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구가스 파는 '식방'과 공유 공간 '코스페이스'
그곳에서 녹색꿈을 꾸다

'아구가스'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찜이나 탕으로 주로 먹는 아귀를 돈가스처럼 튀긴다? 일단 음식에 대한 궁금증으로 '식방(食房)'에 방문했다. 바삭하고 고소한 아구가스 맛을 보며 이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들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마산 창동'에 있는 낡은 건물에서 재미있는 일들을 쉴 틈 없이 벌이고 있다는 증거(?)가 곳곳에 보였다. 그래서 식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이야기를 듣기 위해 다시 식방을 찾았다.

장태선(41) 씨가 건넨 명함에서 주방장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그는 이 식당의 대표이자 주방장이지만 혼자 이 공간을 운영하는 것은 아니다. 연인인 김두연(38) 씨가 태선 씨와 늘 함께하고, 문지희(46) 씨, 김민경(40) 씨는 다양한 방법으로 '코스페이스'를 채우고 있다. 그들은 어떤 꿈을 그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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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방 주방장 장태선 씨. /서정인 기자

노래패 활동, 사법고시 공부, 협동조합 현장까지

태선 씨는 중학생 때까지 의령에서 지냈다. 고등학교는 진주에 있는 곳에 진학했고 이어 경상대에 입학했다. 그는 법학을 전공했고 사법고시도 봤다고 했다. 법학을 전공했다는 말이 조금 의외였다. 어딘지 모르게 그에게서 자유로운 분위기가 흘렀기 때문이다. 요리를 하고 있다는 점도 그 이유였다. 그가 책상에 앉아 딱딱하게 공부하고 있는 모습을 쉽게 상상할 수 없었다. 태선 씨는 대학 시절 노래 동아리에 가입해 내내 활동했다. 운동권 성향을 띤 노래패였다.

"학교에서 '지리산'이라는 동아리 활동을 했어요. 총학생회 밑의 중앙노래패였어요. 총학생회와 함께 다니는… 거기서 전 앰프 맡고(웃음) 짐 나르고, 교육 담당 같은 걸 했죠."

동아리 활동을 하며 사회를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게 됐다. 어떤 방법으로든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 힘을 보태야겠다고 생각했다. 뚜렷한 이유가 있어서 법학을 전공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학교에 다니면서 목표가 생겼다. 사법고시에 합격해 사회적 모순을 바로잡는 데 일조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졸업하고 나서 사법고시를 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첫 시험은 서른에 쳤던 것 같아요. 제 졸업학점이 뒤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었거든요. 사법고시 공부를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했어요. 그러니 1차는 붙어도 2차는 떨어지더라고요."

35세까지 시험에 계속 도전하다가 결국 취업을 택했다. 먹고살기 위한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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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방의 대표메뉴. / 서정인 기자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으로 취업했어요. 꽤 오래 일했죠."

그러다 두연 씨도 만났다.

두연: 합천 해안사 근처에 집 짓고 사는 커플이 있었어요. 저는 생태공동체에 관심이 있어서 생태공동체를 돌아다녔어요. 그러다 한 언니를 알게 됐는데 그 언니가 녹색당 당원이어서 당원이었던 이 분(태선 씨)을 알고 있었던 거예요. 그 언니 소개로 만났어요."

태선 씨는 2013년 변호사 사무실을 그만뒀다. 더 보태자면 해고를 당했다. 그때 마침 협동조합 바람이 한창 불던 때였다. 생계를 위한 일은 접고 지역사회를 위하는 협동조합 현장을 경험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 하지만 직접 뛰어든 현장은 태선 씨 생각과 다른 분위기였다.

"다 얘기하자면 복잡한데… 협동조합을 너무 개인 장사처럼, 사업 관점에서 바라보는 분위기. 직원들을 단물 빨아먹고 자르는 행태를 너무 받아들이기 힘들었어요. 사회를 변화시켜보겠다는 취지로 만드는 협동조합인데 그런 마인드로 돌아가니까 견딜 수 없었죠."

건강한 먹거리를 연구하는 곳 '식방'

일을 그만두고 태선 씨는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가 늘 그려온 일은 공동체 활동이었다. 공동체의 가장 기본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다. 그러다 먹거리로 주제가 이어졌다.

"함께 무언가를 먹는 것에서부터 인간관계가 시작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아무거나 먹는 게 아니라 먹거리도 건강한 먹거리를 먹어야 건강한 관계가 된다고 생각해요."

