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등 출향 해녀의 삶 담아

<뭍으로 간 해녀>는 통영에서 기자로 일한 해녀의 아들이 어머니를 생각하며 쓴 책이다.

저자 홍경찬 씨는 '물질'하는 어머니를 위해 '글질'을 했다고 소회했다.

제주도 해녀들은 왜 뭍으로 왔나? 저자는 전쟁이 해녀를 육지로 보냈다고 썼다. 제주 해녀가 뭍으로 온 이유는 감태 때문이었다.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쓸모없던 감태는 화약 원료가 되고, 군용식량이 된 소라는 크게 값이 오른다.

해녀들은 돈을 벌려고 육지로 왔다.

이렇게 번 돈으로 자녀 공부를 시켰고 더러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고 사회주의자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역사는 사회주의자가 된 이들에게 4·3 사건을 주고 6·25를 주면서 비운을 겪게 한다. 1987년 태풍 셀마가 통영을 강타했다. 태풍으로 2500여 년 전 연대도에서 활동하던 신석기인 인골에서 오랜 기간 잠수하는 사람의 고막 안쪽 뼈가 튀어나와 생기는 외이도골종이 발견된다. 잠수어로는 가장 오래된 인간의 직업임이 통영에서 확인됐다.

저자는 4살 때 해녀 어머니 송옥자 여사를 따라 통영으로 온다. 송옥자 해녀는 1948년 4·3 사건이 발발한 해에 태어났다.

<뭍으로 간 해녀> 저자 홍경찬 씨.

통영에서 학교를 다닌 저자는 서울문화투데이와 통영 지역신문 한려투데이에서 기자로 활동하다 물질하는 어머니에게 진 빚을 갚고자 해녀 기록을 모았다.

돋보이는 것은 어머니와 출향 해녀들을 향한 저자의 깊은 애정이다.

책에서 통영 비진도 고인순 해녀는 로맨틱한 여성으로 기록했다. 비진도 5명의 해녀 가운데 마지막 해녀인 그는 집안 반대를 무릅쓰고 제주도에서 야반도주를 해 사랑을 택한다. 비진도 홍덕자 해녀는 21살에 갓난아기를 안고 섬으로 들어와 비진도에서 물질을 배웠다. 덕자 씨가 바다로 가면 동네 주민들은 아이에게 젖을 물린다. 이후 비진도에 들어온 남편은 큰딸이 유치원에 입학하자 요리사가 돼 섬에 중국집을 열고, 섬 아이들은 해녀 남편 덕분에 짜장면을 먹을 수 있었다.

허윤선 해녀는 포항과 부산에서 물질하면 번 돈으로 고향 서귀포에 밀감나무를 심기도 한다.

17일 오후 7시 통영 봉평동 통영제주나잠부녀회관에서 저자는 북콘서트를 연다. 212쪽, 1만 8000원.

문의 055-681-9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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