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노인정 냉장고까지 열어보는 꼼꼼한 조합장

지난해 1월 취임한 김병원 농협중앙회 회장은 '국민의 농협'을 강조했다. 창원시 진동농협 서정태(61) 조합장은 감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지역민의 농협'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는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변화와 지역 특성이 반영됐다.

진동면 인구는 지난해 기준 1만 3000명. 진동농협 조합원 1495명, 준조합원 9600명. 성인인 지역민 모두 농협을 이용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면사무소보다 친근한 농협'이라는 말이 생겨났을 정도다. 하지만, 최근 진동면은 급속하게 성장하면서 젊은 층 유입이 눈에 띈다. 자칫 농촌도시가 희석돼 농협이 위치를 잃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했다. 진동농협 입구에는 '지역민과 함께하는 농협'이라는 슬로건이 자리 잡게 됐고 지역 환원 사업도 늘고 있다. 태어나고 자라고 사업까지, 진동면을 벗어난 적이 없다는 '뼛속까지 진동사람'인 서 조합장을 만나봤다.

가전제품 교체 사업 벌이는 조합장

"저는 좀 꼼꼼한 편입니다."

자타가 공인하는 성격이다. 서 조합장이 직접 입에 담았고 각종 농협 사업에서 그 성격이 확인된다.

진동농협은 2015년부터 매년 농가 시설 전기안전점검을 진행하고 있다. 농촌은 화재 취약 지역이지만 농민들 역시 이를 가벼이 여기는 경우가 많다. 진동면에서도 크고 작은 화재가 농가 시설에서 발생했다. 서 조합장은 농민들이 힘들게 일군 삶을 한순간에 날려버리는 것이 화재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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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태 진동농협 조합장. / 박일호 기자

2년 연속 화재대비 전기안전점검을 펼쳤고 이후 현재까지 화재가 한 건도 접수되지 않았다. 더 나아가 지난해에는 전 조합원 1400가구에 소화기를 보급했다. 진동농협 창립 46주년을 맞아 조합원 기념품을 소화기로 대체해 '1주택 1소화기 갖기' 운동을 펼쳤다.

"진동면 마을회관이나 노인정에 농협이 지원하지 않은 가스레인지나 냉장고는 없다고 자부합니다."

진동농협 '운영공개의 날'을 마을회관이나 노인정에서 열면서 서 조합장은 '지지직' 소리를 내는 텔레비전도 유심히 보고, 얼룩덜룩한 벽면도 만져보고, 냉장고도 한 번 열어본다. 진동농협은 농협과 마을이 5:5로 부담해 가전제품 교체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 역시 서 조합장 레이더에 불편함이 포착됐기에 진행된 사업이다.

농약병 수거사업도 올해부터 새롭게 펼친다. 정책으로는 농약병을 가져오면 보상해준다고 하지만 이를 모르는 농민이 반이요, 아는 농민들도 일부러 면사무소에 가지고 와야 하는 불편함이 따른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잘 안 지켜지고 있다.

"잔류 농약이 땅을 오염시키기도 하고 마을 위협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위험물을 단순히 가져오면 보상해주겠다는 안일한 행정으로는 개선되기 어렵습니다. 직원과 머리를 맞대 농협에서 직접 거둬들이기로 했습니다. 수거 차가 가기 하루 전날, 마을 이장에게 한곳에 모아달라 방송을 요청하고 정해진 장소에 농협 직원이 가서 거둬들이는 방식입니다. 아주 사소한 일 같지만 농가나 농민, 진동면 환경을 위해서도 아주 큰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서 조합장의 세심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조합원 생일까지 체크하고 있다. 요즘 타지로 나간 자식들이 바쁘단 이유로 부모 생일상 차리기에 소홀한 틈을 메우고 있다.

"나이 지긋한 조합원들은 잡곡, 미역 등을 받으면 '농협에서 자식도 안 챙기는 생일상을 차려준다'고 좋아합니다. 이벤트로 생각한 사업이 주요 복지 사업이 될 만큼 호응이 좋습니다. 생일 3일 전 집에 도착하도록 신경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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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태 진동농협 조합장. / 박일호 기자

농협이 농민 마음을 보듬어야

서 조합장은 2015년 3월 열린 전국동시조합장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흑자 경영과 2015년 '진동농협 하나로마트 100억 매출 달성 탑' 수상, 2016년 '농산물 수출 700만 불 수출달성 탑' 수상 등 각종 수상에서 알 수 있듯이 경영 능력을 조합원으로부터 인정받은 것이다.

