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이 품고 있는 이야기] 경남은행 본점(창원시 마산회원구)
85년 공론화…92년 완공, 당시 300억 투입 '매머드급'
제일은행 본점과 닮은꼴…마산 석전동 한자리 지켜
"경남은행 발전·미래상" 지역 역사·자부심 상징

건물은 살아있지 않지만 또 살아있는 것이기도 하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비록 외관은 흐트러지겠지만, '숙성'이라는 말처럼, 그 공간 속 이야기는 묵직하게 쌓여갈 것이기 때문이다. 경남에서 제법 알려진 건물들을 찾아 그곳이 품고 있는 이야기를 정기적으로 풀어보려 한다.

저는 '경남은행 본점'이라 불리는 건물입니다. 마산시 석전동(현 창원시 마산회원구)에서 1992년 5월 22일 태어났으니 벌써 25살이나 되었네요. 여전히 저를 '창원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많아 감사한 마음입니다. 아마도 지역민들이 '경남은행'이라는 존재 자체에 쏟아내는 애틋함이기도 할 것입니다. 오늘은 제가 탄생하기까지, 그리고 이후 25년 넘게 제 안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풀어볼까 합니다.

경남은행은 1970년 5월 22일 창립했는데요, 행원 23명 등 총 54명으로 출발했다고 합니다. 당시 마산시(현 창원시) 오동동 건물을 임시 본점으로 사용했고, 그해 10월 30일 인근 창동에 2층짜리(전체면적 442평) 건물을 완공하면서 '창동 본점' 시대를 열었다고 합니다. 이후 1983년 10월 '창동 본점'은 바로 옆 국민은행 마산지점 건물을 매입해 '지상 4층 규모'로 확장했다고 합니다.

경남은행 본점 전경. /박일호 기자 iris15@idomin.com

그런데 경남은행은 업무 영역을 넓혀가면서 본점이 포화상태에 다다랐다고 합니다. 당시 창동 본점 서무부에서 근무했던 권우상(60) 씨는 이런 기억을 전해줍니다.

"창동 본점은 경남은행과 희로애락을 함께한 사옥이죠. 하지만 날로 늘어나는 영업망을 고려했을 때 본부 기능을 수행하기에는 비좁았습니다. 실제로 각기 다른 네 개 건물에 부서 일부를 분산하는 등 궁여지책을 짜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업무 비효율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죠."

1985년 5월 20일 '창립 15주년 기념식'에서 본점 신축 얘기가 처음 공론화되었다고 합니다. 이재진 당시 은행장(제4대)은 저를 탄생시키기 위한 비전을 이렇게 제시했다고 합니다.

"백년대계를 위해서 본점 신축이 선결 과제입니다. 증자나 이익의 사내유보 등 자기자본 충실을 기하여 가급적 빠른 기간 내에 본점 신축이 이뤄지도록 하겠습니다."

이에 1986년 5월 본점 신축 터 물색 작업에 들어갔고, 1988년 1월 마산시 석전동 현 자리(창원시 마산회원구 3·15대로 642)에 터 2551평(8433.05㎡)을 매입하게 됐다고 합니다. 두 달 후 마산시로부터 건축허가를 받고 1989년 기공식에 들어간 거죠.

▲ 1989년 3월 24일 착공한 경남은행 본점./경남은행

그런데 제가 지금 여기 아닌 다른 곳에서 태어날 수도 있었습니다. 경남은행이 애초에는 창원시청 앞(현 롯데마트 창원중앙점)을 낙점해 터 매입까지 했다고 합니다. 당시 경남도청·한국은행 경남본부·KBS 창원방송총국 등 공공기관이 잇따라 창원으로 이전하던 때였습니다. 이 때문에 '창원으로 경제 쏠림'을 우려한 마산상공인들 우려 목소리가 컸고, 경남은행이 이를 받아들여 지금 자리를 택하게 됐다고 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1989년 3월 24일, 동산토건㈜과 향토건설업체 유신건설(유)이 시공을 맡아 공사에 들어갑니다. 당시 1990년대 건물로는 파격적인 '빌딩 오토매틱 시스템'이라는 걸 적용했고, 민인터내셔널이라는 유명한 전문업체가 사무공간 디자인을 맡았습니다. 삼성에버랜드는 주변 500여 평 되는 조경공사를 담당했죠.

당시 신입 행원으로 공사 과정을 지켜본 이성철(50) 지역발전홍보부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철골·철근·콘크리트 공정을 마치고 이탈리아 수입 대리석·경량 칸막이·화강석·복층 유리 등의 고급 자재가 내외부에 시공될 때는 고급스러움과 우아함을 자아냈습니다. 경남 최대 업무용 빌딩이자 초현대식 건물인 본점은 지어질 때부터 단골 이야깃거리 중 하나였죠."

마침내 저는 1992년 5월 22일 '창립 22주년 기념일'에 맞춰 그 모습을 공식적으로 드러냅니다. '석전동 본점 시대' 주인공으로 말입니다.

이제부터는 전해 들은 것이 아니라, 제가 직접 보고 들은 '내 안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제가 탄생하자 한 신문에서는 '매머드 건물'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습니다. 총공사비 300억 원, 지하 2층·지상 17층·옥탑 2층·높이 78.65m, 건축면적 912평(3014.86㎡)·전체면적 8910평(2만 9456.53㎡) 규모였고, 당시 경남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기도 했으니까요. 지하에는 무려 1555개에 달하는 금고를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을 두고 있기도 합니다.

석전동에서 나고 자란 이석희(60) 씨는 저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1990년대 당시 경전선 마산역에서 나오면 가장 높은 빌딩으로 먼저 눈에 들어왔어요. 지금은 더 높은 건물·아파트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지만 당시 지역민들에게는 큰 자부심이었죠."

그런데 제 겉모습을 보고 낯익다고 말하는 이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서울 종로구에 앞서 지어진 제일은행 본점(1987년 10월 5일 신축)과 비슷하다는 거였죠. 저도 사진으로 보니 쌍둥이 같은 느낌이 들긴 했습니다. 알고 보니 경남은행 본점 설계 당시 이재진 은행장 의견이 상당 부분 반영됐다는데요, 그가 다름 아닌 제일은행 출신이었던 거죠.

제가 들어서면서 석전동은 아주 주목받는 곳이 되었습니다. 어느 신문에서는 '마산시 석전동 새로운 금융타운 부상'이라는 제목으로 '경남은행 본점 건물을 중심으로 증권사·보험사·은행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이러한 금융가 형성으로 일반 사무실 임대가 쉽지 않다'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이제 상황이 많이 변했지만 여전히 저는 '마산 석전동'을 25년 가까이 지키고 있습니다. 그동안 본점 내부 환경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영업부·강당·아트리움·사내식당 등 몇 곳을 제외하고, 초기 배치된 CPX사무실·TT실·팩시밀리실·테이프보관실·전산부 등이 금융환경 변화와 함께 사라졌습니다. 대신 누리마당(문화공간)·경남은행갤러리가 새로 조성되는 등 지역민 문턱을 한층 낮췄습니다.

손교덕(57) 현 경남은행장은 1978년 수습 행원으로 들어와 40여 년간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경남은행 본점 건물이 담고 있는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죠.

"경남은행은 자본금 3억 원에 임직원 54명이라는 소규모로 시작해 지역금융을 선도하는 은행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래서 본점 건물은 경남은행 발전상이자 미래상이기도 합니다. 자랑스러운 역사이자 사료로 잘 유지해 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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