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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세월호 3년…가슴에 응어리진 그날

[끼끼의 모험]네 번째 이야기-안산, 416기억저장소와 합동분향소
시·유품·입학 현수막 사이사이 3주기 앞둔 세월호 참사 되새겨
미안함·쓸쓸함 앞선 합동분향소 처연했던 유가족 삶 비추기도

2017년 03월 20일(월)
이서후 기자 who@idomin.com

지난 1월 31일 창원에서 택시기사로 일하는 고동성(44) 씨가 좋은 곳에 기부해 달라며 경남도민일보에 토끼 모양 저금통을 성금으로 맡겼습니다. 고 씨는 원래 이 저금통을 세월호 유가족에게 주고 싶었지만 생업이 바빠 그러지를 못했다고 하더군요. 이야기를 듣고는 그러면 제가 직접 팽목항 유가족에게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왕 이렇게 된 거 저금통을 데리고 세월호가 향하던 제주도도 가고, 단원고가 있는 안산도 가보자고 생각하면서 저금통의 모험이 시작됩니다. 저금통에다 끼끼라는 이름을 붙이고서 말이죠.

지난 기사에서 저금통 끼끼와 함께 경기도 안산교육지원청 별관에 있는 '단원고 416기억교실'을 돌아본 이야기를 했습니다. 기억교실에서 나온 후 먹먹한 가슴 그대로 '416기억저장소'를 찾아갑니다. 누군가 안산에 가면 꼭 들러야 할 곳이라고 일러준 곳입니다.

주소는 안산시 단원구 인현중앙길 29번지. 안산교육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입니다.

치킨집, 공인중개사, 떡집, 동네슈퍼, 정육점, 약국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주택가 2층 상가건물 안에 있습니다. 간판도 조그마해서 주소를 모르고 찾았다면 아마도 그냥 지나쳤을 것 같습니다.

신입생 환영 현수막이 걸린 단원고 정문. 3년이 지나 참사 당시 재학생들은 이제 모두 졸업하고 없다.

낡은 계단을 오릅니다. 창문으로 비스듬히 들어온 햇살이 퇴색한 벽과 난간을 비추고 있습니다.

유리로 된 문을 열고 들어가니 제법 젊은 사람 두 분과 노란색 옷을 입은 분이 저를 맞이합니다. 젊은이들은 활동가고, 노란 옷을 입으신 분은 416기억저장소 이지성 소장이었습니다. 이 소장은 단원고 희생자 김도언 양의 어머니셨고요. 단원고 유가족들이 으레 그렇듯 자신을 도언이 엄마라고 소개하더군요. 416기억저장소는 2014년 4월 16일 이후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모든 자료를 기록하고 보관하는 곳입니다.

처음에는 시민들이 아름다운 재단의 후원을 받아 운영을 했고요. 지난해 7월부터 세월호 유가족들이 참여해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416기억교실을 관리하는 것도 기억저장소의 몫입니다. 지난해까지는 아름다운 재단에서 계속 운영자금을 지원했지만 올해부터는 오롯이 시민 후원금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정부 지원은 물론 없습니다.(후원과 관련해서는 fund.416memory.org 참조.)

끼끼를 책상 위에 꺼내 놓고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이 소장은 "이런 작은 마음들 덕분에 우리가 아직도 이렇게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미소를 짓고 있지만 슬픈 눈이었습니다. "다음 달이면 벌써 3주기네요. 3년…이 지났네요." 잠시 생각에 잠겼던 그가 문득 뱉어 낸 말입니다.

끼끼에다 감사 인사를 적고 있는 416기억저장소 이지성 소장.

주변을 둘러보니 저장소라고 하기엔 저장된 게 별로 없습니다. "여기는 그냥 사무공간이에요. 기록물은 전부 목록화해서 서고에 보관하죠. 한 블록 앞에 가면 416기억전시관도 있어요. 혹시 안산 합동분향소에는 다녀오셨어요? '기억과 약속의 길'이라고 기억교실에서 출발해서 기억전시관 들렀다가 합동분향소까지 걸어가는 코스가 있어요." 기억과 약속의 길은 기억저장소가 운영하는 세월호 참사 순례 프로그램입니다.

이 소장의 조언대로 근처 기억전시관과 합동분향소에 들러보기로 했습니다.

