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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접받아 마땅할, 1100년 연꽃의 고향 함안 옥수늪

[습지 문화 탐방] (4-2) 함안 연꽃테마파크와 옥수홍련·옥수늪
'소담·은은'연꽃 가득한 테마파크, 제방 축조법 알려주기도
사유지 옥수늪 '매립·개간'아픔…식생 정비 등 보전 필요

2017년 04월 25일(화)
공동취재팀 pole@idomin.com

◆옛 습지에 들어선 새 습지 = 함안에 가면 함안연꽃테마파크가 있다. 가야읍 나들머리의 함주공원과 가깝다. 가야동늪지 또는 가야습지라 이르던 곳이다. 함안군은 일대 10만9800㎡에 2008~2013년 100억 원을 들여 공원을 새로 꾸몄다. 가야동늪지는 아라가야의 왕궁 자리로 알려져 왔다. 공원 조성에 앞선 문화재 발굴에서 관련 유적이 나오지 않을까 은근한 기대가 있었다. 왕궁 유적은 발견되지 않았고 대신 제방 유적이 나왔다. 왕궁을 둘러싸는 토성으로 짐작되던 것이 옆 신음천에서 물이 들지 못하도록 막는 제방으로 확인되었다. 1500년 전 안팎 가야시대 것이었다. 함안군은 개발·활용보다 현상 보존이 낫다고 여겨 흙으로 다시 덮었다.

신음천은 여기를 지나 곧바로 함안천과 합해진다. 함안천은 다시 북쪽으로 6㎞를 달려 남강과 만난다. 그러면서 운곡천과 옥렬천 등을 더 받아들인다. 이처럼 1500년 전 가야읍 일대는 여러 물줄기가 겹쳐져 사람이 들어서기 어려운 습지였다. 이런 데를 옛날 사람들이 끝자락이나마 농토로 만들려고 힘들여 제방을 쌓았다. 그래서 함안연꽃테마파크에는 "고대 낙동강 중·하류역의 농경지 개척 현황을 알 수 있는 좋은 자료이며 특히 고대 제방의 축조방법을 알려주는 중요한 토목사적 유적"이라 적힌 안내판이 있다.

◆새벽부터 사람들이 몰리는 까닭 = 팽개쳐져 있던 묵은 습지를 재활용하여 습지의 여러 효용 가운데 심미적 가치를 특화한 셈이다. 아름다운 풍경을 누리며 지친 심신을 어루만지고 달랠 수 있도록. 함안연꽃테마파크는 채 5년이 안 되었는데도 이름이 크게 났다. 연꽃이 만발하는 7~9월에는 새벽부터 붐빈다. 주말·공휴일이 아닌 평일도 그렇다.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마음껏 꽃도 구경하고 사진도 찍을 수 있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이지 싶다.

연꽃이 대단한 데는 여기 말고도 적지 않다. 전북 전주 덕진공원이나 전남 무안의 백련지가 그렇다. 하지만 거기서는 연꽃에 바짝 다가가지 못하고 먼발치서 보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함안연꽃테마파크에서는 꽃송이에 얼굴을 밀착시킬 수도 있고 손으로 만질 수도 있다. 꽃술과 연밥이 어떻게 생겼는지, 꿀벌이 몇 마리나 웅웅거리는지 등이 손금처럼 들여다보인다. 특수렌즈가 없는 똑딱이 카메라나 폰카를 갖고도 꽃송이 하나로 화면을 가득 채울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고유 연꽃의 대표 = 게다가 여기 연꽃은 다른 데서는 볼 수 없는 명품이다. 하얀 백련이나 꽃이 수면에 붙어 피는 수련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주인공은 옥수홍련이다. 함안 법수면의 옥수늪에서 옛날부터 절로 자라던 연이라서 붙은 예쁜 이름이다. 사람 취향에 맞추어 개량을 거듭한 연꽃이 아니라 원래 모습과 성질을 제대로 간직한 토종이다. 사람이 바빠지고 세상도 빨리 돌아가는 때문인지 요즘 연꽃은 눈길을 단박에 끌어당길 수 있도록 색깔이 화려해졌고 덩치가 커졌다.

옥수늪 바로 옆 논

반면 옥수홍련은 뚜렷한 잎맥을 따라 퍼지는 색깔이 그윽하고 은은하다. 꽃송이는 소담하고 키 또한 1m 안팎으로 크지 않다. 옥수홍련의 DNA는 신라 경주 왕궁 안압지에 있는 연과 같다. 1100년 전 원래 품성을 여전히 품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옥수홍련은 2007년 서울 경복궁 경회루 연꽃 복원에도 쓰였고 2016년에는 경북 울진의 명소 연호정으로도 보내졌다. 우리나라 고유 연꽃의 대표격이 되었다고 하겠다.

