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한 간돌검은 형태가 특수하고 산꼭대기에서 출토된 것인데 아주 특별한 경우다."

통영 한산도 망산 봉수대에서 사례가 드문 청동기시대 간돌검(마제석검)이 출토됐다. 또 이곳이 청동기시대부터 조선, 근대까지 주요 군사 시설로 활용된 사실이 확인됐다.

문화재청은 이곳에서 청동기 시대 해안 제사유적과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통제사로 있던 당시 한산도 삼도수군통제영이 관할했던 봉수대 시설을 확인했다고 27일 밝혔다. 또 이 유적에서 러일전쟁 관련 신호소 유적 등이 확인되는 등 중요유물과 흔적이 무더기로 발굴됐다.

이 조사는 문화재청 허가를 받은 (재)경상문화재연구원(연구원)이 했다. 한산도 봉수대는 한산도 정상인 해발고도 293.5m 망산(望山)에 있다. 봉수대는 임진왜란과 관련 있다는 사실만 알려졌을 뿐 체계적인 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성격이 모호한 상태였다.

간돌검. /문화재청

연구원은 망산 정상부에 있는 봉수대의 내부에서 간돌검(磨製石劍·청동기 시대 대표 석기) 1점이 들어 있는 수혈(竪穴·구덩이)을 찾았다. 이 수혈은 풍어와 해상 안전 기원 의식이 이루어진 청동기 시대 해상 제사유적으로 발견 사례가 드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간돌검은 국내 3~4곳에서 발견돼 희귀하기도 하지만 이처럼 형태가 특수한 경우는 드물다는 것이 발굴팀 설명이다.

이와 함께 망산 정상부에 축조된 연조(불을 피워 연기나 횃불을 올리던 굴뚝)는 기반암을 凹자형으로 뚫어 만든 수혈식으로 드러났다. 조선 시대 봉수체계는 5개의 연조로 이루어진 신호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현재 4개소가 확인돼 앞으로 1개소가 더 나올 가능성이 크다. 이 연조는 임진왜란 당시 봉수 신호체계를 밝히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한산도 망산봉수대는 그동안 전하는 말 외에 정확한 문헌 기록이 없었지만 이번 발굴로 임진왜란 당시 실전에 사용됐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것에서 의미가 크다.

이와 함께 봉수대 안에서 러일전쟁 관련 신호소도 확인됐다. '신호소'란 해상감시, 선박과 교신, 기상 관측, 인접 신호소·통신소와 연락을 하는 곳이다. 신호소 내부에는 당시 일본 규격의 붉은 벽돌과 석탄, 일본자기 완(碗), 시세이도사 제품인 크림치약 용기 등이 나왔다. 신호소는 벽체와 지붕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1904년 2월 러일전쟁이 발발한 뒤 일본 군부가 봉수대 관련 시설을 신호소로 급조해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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