기억전시관 역시 낡은 상가 건물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다음 달 14일까지 단원고 희생자 261인의 기억시 전시가 열리고 있더군요. 기억시는 희생자 한 명 한 명을 대상으로 작가들이 지은 시를 말합니다.

매주 금요일은 '금요일엔 함께하렴'이란 제목으로 시 낭독회가 열린답니다. 벽에는 기억시가 액자에 담겨 붙어 있고, 천장에는 아이들의 유품이 담긴 상자들이 매달려 있었습니다. 전체적으로 소박했지만 가볍지는 않은 전시관이었습니다.

416기억전시관. 소박한 형태로 운영된다.

기억전시관을 나와 단원고로 향했습니다. 지도를 보니 아주 가까이 있더군요. 단원고는 단원중학교와 나란히 있었습니다. 단원고 교문 앞. 입학을 축하한다는 펼침막이 걸려 있습니다. 올해 입학식 때 쓰인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 당시 단원고에 다니던 아이들은 이제 모두 졸업하고 없습니다. 단원고 위로 여지없는 세월이 또박또박 흐르고 있습니다. 잊지 않겠다는, 현수막이 교문 한쪽에 이제는 빛이 바랜 채로 걸려 있습니다.

합동분향소는 화랑유원지 안에 있습니다. 꽤 크고 운치가 있는 유원지입니다. 경기도미술관을 지나니 하얀색 합동분향소가 보입니다. 세월호 참사 당시에는 정부합동분향소로 쓰였던 곳입니다.

분향소 앞 광장 좌우로 컨테이너들이 줄지어 있습니다. 여러 기관, 단체들이 사무실로 쓰던 곳이지만, 지금은 한산합니다. 유가족 사무실이 있는 컨테이너만 사람들이 들락거리고 있습니다. 사무실에 들어가니 유가족분들이 있으십니다. 점심때라 같이 밥을 먹자고 하더군요.

쭈뼛거리며 따라간 곳은 다른 컨테이너에 있는 간이 식당이었습니다. 유가족들이 직접 밥을 해서 먹는다는군요. 이렇게 끼니를 제대로 챙겨 먹기 시작한 것도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소박한 뷔페식이었습니다. 만두튀김과 김치전, 두루치기가 맛있었고, 북엇국도 푸짐하고 시원했습니다.

밥을 먹으면서 유가족들에게 저금통 끼끼를 소개했습니다. 유가족들은 고맙다는 말을 하면서도 조금은 경계하고, 조금은 피곤한 눈빛으로 힘차게 밥을 삼킬 뿐이었습니다. 반응이 시큰둥한 것 같아 살짝 실망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굉장한 환대를 기대한 것 자체가 오만이었습니다. 지난 3년간 유가족들이 걸어온 처연한 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실망한 것이 도리어 미안해져서, 꾸역꾸역 밥을 밀어넣고는 서둘러 식당을 나와 버렸습니다. 그라고는 분향소에 들어갔습니다. 들어서는 순간 하, 하고 한숨이 나왔습니다.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 그렇게 많은 영정을 한꺼번에 보니 감당해 내기가 쉽지 않더군요. 그리고 다시 한 번 자책했습니다. 유족들은 이렇게 크고 많은 슬픔을 안고 지난 3년을 살아왔구나. 저는 유가족의 심정을 털끝만큼도 공감하지 못한 채 끼끼를 데리고 갔던 거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인천항연안여객터미널로 향했습니다. 단원고 아이들이 세월호를 타려고 간 곳이지요. 안산에서 한 시간도 걸리지 않습니다.

북적이는 승객들. 그 사이로 수학여행에 들떠 재잘대는 세월호 희생자 아이들의 모습이 겹쳐집니다.

그런데 매표소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제주도행 배편이 보이지 않습니다. 물어보니 제주항으로 가는 배편은 없답니다. 아니, 없어졌답니다. 2014년 4월 16일, 그 이후로 말입니다.

뭔가 쓸쓸하고 무기력한 기분으로 인천연안여객터미널 옆 상트페테르부르크 광장을 한참이나 서성거렸습니다.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화랑유원지에 있는 세월호 합동분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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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후 기자

    • 이서후 기자
  • 국장석 기자. 15면 미디어. 20면 제휴 뉴스. 행복한 셀카 등 지역민참여보도. 한국 속 경남 등 기획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