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다방 경아 씨 아버지 추모 연주
유택렬 화백 흐뭇해하는 모습 떠올라

며칠 전 세차게 내리는 봄비에 마음이 애잔했다. 겨우내 봄을 기다렸다가 막 꽃봉오리를 터뜨리며 봄을 만나려는 여린 벚꽃잎들이 봄비에 속절없이 꽃비로 내렸다. 비 내리는 거리의 사람들 우산 위와, 차 위, 도로 위에서 비에 젖어 떨고 있는 듯한 꽃잎들을 보며 한참 마음이 아팠다.

지난 토요일 진해 '흑백다방'에서 작은 행사가 열렸다. 사람들이 붐비는 중원로터리를 지나 흑백다방으로 향했다. 다소 낡은 듯한 하얀색 벽면의 2층 건물과 초록색으로 덮은 담쟁이가 오가는 사람을 먼저 반겨주었다. 고 유택렬 화백이 까치의 이미지에서 따온 흑백다방은 진해의 문화예술 무대가 되기도 하고, 문화예술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해온 곳이라고 한다. 지금은 '시민 문화 공간 흑백'으로 운영되고 있다. 늘 그곳에 가면 흑백 사진처럼 추억이 떠올려진다.

갓 스물이 된 해, 진해에 사는 같은 과 선배 언니의 초청을 받아 흑백다방에서 커피를 마시며 클래식 음악을 들었다. 그것을 계기로 클래식을 많이 좋아하게 되었으며, 봄이면 가끔 흑백다방을 들렀다.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 그곳에서 음악을 이야기하고 인생을 이야기했던 선배와 친구들이 흑백사진의 추억처럼 그리움으로 다가왔다. 문학을 하면서 문학인들의 행사에 참여하며 흑백다방에 대한 인연의 발길이 조금씩 잦아졌다.

올봄에는 '고 유택렬 화백 16주년 추모기념회 및 특별연주회'가 흑백다방에서 열렸다. 지난 비에 꽃잎들이 많이 떨어져 발길이 닿는 거리마다 꽃잎 융단이 깔린 듯 온통 연분홍빛으로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바람에 분분히 날리는 벚꽃잎들은 어우러진 사람들과 함께 봄의 향연을 펼치고 있었다. 우리는 봄눈처럼 날리는 꽃잎들을 나무 아래서 한참 동안 바라보며 마음껏 봄을 즐겼다. 우울했던 국내외의 모든 소식들은 잠시 잊은 채 오롯이 봄을 즐겼다.

유 화백의 둘째딸 경아 씨는 흑백다방이라는 주제로 쓴 시인들의 시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만든 피아노곡으로 사모곡과 추모곡을 연주했다. 유 화백은 부적이나 민화, 새를 보며 우리 고유의 멋을 재발견해 내는 작업을 해왔다고 한다. 이번 연주회는 한국의 영혼과 사상이라는 화단의 평가를 받아온 유 화백을 그리워하며 경아 씨가 특별 연주회를 연 것이다.

사모곡이라고 칭한 곡은 시인이 건네준 시를 보자마자 선율이 떠올라 작곡했다고 한다. '흑백에서'라는 김미윤 시인의 시를 보고 30분 만에 사모곡으로 만들었다며 잔잔한 이야기를 곁들이면서 피아노를 연주했다. '먼 사랑'이라는 시를 받고 나서는 며칠 동안 가슴앓이 하며 만든 아버지의 추모곡이라며 작곡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울먹이곤 했다. 늘 객석에서 연주만 듣다가 무대에 나와 유 화백의 추모곡인 시를 낭독하는 짧은 시간에 아련한 추억도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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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추모하는 마음으로 연주하는 경아 씨의 선율을 들으며 문득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올랐다. 살아계실 때 못다 한 효도가 자꾸만 마음에 걸려 연주하는 내내 깊은 슬픔을 참아내느라 힘들었다. 선율에 담은 아버지를 연주하는 경아 씨 모습을 보며 유 화백의 흐뭇해하는 모습도 떠올랐다. 유 화백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그린 새들이 그림 속에서 날개를 천천히 펼치며 선율을 따라 나는 듯했다. 흑백의 공간에서 피아노 선율 따라 아기새가 어미새를 따라 날고 있었다. 그녀는 선율을 따라 아버지를 가슴에 담아내고, 봄은 그녀의 선율 따라 우리 마음으로 흐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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