인터뷰를 위해 식방을 찾았을 때도 모여 있던 태선, 두연, 지희, 민경 네 사람은 먹거리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었다. 채소로만 만든 카레, 감자 면에다 각종 향신료로 맛을 낸 건강한 라면, 버터·계란·우유를 쓰지 않고 만드는 빵을 맛보며 요리법, 식재료, 채식에 대한 이야기를 활발히 나누고 있었다. 식방은 바른 먹거리를 위해 고민하는 곳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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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방에서 만난 사람들. 왼쪽부터 김두연·문지희·김민경·장태선 씨. /서정인 기자

식방의 대표 메뉴는 생등심돈가스, 마산아구가스, 식방우동, 감자라면이다. 이 중 돈가스, 아구가스, 감자라면 세 가지를 먹어보았다. 돈가스와 아구가스는 기름기가 덜 하다는 느낌이 가장 먼저 들었다. 돼지고기와 아구살은 잡내 없이 고소했다. 향신료와 허브로 만든 수프에 감자 면과 숙주를 넣어 끓이는 감자라면은 어디에서도 먹어본 적 없는 맛이었다. 입에 한입 넣자마자 느껴지는 매콤함은 오래가지 않고 개운했다. 그중에서도 단연 아구가스에 반했다. 갓 튀긴 아구가스 맛은 지금까지 먹어온 비릿한 생선가스와 완전히 달랐다.

"원래 예비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움직였거든요. 그래서 작년에 시작할 때 로컬푸드를 생각했어요. 창원시 마산 진동에서 홍합 전국 사용량 70%를 공급하니까 홍합을 가지고 요리해보자고 생각했어요. 레시피를 주신 분도 있고 공간을 마련해주겠다는 분도 계셨죠. 그래서 이거는 하늘에서 바로 실행하라고 내리는 계시다 싶어서 급히 서둘렀죠. 준비가 부족했고 시장분석이 안 된 상태에서 움직였어요. 나중에 보니 도저히 제가 홍합요리를 해낼 실력이 안 되더라고요.(웃음) 종목 변경이 필요했어요."

일단 머릿속에 떠오른 가장 대중적인 음식은 돈가스였다. 하지만 돈가스만으로는 부족할 듯했다.

"돈가스만으로는 안 되겠다 싶었어요. 지역색을 넣고 싶었거든요. 호텔 주방장을 하셨던 조철 선생님이라고 분이 전북 장수에서 60년 동안 돈가스를 만들고 계세요. 그 선생님하고 지역에 맞는 아이템을 생각하다가 돈가스에 아구찜을 더해서 아구돈가스를 만들기로 했어요. 근데 이 음식이 손이 굉장히 많이 가고 장사해서 내놓기에는 좀 어려운 부분이 있었어요. 그러다 그럼 진짜 아귀를 가지고 가스를 만들자는 걸로 의견이 모아져서 아구가스를 만들게 됐어요."

준비는 2016년 4월부터 해서 9월에 문을 열었다. 태선 씨는 재료 욕심이 많다. 돈가스와 아구가스가 기름에 튀긴 음식이기에 몸에 부담이 갈 만한 부분은 최대한 보완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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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방의 아구가스. 생선가스와 잘어울리는 타르타르소스, 샐러드, 밥이 함께 나온다. /서정인 기자

"돼지고기는 정읍에서 가져온 친환경 무항생제 고기를 쓰고 튀길 때도 일반 요리유에 비해 훨씬 비싼 현미유 사용해요. 밀가루 쓸 때도 약재를 함께 넣고…"

그러다 보니 판매하는 가격에 비해 원재료 비용이 높다. 하지만 태선 씨는 타협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아귀는 어시장에서 40년 넘게 아귀만 취급하는 곳에서 가져온다. 처음에는 국산이 좋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예상과 달리 우리나라 근해에서 잡힌 것은 아귀 요리에 적합하지 않다고 주변 전문가들이 조언했다고 한다.

"근해는 따뜻하잖아요. 따뜻한 데서 잡히는 것은 살이 물렁물렁하고 깊고 차가운 바다에서 잡힌 아귀는 단단하데요. 그래서 중국 심해에서 잡힌 아귀를 쓰고 있어요."

튀김기는 수유식튀김기를 사용한다. 일반 튀김기에 비해 3배 정도 비싼 기계다.

"물과 기름이 있으면 기름이 뜨잖아요. 그 원리를 이용해서 음식을 튀기고 나서 생기는 찌꺼기들을 물속에 가라앉게 해요. 그리고 고깃기름이 물과 기름 사이에 뜨거든요. 보통 튀김기면 그걸 섞어서 튀기기 때문에 느끼한 맛이 나는데 이렇게 튀기면 느끼한 기름 맛이 줄고, 트랜스지방도 낮춰지니까 사용하고 있어요. 여기 위치가 장사가 잘되는 곳도 아니고 제가 유명한 요리사도 아니니까(웃음) 가격은 이 정도로 하려고요. 돈 벌려고 하는 게 아니라 이곳을 일단 유지하자는 생각이니까요."

누구나 공유하는 공간 '코스페이스'

'식방' 간판이 붙어있는 건물 1층의 좁은 문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면 바로 식당인 식방이다. 3층은 문화공간으로 사용하고, 4층에는 태선 씨가 거주하고 있다. 물론 대관을 할 때는 2층도 손님을 받지 않고 비운다고 했다. 식방은 코스페이스의 한 부분이다. 더 정확히는 코스페이스 운영을 위한 자금을 버는 곳인 셈이다. 태선 씨는 다시 대학 시절을 떠올렸다.

