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 딛고 희망을 던집니다."

지난해 4월 전국소년체전 육상 경기가 치러진 강릉종합운동장. 또래보다 체구가 작아 왜소하게도 보이는 한 선수가 힘차게 창을 던졌다. 기록은 44m 94㎝, 결과는 금메달이었다. 창을 잡은 지 3년 만에 이뤄낸 성과이자, 침체기를 걷던 경남 육상에 새로운 스타 탄생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검게 그은 피부와 짧게 자른 머리가 인상적이었던 선수는 당시 인터뷰에서 "평소보다 기록이 좋진 않았지만 금메달을 따 기쁘다"고 수줍게 말했다. 경남의 육상의 신데렐라로 떠오른 곽가심(김해가야고 1년) 선수를 1년 만에 다시 학교에서 만났다. 27일 김해가야고에서 만난 가심이는 운동복 차림이 아닌 교복을 입고 등장했다. 눈여겨보니 교복 한쪽에는 세월호를 상징하는 노란 리본 배지가 달렸다. "얼마 전에 친구가 줘서 달았는데, 뉴스를 보고 세월호가 인양되는 걸 알았어요. 희생자 대부분이 저랑 비슷한 또래였다는 사실에 무척 놀랐어요." 경기장에서는 냉정하리만큼 집중력을 보였던 그지만, 진지하게 세월호 이야기를 할 때와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 장래희망을 말할 때는 그 나잇대 소녀의 모습이 엿보였다.

전국이 주목하는 육상 꿈나무

가심이는 경남을 넘어 전국이 주목하는 육상 꿈나무다.

김해장유초 시절 학교운동회에서 멀리뛰기 1위를 차지하며 육상에 입문한 그는 내덕중에 진학하면서 종목을 창으로 바꿨다.

첫 시합에 출전해 좋은 기록을 내고도 제대로 된 경기규칙을 몰라 실격 처리됐던 그는 2학년 때 출전한 전국소년체전에서 2위를 차지했고, 지난해 메달 색깔을 바꾸며 기어이 금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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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가심 김해가야고 학생. / 김구연 기자

지금도 그는 처음 창을 잡을 때 느낌을 또렷이 기억한다고 한다.

"창을 처음 잡았는데 신기하고 재미있었어요. 멀리뛰기를 해서 인지 스텝을 밟은 리듬감이 비슷해 적응이 쉬웠던 것 같습니다."

가심이는 지난해 중학교 무대를 평정했다. 이제 고등학교로 진학해 2, 3학년 언니들과 경쟁해야 하지만 충분히 메달 획득도 가능할 것으로 주위에선 기대하고 있다.

김해가야고 황해명 교사의 기대를 받고 있기도 하다.

"가심이는 기록이 꾸준히 향상하고 있어 전국대회에서도 고학년 선수에 전혀 뒤지지 않아요. 타고난 운동신경에다 승부욕까지 갖춰 대성할 선수로 기대합니다."

가심이의 각오도 남다르다.

"주위에서 기대가 크다는 걸 알고 있어요. 제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바로 '포기'입니다. 함께 대회에 출전하는 선수들이 나보다 체격도 크고 학년도 높지만 무섭지는 않아요."

다문화 가정의 외동딸

가심이의 고향은 중국이다. 중국 칭다오에서 태어난 그는 '꿔커신'이라는 이름으로 11살까지 중국에 살았다. 중국인 어머니와 함께 2011년 한국에 정착하며 이름과 국적을 모두 바꿨다. 이름은 중국 이름이던 '꿔커신'을 한국 발음으로 바꿔 '곽가심'으로 정했다.

한국 국적을 취득하고 이름도 바꿨지만 한국 생활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언어였다. 11살까지 중국어로만 생활하던 그에게 한국어는 쉽지 않았다.

"한국에 올 때 언어가 가장 걱정이었어요.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혹시 따돌림을 당하지 않을까 생각이 많았어요. 어설프게 영어를 쓰기도 했는데, 정면 돌파를 해보자는 생각에 열심히 한국어를 배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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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가심 김해가야고 학생. / 김구연 기자

김해에 있는 다문화센터에서 한국어를 공부해 지금은 유창하게 한국어를 사용한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자신의 의견을 또박또박 거침없이 표현했다.

그는 지금 엄마랑 단둘이 생활하고 있다. 엄마는 김해에서 중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가게 일이 바빠 자신에게 신경을 못 써주는 엄마가 때로는 야속하기도 하지만 가심이에게 엄마는 언제나 힘이 되는 존재다.

"가게 일이 바빠 시합 때도 응원을 못 오시지만 항상 '자만하지 마라'고 나를 다독여주세요. 훌륭한 선수가 돼 좋은 집도 사서 엄마를 호강시켜 주고 싶은 게 목표입니다."

아이돌그룹 매니저를 꿈꾸기도 했던 소녀

꿈이 궁금했다. 국가대표나 올림픽 출전 같은 대답을 기대했지만 그는 '아이돌 매니저'가 되고 싶다며 환하게 웃었다.

"한때 아이돌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어요. 그런데 제 노래나 춤 실력이 미치지 못하는 걸 알고 일찍 포기했죠.(웃음) 그래서 매니저를 하면 아이돌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그런데 꿈이 자주 바뀌어요. 어떨 때는 군인이 되고 싶다가도 번역사로 바뀌곤 해요. 지금은 운동에만 전념하는 게 낫겠죠."

운동선수로서 그의 꿈은 한국 신기록을 수립하는 것이다. 여자 창던지기의 한국 신기록은 현재 경남체고 코치인 장정연이 보유한 60m 92㎝로 13년째 깨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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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가심 김해가야고 학생. / 김구연 기자

"물론 태극마크를 달고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도 좋지만 항상 '곽가심, 한국 신기록 수립'을 머릿속에 새기고 있어요.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그 꿈이 이뤄지도록 노력하는 선수가 되겠습니다."

다문화가정 학생이라는 다소 독특한 이력에다 날이 갈수록 성장하는 곽가심을 주위에서도 애정이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김해가야고 정홍균 교장은 "가심이가 경남을 넘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학교에서 뒷바라지를 하겠다"고 응원하고 있다.

혼자 꾸는 꿈은 그저 꿈에 불과하지만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라는 말처럼, 곽가심의 꿈은 주위의 관심과 사랑으로 머지않아 현실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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