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지역 선거 금품 수수 주민들이 쉬쉬
눈감아 주는 일 인정으로 착각 말아야

올해 초 제보 전화가 왔다. 창녕군 한 마을에서 지난해 말 이장 선거가 있었는데, 현재 이장이 마을 사람들에게 돈을 뿌려 당선했다는 것이다.

그 마을로 찾아가 제보자를 만났다. 제보자는 선거 당시 현재 이장과 경쟁 상대였다. 제보자는 선거 당시 상황과 선거 때 돈을 받은 사람들의 진술서를 확보했다며 보여줬다. 진술서에는 제보자와 그의 아내, 친척 3명의 이름만 적혀 있었다.

진술서 내용은 요즘 유행하는 법률 용어로 '증거불충분'이었다. 제보자와 그의 아내, 마을 사람들에게 들은 얘기만 씌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장 출마자가 집 밖 창고에서 온 마을에 돈 봉투를 전달하고 있다"(마을 주민1)고 하는 말을 들었다. △"나도 집 밖 축사에서 돈 봉투를 받았으나 이장 선출 끝나면 돌려줄 것이다"(마을 주민1)라고 얘기하는 것을 들었다. △제보자 친척이 전화 통화 중 "형님도 출마자한테 돈을 받았어요?"라고 물었더니 "나도 받고 즉시 돌려줬다"(마을 주민2)고 답했다고 들었다. △"출마자가 돈 봉투 2개를 신발장에 놓으면서 '하나는 경로당에 전달하고 하나는 형수가 가져라'고 하길래 '표는 당신한테 찍을 테니 돈 봉투는 가져가라'고 했다"(마을 주민3)는 말을 들었다.

제보자가 들었다는 말을 토대로 진술서에 담긴 마을 주민들 얘기를 확인하고자 마을 주민1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을 주민1은 당황한 목소리로 "나는 아무 것도 모릅니다. 바빠서 끊습니다"라고 말했다. 돈을 돌렸다고 의심받는 현재 이장에게도 전화했다. 그는 "나는 돈을 돌린 적이 없습니다. 누가 그런 소리를 합니까? 돈 받은 사람 있으면 데려와 보세요"라며 부인했다.

결국 기사를 쓰지 못했다. 정황은 돈 거래 의혹이 충분했지만 증거가 불충분했다. 제보자에게 기사로 쓰기는 어렵겠다고 알렸다. 제보자는 담담했다. "괜찮습니다. 제가 정년퇴임을 하고 고향 마을로 돌아와 살고 있는데, 최순실 국정 농단 같은 일이 벌어지는 현 시국을 보면서 우리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부터 바로잡아야겠다는 생각에 제보했습니다. 취재하는 동안 마을 주민들과 현재 이장이 조금이라도 반성했기를 바랍니다."

창녕군에서 이장, 농협조합장, 군의원, 군수 선거 때마다 금품을 돌려왔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마을 주민들이 돈 받은 사실을 알면서도 쉬쉬하고 서로 눈감아주는 게 인정이라고 여기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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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금품 수수 여부를 수사하기 시작하면 대부분 마을 사람이 붙잡혀가게 되니 수사까지 눈감아줄 수밖에 없다는 어처구니없는 소문도 있다.

곧 4·12 재보궐선거가 있고 대통령 선거도 열린다. '비굴의 시대'에서 이젠 탈피하자. '비굴'을 '인정(人情)'으로 착각해 눈감아주지 말자. 내 옆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바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축소판이다. 돈 받고 뽑아준 사람이 과연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긴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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