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부 정책은 적당주의 부추겨
집요한 집착이 성과 내는 진짜 힘

3년 만에 세월호가 떠올랐다. 3년 전 맹골수도의 거센 물살 앞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무기력함과 죄책감을 뒤로하고, 드디어 세월호를 물 밖으로 건져 올렸다. 재킹 바지선, 반잠수식 선박이라는 기술이 있었지만, 세월호를 건져 올린 진짜 힘은 긴 시간을 보내면서도 "잊지 말자"는 많은 국민의 강한 집념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어떤 일에 빨리 달아올랐다가 시간이 지나면 쉽게 잊어버리고 싫증내는 우리의 냄비근성을 경계하듯, 사고 당시 '세월호, 잊지 않겠습니다'는 캠페인이 일었다. 노란 리본은 세월호 참사를 일깨우는 상징이 되었고, '잊지 말자'는 그 집요함은 세월호를 들어 올리는 결과를 만들었다.

광복 이후 본격적인 산업화와 함께 우리 사회를 이끄는 구호는 '빨리빨리'였다. 남들 100년, 200년 걸려 하는 경제성장을 우리는 50년 만에 해냈으니 덜 자고, 덜 먹고, 덜 쉬는 것이 큰 미덕이었다. 목표가 정해지면 정해진 기한보다 빨리 달성하려는 속도전은 우리 사회의 행동규범으로 자리 잡았다. 어떤 일에 고집스럽고 끈질기게 매달리는 집요함보다는 유행과 대세를 좇는 변신이 더 유능한 것으로 대접받아 왔다.

역대 정부가 국가 경쟁력을 높이고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자 '미래성장동력' 분야를 발굴·육성해 온 사례를 보자. 노무현 정부는 2003년 10대 '차세대성장동력사업'을, 이명박 정부는 2008년 17대 '신성장동력'을 선정해 추진했다. 박근혜 정부는 2013년 메가프로젝트(13개), 2014년 미래성장동력(13개), 산업엔진프로젝트(13개), 2016년 국가전략프로젝트(9개) 등을 발표했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는 5년마다 이전 정부의 연구개발 주제와 전략은 온데간데없고, 새로운 연구개발 주제와 전략을 짜는 데 골몰한다. 이전의 사업은 낡고 쓸모없는 것처럼 되어버리고 여지없이 비난의 대상이 되고 만다. 그 동안 키워온 성장동력은 이런저런 핑계로 멈추거나, 그 성과마저도 물거품이 되는 경우가 있다. 과거 정부의 연구성과를 점검하고 피드백해서 결실을 맺으려는 집요함은 찾기 어렵다. 눈에 보이는 성과에 급급한 조급증이 미래성장동력 육성에도 그대로 투영되고 있는 것이다.

과학기술정책에서도 노무현 정부는 '과학기술중심사회', 이명박 정부는 '저탄소 녹색성장', 박근혜 정부는 '창조경제'를 내세웠다. 이렇듯 역대 정책은 5년을 시한으로 유행처럼 번지다가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뒤바뀐다. 아마도 다음 달에 들어설 신정부는 '4차 산업혁명 대응'이라는 정책으로 과학기술계를 뒤덮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수많은 경험에서 빨리빨리·조급함·잦은 변신은 졸속·부실·냄비근성이라는 부작용을 가져다 주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동일한 연구주제가 각 정부의 정책에 맞춰 다른 연구제목으로 각색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또한 시한부적인 정책과 제도는 연구자가 연구를 대충하는 '적당주의'를 부추기고, 연구 성과 창출에 대한 책임감마저도 약하게 만들었다.

세계적인 우수한 연구 성과는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연구시류에 부합하고 새로운 것만을 추구하는 적당주의로는 얻을 수 없다. 맹골수도의 거친 물속에서 세월호를 어렵게 들어 올리듯 집요함이 있어야 한다. 때로는 사람과 갈등하고, 때로는 연구비 빈곤에 고뇌하고, 때로는 불확실성과 고군분투하면서 얻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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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번의 실패 끝에 청색 LED를 세계 최초로 개발해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일본의 나카무라 슈지는 "세상을 바꾸는 것은 끝까지 해내는 힘"이라고 했다. 정부는 우수한 연구가 중단되지 않는 생태계를 만들어야 하고, 연구자는 연구보고서·논문발표·특허출원에 만족하지 않고 연구결과가 사회적 활용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집요한 집착을 가져야 한다. 집요함이 꿈을 이루게 하는 진짜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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