◆초라한 현재 모습 = 그러면 옥수홍련을 배출한 옥수늪은 어디 있을까. 법수면 법수초교 근처에 농협경남물류센터와 롯데하이마트경남물류센터가 있다. 둘 다 옥수늪을 매립한 위에 들어선 건물이다. 옥수늪은 그 사이에 쪼그라진 채 셋으로 나뉘어 있다. 농협과 롯데하이마트 사이에 하나, 농협 뒤편 들판 쪽에 둘. 원래는 5만㎡ 남짓이었지만 1993년에 절반 가까이가, 2004년에는 나머지 대부분이 매립되었다. 제각각 건물터와 농지 조성이 목적이었다. 길에서 만난 할매 한 분은 "50년 넘어 시집왔을 때는 모두 뻘탕이었다. 배고픈 시절 먹고살려고 고생고생해서 논을 만들었지"라 했다. 뻘탕은 진흙탕을 이르는 경상도 지역말이다.

농협경남물류센터 뒤쪽 옥수늪. 옥수홍련의 고향이지만 지금은 방치돼 있다.

옥수늪으로 흘러드는 물줄기는 서남쪽 천제산(230m) 언저리에서 나온다. 다른 한편으로 윤내저수지의 물도 받아들인다. 물줄기는 개울을 이루지 못했다. 아래로 가면서 넓어지기는 하지만 근본은 봇도랑 물길이다. 직선 제방에 갇힌 채 가로세로 들판을 지르고 남강으로 들어간다. 그래서인지 이름도 없다. 들판에서 할배 한 분에게 여쭈었다가 "이름 묻는 사람은 팔십 평생에 처음이네" 하는 지청구만 들었다.

옛날에는 어땠을까. 물은 산비탈을 빠져나와 평평하고 너른 벌판을 만나면 속도와 방향을 잃고 대중없이 흩어진다. 물이 스며드는 낮은 지대는 접근이 어려웠고 논밭과 집은 산기슭이나 언덕배기 가까이 있었다. 일대가 얼마나 낮은지는 지금도 바로 옆 제방 너머 논을 보면 알 수 있다. 분명 논이지만 오리 200~300마리가 떼로 헤엄칠 만큼 물이 깊고 그득하다. 제방에 있던 할매 한 분이 "나락농사밖에 못하네. 사철 물이 나서 채소 같은 농사는 지을 수 없으니"라 일러주었다. 이처럼 주변이 논으로 바뀐 뒤에도 움푹한 자리에는 물이 솟거나 흘러들어 고였고 사람들은 이를 옥수늪이라 했다.

일대 옛날 지명이 막등(幕嶝)이었다는 사연도 있다. 1920년대 남강·함안천에 제방을 쌓기 전 여기 늪지대에는 뽕나무가 많았다고 한다. 뽕잎으로 누에를 치면 실을 뽑을 수 있었다. 살기 좋은 조건은 아니었지만 몇몇은 자리를 잡았다. 반듯한 집은 짓기 어려워 원두막(幕) 비슷한 거처를 야트막한 비탈(嶝)에 지었다. 1500~2000년 전 고대 유적지에나 있는 고상(高床)가옥이 100년 전 옥수늪 주변에 있었다.

함안연꽃테마파크 옥수홍련

◆옥수늪을 보전하면 = 지금 옥수늪은 초라하다. 옥수홍련의 고향을 계속 이대로 두면 곤란하다. 함안군·한국수자원공사·한국농어촌공사·낙동강유역환경청 등 관계기관과 지역 주민·환경단체가 머리를 맞대면 지금 몰골은 쉽게 벗어날 수 있다. 구석구석 쓰레기와 나무 위 마른 덤불과 바닥의 낚시 흔적부터 치우고 지워도 많이 나아질 것이다.

옥수늪은 옥수홍련의 고향답게 대접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옥수늪은 사유지다. 보전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었는데도 여태껏 매립과 개간을 피할 수 없었던 이유다. 지금 면적이 넓지 않은 것은 어쩌면 오히려 다행이다. 공유지로 만드는 데 나랏돈이 많이 들지 않을 테니까. 다음으로는 주변 식생을 정비하고 탐방로를 마련하면서 옥수홍련으로 옥수늪을 채워 사람들로 하여금 자주 찾게 만드는 것이다.

함안은 우리나라 연근의 으뜸 생산지이기도 하다. 2016년 현재 함안의 연근 재배 면적은 70만㎡ 남짓으로 전국의 12%에 이른다.

이렇게 해서 옥수늪이 고향인 옥수홍련을 보전하고 알릴 수 있게 되면 함안 연근의 브랜드파워도 덩달아 높아질 것이다.

주관 : 경상남도람사르환경재단

문의 : 환경교육팀 055-533-9540, gref2008@hanmail.net

수행 : 경남도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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