서 조합장은 2008년까지 9년간 조선소 하청업체를 운영했다. 그러면서 농협 이사회, 감사, 대의원을 역임했다. 자연스럽게 농업 경영과 일반 경영을 접목해도 되겠다는 구상이 자리 잡았다.

업체 운영 능력은 하나로마트 등 농협 경제사업에서 발휘됐다. 서 조합장이 취임하기 이전인 2009년 하나로마트 매출이 40억 원이었다. 현재 매출은 110억으로 순수익 6억 원이다. 일주일에 한 번 열리는 '한우잡데이'는 저렴하고 싱싱한 고기로 소문이 나 매출 효자 품목이다. 올해 18억 원을 추가 투자해 증축하고 로컬푸드 매장도 운영할 계획이다. 오만둥이, 미더덕 등 지역 특산물을 손질하고 소포장할 수 있는 작업장도 함께 마련할 예정이어서 지역민들도 주목하는 사업이다.

"농협이 성장하려면 지역민 도움 없이는 안 된다는 걸 절실하게 느끼죠. 농협이 진동면 구심점이 돼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농협이 나아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서 조합장은 논농사를 자그마하게 하고 있다. 이는 농업 이해의 밑거름이 된다. 진동농협은 공동 방제를 비롯해 쌀 수매 포대를 전량 무상으로 지원하고 있다. 농가에서 쌀을 포대에 담아 놓기만 하면 농협에서 차량을 동원해 수매장으로 운송하고 검사하고 판매해 조합원 통장으로 판매금을 입금한다.

올해부터는 지자체에서 70% 지원하는 상토매트의 나머지 30%를 농협이 부담하고 농기계 수리도 무상지원하고자 도시농협과 협약을 진행 중이다. 혹여나 조합원 중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이가 생길까 올해부터는 배추, 고추, 가지 등 모종을 무상 지원할 예정이다.

"실제로 정부와 지자체에서 농가 지원을 많이 합니다. 하지만, 쌀값 하락 등 농민들 형편은 나아지질 않고 있습니다. 농민들이 인력만 있으면 농사에 드는 비용은 어느 정도 농협에서 충당할 수 있도록 운송 등 세심한 부분까지 챙기려 합니다. 쌀값 하락에 대한 분노를 농협이 세심하게 챙기고 감싸 안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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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정태 진동농협 조합장. / 박일호 기자

서 조합장은 아파트가 올라서서 건물 벽을 쌓아가는 진동면 변화가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 하지만, 이 역시 진동면민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하고 농협 역할을 더 고민하게 된다고 말했다.

"진동에 인구가 늘어난 건 불과 10년 안팎입니다. 전형적인 농촌 지역으로 집집이 숟가락 개수도 다 알고 있을 정도였어요. 지금은 인근 산단이 생기면서 급격한 성장이 눈에 보이고 정서도 변했습니다. 그간 면사무소는 행정 역할에 머물지만 진동농협은 소득, 생필품 등 생활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다 보니 구심점 역할을 했어요. 지금은 직접적인 관련을 찾기가 어려워졌죠. 자칫 농협이 위치를 잃을 수도 있기 때문에 '지역민과 함께'를 강조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서 조합장은 60여 년 동안 진동을 벗어난 적이 없다. 부지런한 발품 덕에 구석구석까지 진동에 관한 한 모르는 게 없을 정도다. 조합장 중에서도 중간인 연령대는 위아래 소통에 수월한 장점이 됐다. 남다른 소통 방법을 살짝 공개하기도 했다. 바로 '미더덕 선물'이다. 진동에 대한 애착이 차고 넘친다.

"저는 주어진 일에 온 정성을 쏟을 뿐입니다. 진동면에서 60여 년을 살았습니다. 변해가는 것도 진동면 발전이라고 생각하면 좋지만, 고향이라고 생각하면 너무 변해서 마음이 불편하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점점 바다가 보이지 않고 농사지을 농토가 없어지는 게 아쉽죠. 조합장이 큰 벼슬도 아닙니다. 농민 마음을 헤아려 보듬고 큰 건은 해결하지 못해도 뒤치다꺼리하는 게 제 역할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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