된다. 지금도 계림은 유명한 숲이다. 때론 요리의 재료로, 때론 설화의 소재로 등장하는 닭은 대략 7년에서 12년 정도 산다. 연간 100~220개의 알을 낳는다. 공룡으로부터 진화되었다는 설도 있다.

닭에 얽힌 이야기는 참으로 많다. 짧게나마 어릴 적 옛 추억 이야기 떠올려 본다. 사위가 올 때만 잡아먹을 수 있던 닭. 닭을 잡아먹긴 힘들고 달걀 하나라도 맘대로 먹어 보는 것이 소원(?)이었던 적이 있었다. 지렁이나 지네를 좋아하는 닭들은 우리 집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대나무 숲에 옹기종기 모여 있거나 무리 지어 다녔다. 닭은 지네와 천적 관계에 있다. 지네 잡아먹는 모습 보면 무척 맛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땐 그냥 자연스럽게 마당을 돌아다니는 '지네닭'이 우리 집에 살고 있었다. 문제는 알을 낳는 장소가 여러 곳이라는 것.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달걀 수거 작업이었던 기억이 난다. 엄마 몰래 몇 개를 숨겨 놓았다가 삶아 먹기도 했었다. 현금 구경이 어려웠던 시골집에서 그나마 돈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은 달걀 모아 장에 내다 파는 일이었다. 달걀 판 돈으로 차비 마련해 버스 타고 중학교 다녔던 기억도 난다. 월납금, 공납금에 보태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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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룡 닮은 닭. /윤병렬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회장

닭은 새벽을 알리는 동물이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이육사의 시 '광야'의 시작도 닭 울음소리다. 닭 울음소리는 벽사의 기능도 갖는다. '전설의 고향'에서 귀신은 닭 울음소리를 듣는 순간 혼비백산 도망친다. 아침이 밝았다는 신호다. 변변한 시계 하나 없던 시절 엄마는 닭 울음소리를 시계 삼아 아침잠을 깨셨다. 닭 울음소리에 맞춰 일어나 밥하고 아이들 깨워 학교에 보내고 또 일터로 나가셨던 것이다. 닭은 참새와 까마귀 같은 다른 조류들처럼 빛에 민감하다. 그래서 닭은 보통 새벽 4시~5시 사이에 운다. 봄부터 초가을까지는 이 시간이 동트기 직전 시간이다.

닭은 어떻게 동트는 시간을 알고 울까? 이들 조류의 뇌에 있는 '송과체'는 피부를 통과해 들어오는 빛을 감지한다. 그래서 빛이 차단된 공간에 닭을 가두어 놓으면 새벽이 와도 울지 않는다. 실제로 양계장에 있는 닭들은 밤새 불을 켜놓고 닭의 생리 주기를 바꾸어 알 낳는 횟수가 많아지게 조절하기도 한다. 잠을 잘 수 없도록 만들어 사료 먹고, 알 놓고를 반복시키는 것이다.

닭은 밤이 되면 거의 활동을 멈춘다. 사람보다 시력이 훨씬 낮아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삵이나 족제비, 너구리, 수리부엉이 같은 천적이 다가와도 알아채지 못하고 잠만 자다 희생당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또 닭은 생리 주기가 25시 간 가량 되는데 이에 따라 알을 낳는 시간이 하루 주기로 한 시간씩 달라진다.

닭의 종류는 아주 다양하다. 분포 지역도 극지방을 제외한 전 세계다. 닭의 근원인 들닭은 말레이시아·인도·인도네시아 및 중국 남부지방의 적색야계, 인도대륙 중부와 서남부의 회색야계, 실론군도의 실론야계 및 자바섬의 녹색야계 등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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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탉과 암탉. / 윤병렬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회장

집닭은 품종개량이 다양화되면서 육용종과 산란종, 겸용종, 애완종으로 나뉘어 있다. 그중에서 레그혼은 산란종에 속하는 품종으로 원산지인 이탈리아에서 수입하여 미국과 영국에서 17세기 후반에 처음 개량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 명나라 때 이시진이 쓴 자연과학서 <본초강목>에서도 "닭은 그 종류가 매우 많아서 그 산지에 따라 크기와 형태·색깔에 차이가 있는데, 조선의 장미계는 꼬리가 3, 4척에 이르고 여러 닭 가운데서 맛이 가장 좋고 기름지다"고 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장미계가 바로 토종닭이다. 하지만 장미계를 비롯한 토종닭 계통의 품종 수가 급격히 줄어들어 요즘엔 쉽게 만나기 어렵다. 대부분 알과 고기를 얻기 위해 들여온 외국 품종의 닭이 사육되고 있을 뿐이다. 그냥 들판이나 산기슭에 방사해 기른다고 다 토종닭이 되는 건 아니다. 진돗개처럼 족보가 있는 닭이 제대로 된 토종닭 지위에 오를 수 있는 것이다.

