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람 따위 뙜으니 야근 수당이나 달라"
상사에게도 독설하는 선배
같은 팀서 만나 활약 기대

"모르니까 가르쳐주실 수 있잖아요?"

무거운 공기로 꽉 채워졌던 엘리베이터 안에서 tvN <미생>의 인턴 '장그래'는 오 과장에게 물었다.

계약직 사원의 직장 입문기를 그린 MBC <자체발광 오피스>(수·목 밤 10시)에서 은호원(고아성)은 계약해지를 당하고서 다시 회사로 돌아와 퇴사할 수 없다고 선포한다.

"몰라서 그랬어요. 아무도 안 가르쳐줬으니까요. 저도 가르쳐주면 잘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

정규직 신입사원과 달리 계약직원에게는 직무 간 훈련도 없다. 금방 나갈 사람이라며 인수인계가 생략된 계약직은 첫 출근 후 바로 업무에 투입된다.

그럼에도 실수에는 정규직보다 혹독한 비난과 책임이 따른다.

3년 전 <미생>의 장그래나 현재의 은호원은 직장에서 쓸모 있는 사람임을 증명하려고 애쓰는 이 시대 청년의 모습을 대변한다.

일방적으로 계약해지 당하고 퇴사할 수 없다고 선포하는 주인공. /스틸컷

현실은 더욱 냉혹해졌다.

은호원은 2년 졸업유예, 졸업하고 3년. 5년째 취업준비생이다.

손님에게 김밥으로 머리를 맞아가며 "너라면 햄 없는 김밥을 먹겠느냐"라는 비아냥을 들으면서도, 사장의 끝도 없는 잔소리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서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취직할 수 있다는 희망이었다.

백 번째 입사 시험에서 떨어지자 은호원은 그동안 쌓인 설움을 한강다리 위에서 토해낸다.

"하라는 대로 다 했잖아요,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 가야 된대서 진짜 열심히 했고요. 장학금 받으려고 잠도 안 자가면서 미친 듯이 했고. 먹고살려고 밤새 아르바이트도 하고. 한다고 했는데, 한다고 했는데. 저한테 다들 왜 이러세요? 누군 가난하고 싶어서 가난해요? 취직하기 싫어서 안 했어요?"

계약직 호원은 출근 첫날부터 업무에 투입돼 혹독한 비난을 받는다. /스틸컷

우연한 사고로 가게 된 병원 응급실에서 은호원은 "길어야 6개월"이라는 날벼락 같은 말을 듣고 말았다.

'백' 대신 염라대왕을 뒤에 둔 취업준비생은 잔뜩 움츠렸던 과거의 모습을 벗고 할 말 다하는 '슈퍼 을'로 거듭나는 참이다.

은호원의 대척점에 할 말 다하는 상사 서우진(하석진)이 있다.

"백번 떨어졌으면 병신 아닌가"라는 독설을 피면접자에게 거침없이 내뱉는 그는 강한 사람에게도 거침없다.

직장 상사가 인사 청탁을 부탁했으나 단칼에 거절했다. "이 친구 할아버지가 장관이래"라는 상사의 말에 서우진은 "참 회사 꼬라지가 장관입니다. 이런 사람들 해외 마케팅으로 발령 내는 꼬라지가 정상입니까? 장관이든 장군이든 그 사람 제 밑으로 못 들어옵니다"라며 홀연히 자리를 떠난다.

누구에게나 독설을 날리는 서우진과 늘 기죽어 있지만 어떻게든 할 말은 다 하는 은호원. 두 사람이 하우라인 마케팅팀에서 만나 조직과 사회에 통쾌한 어떤 '한방'을 날릴지 흥미진진하다.

'노력'보다 더한 '노오력'을 해도 기회조차 얻기 어려운 시대다. 밟으면 밟을수록 더욱 강해지는 은호원을 응원하다가도 이 또한 드라마를 통해 얻어야 하는 대리만족이라는데 생각이 멈추면 결국 씁쓸함으로 다가오는 건 드라마보다 더 잔혹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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