"학교 다닐 때도 이런 걸 했었어요. 대학생 때 공장에서 돈 벌어서 넓은 이발소 반쪽을 빌렸어요. '무소유'라는 이름을 짓고 열린 주점, 식당 같은 걸 했었죠. 학교 사람들이 와서 술 마시고 그러면 전 열쇠 주고 '느그 알아서 해라'(웃음) 그런 식으로 운영했죠. 그때는 내가 사장이라는 개념이 아니라 그런 걸 벌여놓으면 동아리 애들, 친구들이 와서 두루치기, 라면, 닭똥집 같은 거 하고 싶다 하면 주방 맡겨놓고, 요리 해달라고 하면 하고… 인테리어도 친구들이 장승 같은 거 가져와서 놔두고,(웃음) 1년 정도 하고 졸업하면서 접었죠. 그거 유지한다고 아르바이트하고, 막노동도 했죠. 사람들은 와글와글 많이 오고 재미있었어요. 근데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경영에 대한 마인드가 없었거든요. 외상값 받고, 수입, 지출 관리하고 그런 걸 잘 못 했죠."

태선 씨는 코스페이스가 공동체 활동에 자유롭게 쓰이는 공간으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 이곳에서는 아주 다양한 모임이 이루어진다. 일단 채식 베이킹 모임이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다. 베이킹 모임을 이끄는 이는 문지희(46) 씨다. 예전에 방문했을 때도 갓 구운 쌀빵을 맛보라며 준 기억이 있다. 쫄깃한 식감에 씹을수록 담백한 맛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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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방과 코스페이스로 올라가는 1층 입구. /서정인 기자

지희: 원래 먹거리에 관심이 많았어요. 채식을 해보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사회생활하면서 채식하기가 힘들더라고요. 그러다 채식버거 쪽에 관심이 생겼어요. 버거 빵을 만들어볼까 싶어서 회사를 16년 다니다가 그만뒀어요. 우유·버터·계란이 들어가지 않는 빵은 소화가 잘되고 몸에 좋지 않은 성분이 없어요. 맛도 일반 빵에 뒤지지 않고요. 공방처럼 여기서 사람들이 빵을 같이 만들어볼 수 있게 하고 있고 앞으로 더 다양한 베이킹 모임을 할 거예요."

생태문화공간을 일구는 공동체 '온배움터'의 창원 모임과 각종 특강도 이곳에서 하고 있다. 김민경(40) 씨의 역할이다. 2016년에는 주역을 인문학으로 배우는 강좌, 하우스 맥주 만들기, 미술 특강 등이 열렸다. 주제에 제한을 두지는 않지만 모두 공동체의 이익과 배움을 위해 함께하는 활동이다.

올해 역시 다양한 일을 벌일 생각이다. 지역아동센터 아이들과 함께 텃밭을 가꾸고 소풍 밥을 해 먹으며 생명을 관찰하고 느끼는 농사놀이, 외국인과 어린이들이 함께 놀면서 공부하는 영어놀이 수업, 여성주의 타로인 마더피스 타로를 함께 공부하는 모임….

"코스페이스를 이용하는 팀들이 있거든요. 그분들과 함께 활동하고 네트워크도 만들고, 지역에서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보려고 해요. 4층이 집인데 방 하나를 아예 비웠어요. 거기에 외국인 게스트들을 받고 있는데 지금까지 세 분이 거쳐 갔어요. 타코 같은 외국 요리를 배우는 미니 워크숍을 가졌고 어떤 분은 자기 집에서 내려오는 커피 디저트 레시피를 가르쳐주셔서 함께 배우기도 했고요. 그렇게 요리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기도 하고 캠프처럼 하는 어린이 영어교실 같은 것도 할 거예요. 주변 주부들이 관심을 아주 뜨겁게 보내주시고 계세요.(웃음)"

이외에도 법륜스님 영상강의를 두 달 전부터 함께 보고 있고, 영어 스터디모임 역시 틈틈이 열린다. 그야말로 활짝 열려있는 공간이다. 물론 대관료는 있다. 하지만 대관료는 빌리는 이의 형편에 따라 달라진다.

"돈이 있는 단체면 어느 정도 대관료는 받고요. 사정이 좋지 않으면 그냥 쓰시라고 하죠. 이런 공유 공간이 많이 생기면 좋겠어요. 어떻게 운영하면 좋을지 다른 모델을 보고 배우기도 해야 하는데 아직 부족하죠. 시작하는 단계입니다."

태선 씨의 목표는 이 공간을 유지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건강한 먹거리를 함께 먹고 공부하고 교류하는 식방과 코스페이스를 운영하고 싶다고 했다.

"처음에는 조합 형태로 하려고 했거든요. 근데 그걸 못해서 지금 취지에 공감하는 분들과 조합으로 만들려고 준비하고 있는 중이에요. 어쨌든 살아남아야 하니까요. 활용을 많이 하이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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