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승리는 민주주의 습득 증명
광장의 외침 '대통령 파면'끌어내

봄이다. 아직 훈풍은 불어오지 않았으나 대통령이 파면 선고를 받은 그 시점, 우리 정치는 겨울을 한 꺼풀 벗겨 내고 봄을 맞이했다.

20·30대는 정치시스템을 통해 진보를 이루어낸 바가 거의 없는 세대다. 그러나 비로소 우리 세대도 승리를 경험했다. 자라면서 정치는, 즉 민주주의는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인 체제라고 인식하고 체득해왔다. 아무리 목소리를 내도 소수의 목소리들은 탄압받고 부당한 권력은 계속 득세했다. 선거를 통해 선출직이 임명되고, 법원은 문제없이 잘잘못을 가려냈지만 권력이 강조하던 법과 질서는 한쪽을 위한 법이었고 그들만을 위한 질서였다.

민주주의는 겉으로 보기엔 아무런 문제없이 잘 작동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한쪽을 위한 법과 질서는 부정부패를 눈감아 주었고, 권력의 시녀가 된 언론은 그들과 한패가 되었다. 그 사이 몰지각하여 심판 받아야 할 국회의원들은 재선을 하고 잘못을 숨겼다. 그래서 우리는 광장에 나가 끊임없이 부당함을 외치고 맞서 싸웠지만 바뀌는 건 없었고, 오히려 불법집회로 철창에 갇히는 사람들은 늘어났다.

무기력한 나날들의 연속이었다.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 권력의 소용돌이 속에서 희망은 없었다. 이번 국정농단 사태를 규탄하는 촛불집회가 처음 시작될 때도 그랬다. 과연 이걸 해서 무엇이 바뀔까. 과연 바뀌기는 하는 걸까. 그런데 바뀌었다.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에서 정당하게 파면되었다. 우리는 법치주의 국가답게 대의민주주의 시스템으로 대통령을 끌어 내렸다. 파면 순간 가장 다행한 사실은 민주주의 국가의 시민이라는 점이었다. 광장에 나가 외친 목소리가 헛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동시에 국가의 주인은 국민임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민주주의는 아직 제 기능을 하고 있으며, 아주 효율적이고 생산적이라는 경험치가 쌓였다.

이번 탄핵은 단순히 대통령 파면을 넘어 박정희 군부 독재 정권의 신화를 깨는 상징성도 가진다. 폭력과 비상식으로 점철되던 기존의 권력은 더이상 통하지 않게 될 것이다. 폭력의 반대말은 비폭력이 아니라 권력이라고 한나 아렌트는 말한 바 있다.

소설가 김연수도 권력이 훼손될 때, 그러니까 권력이 다른 곳으로 이양될 때, 폭력은 일어난다고 말했다. 그들은 틀렸다. 우리는 '아스팔트를 피로 물들이겠다'는 현 권력의 비호집단에 맞서 피 한방울 없이 권력을 끌어내렸다. 우리는 지난겨울을 꼬박 촛불에 의지한 채 광장에서 보내면서 목소리를 높여 집권정당을 분열시키고, 국정을 혼란에 빠뜨린 장본인들을 구속시켰다.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이 평화적인 권력 이양은 짧은 시간 안에 우리나라가 민주주의를 얼마나 잘 습득했는지 증명한다. 그리고 이 경험은 몸속 DNA 깊숙이 박혀 그 다음 걸음으로 나아가는 자양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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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금 이 시각 2017년 3월 22일 밤 8시 30분 속보가 흘러나온다. '세월호 본체 인양 착수.' 박 대통령이 대검찰청 포토라인에 선 뒤, 조사를 마치고 나온 바로 오늘이다. 인양을 과연 여태 못 한건지 안 한건지 모를 만큼 절묘한 타이밍이 아닐 수 없다. 1073일간 침몰되어 있었던 세월호는 마침내 인양된다. 너무 늦었다. 세월호조사특별위원회는 없고 더이상 수사는 진전이 없지만 대통령의 탄핵이 그렇듯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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