닭은 우리 전통문화 속에서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그림이나 소설, 시조 등에 다양하게 등장한다. 마당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닭의 모습은 늘 관찰 대상이기도 했다. 조선시대에 쓰여진 김정국의 <사재척언>에 실려 있는 이야기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집에 기르던 닭 한 마리가 열대여섯 마리의 병아리를 깠다. 뽀송뽀송한 병아리들만 남겨 놓고 어미 닭이 죽어버렸다. 어미 잃은 병아리들은 금방이라도 죽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말입니다.' 암탉 한 마리가 밖에서 날개를 퍼덕이며 들어와 병아리들을 불러 모아 품어주었다. 마치 측은해 하는 모습이 의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실제로 영국 대학 연구팀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닭은 공감 능력을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병아리에게 바람으로 스트레스를 주는 실험을 했더니 그 병아리를 낳은 어미 닭 심장 박동이 빨라지면서 눈 주위 온도가 떨어지는 증상을 보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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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닭. / 윤병렬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회장

임상덕의 <잡설>이란 글에는 더 흥미로운 이야기가 담겨있다. 집에 여러 마리 닭을 키우고 있는데 어느 날 늙은 장닭이 한 마리 들어왔다. 체구가 우람해서 싸움을 아주 잘했다. 다른 닭들을 괴롭히고 먹이를 다 차지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참고 있던 닭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차례로 장닭에게 달려들었다. 요즘으로 치면 닭들의 촛불 집회가 열렸던 모양이다. 30~40여 마리 닭들이 장닭에 맞서 순서대로 한 번씩 싸워서 끝내는 장닭의 횡포를 물리쳤다는 이야기다. 당장의 힘에 기대 강한 것만 믿고 여러 무리를 능멸하고 횡포하게 대했던 VIP에 맞서 기회를 엿보다 결국 담 사이에 몰아넣고 마구 차서 죽여 버렸다는 것이다. 실제 눈으로 관찰한 이야기라고 하는데 닭들은 서열이 엄격하고 집단행동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병아리 때부터 서열이 정해지기 시작하는데 서열이 높은 순서대로 서열 낮은 닭을 쪼거나 먹이를 독차지하기도 한다. 닭의 서열 관계를 이용한 것이 닭싸움이다. 또 성격이 사나운 사람을 가리켜 '싸움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닭에 관한 속담들도 재미있는 내용이 많다. '꿩 대신 닭'이라는 속담 유래는 설날 떡국에 꿩고기를 썼는데 꿩이 없으면 닭을 대신 썼다는 데서 나온 속담이다. 닭은 많지만 꿩은 구하기가 무척 어려웠기 때문이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본다', '닭 소 보듯, 소 닭 보듯'한다는 말은 일이 실패로 돌아가서 희망이 없을 때나 서로 무관심한 태도를 가리켜 하는 속담이다. '촌닭 관청에 간 것 같다.'는 속담은 세련되지 못한 사람이 복잡한 도시에서 어리둥절해 하는 모습을 가리키는 말이다. 경상남도 의령·김해 등지에서는 <닭노래> 또는 <닭타령>이 구전되어 내려온다.

초록비단 접 저고리/자지옥자 짓을 달아/수만 년 대문밖에/수 없이 다 흐튼 곡석/낱낱이 다 주어먹고/그럭저럭 컸건마는/손님 오면 대접하고/병이 나면 소복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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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꿩. / 윤병렬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회장

여기에는 닭을 기르며 느꼈던 사람의 마음이 함축되어 있다. 또 옛사람들은 닭이 오덕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머리에 관을 썼으니 문(文)이다. 발에 며느리발톱이 있으니 무(武)다. 적을 보면 싸우니 용(勇)이다. 먹을 것을 보면 서로 부르니 인(仁)이다. 어김없이 때를 맞춰 우니 신(信)이다. 관찰하고 연구하고 먹어보면 먹어 볼수록 이래저래 참 고마운 닭이다.

올해는 닭의 해다. 닭의 기운처럼 이제 사악한 것들, 비선 실세들은 물러나고 동트는 새벽 새로운 것들만 가득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이제라도 액을 막고 복을 비는 닭 부적이라도 하나 붙여볼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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