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겨레 가슴에 피었던 목련꽃/홀연히 바람에 지고 말았네/우아한 그 모습 잔잔한 미소/지금도 들리는 다정한 그 음성/우리는 그님을 잊지 못하리라

40여 년 전 박목월 시인이 노래한 '그님'이 하늘나라로 떠나간 날 나는 꺼억꺼억 눈물 흘리며 울었었다. 옆에 서 계시던 아버지는 사내자식이 그만한 일에 울긴 왜 우느냐며 핀잔을 주시다 아들을 꼬옥 안아 주셨다. "다른 사람들도 울잖아요!" 그땐 국모가 돌아가셨는데도 태연자약한 아버지가 이상스럽기까지 했었다. 지금 생각하니 내가 텔레비전을 너무 많이 봤던 모양이다. 돌아보니 온갖 이미지 작업을 통해 어린 마음에 너무 큰 상처를 남긴 그들이 정말 밉기만 하다.

목련꽃은 고 육영수 여사가 무척 좋아했던 꽃이라 전해진다. 자신의 이미지를 목련꽃처럼 만들기 위해 '올림머리 고생'도 참 많이 했던 모양이다. 목련꽃 닮은(?) 올림머리 고생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문세광의 흉탄에 맞아 쓰러진 그님의 딸은 삼성동 자택에 목련꽃이 피던 날 법의 심판을 받아 구치소로 끌려갔다. 목련꽃의 저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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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련 꽃과 직박구리. /윤병렬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회장

목련은 화사해서 더 처연한 꽃이다. 화사함이 그대로 끝까지 이어지면 좋으련만 대부분 며칠을 못가 처연한 꽃이 되고 만다. 길가에 후두둑 떨어진 목련꽃잎은 잘못 밟으면 미끄러져 큰코다치는 바나나 껍질마냥 취급되기도 한다. 그래도 하얀 꽃이 나무 가득 활짝 핀 목련꽃 모습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꾸준히 사랑받아 왔다.

목련은 '나무에서 피는 연꽃'이란 뜻에서 온 이름이다. 얼핏 보면 목련과 연꽃은 비슷한 꽃 모양을 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꼭 알아야 할 사항이 있다. 앞서 얘기한 고 육영수 여사가 좋아했던 꽃,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삼성동 자택에 핀 목련꽃은 백목련이다. 사람들 대부분이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이기도 하다. 우리가 알고 있던 그 우아한 '국모'의 이미지가 사실과 달랐던 것처럼 목련과 백목련도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목련은 우리나라 제주도에서 자생하는 나무다. 꽃이 백목련에 비해 화려하지도 않고 활짝 피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목련이 제주도 한라산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간혹 볼 수 있긴 한데 많지는 않다. 반면에 동네 공원이나 집 정원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은 대부분 중국 원산의 백목련이다. 목련에는 백목련, 자목련, 자주목련, 별목련, 일본목련 등이 있다.

중국에서는 백목련을 목란이라 부른다. 백목련의 향기가 난초와 같다고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또 백목련을 목필이라고도 한다. 꽃봉오리가 붓을 닮아서 붙인 이름이다. 또 꽃봉오리가 피려고 할 때 끝부분이 북녘을 향한다고 해서 북향화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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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련 꽃. / 윤병렬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회장

백목련에는 중국 원산의 자목련과 함께 옛이야기가 전해진다. 요약하면 이렇다. 옛날 어느 한 나라의 임금(옥황상제)에게 외동딸인 예쁜 공주가 있었다. 그 나라 모든 청년들이 아름답고 마음씨 고운 공주를 사모했으나 공주는 북쪽 바다의 사나운 신만을 사랑하고 있었다. 어느 날 공주는 아버지의 정략결혼 계획에 염증을 느껴 자신의 사랑을 찾아 먼 북쪽 바다로 향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천신만고 끝에 만나게 된 북쪽 바다의 신은 이미 혼인한 상태였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임을 깨달은 공주는 그대로 차가운 북쪽 바다에 몸을 던졌다. 북쪽 바다의 신은 공주를 가엾게 여겨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었고 자기가 혼인한 사실 때문에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된 바다의 신은 아무 죄도 없는 아내에게도 사약을 내려 죽였다. 자신을 사랑했던 두 여인의 넋을 기리기 위해 아내도 공주의 무덤 곁에 함께 묻었는데 공주의 무덤에서는 백목련이 피어났고, 아내의 무덤에서는 자목련이 피어났다. 백목련과 자목련이 탄생한 전설 같은 이야기인데 듣고 나면 괜히 찝찝한 마음만 든다. 죄 없는 아내를 왜….

자목련은 꽃잎이 겉과 속 모두 자주색이다. 자목련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나기는 어렵다. 비교적 흔하게 만날 수 있는 것은 자주목련인데 자주목련은 백목련과 자목련을 교잡시킨 다른 품종으로 꽃잎 바깥쪽은 자주색, 안쪽은 흰색인 게 특징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주목련을 자목련으로 잘못 부르기도 한다. 별목련은 꽃잎이 열 개 이상 되고 꽃이 핀 모습이 하늘의 별처럼 보여 부르게 된 이름이다. 일본목련은 일본 원산의 큰키나무로 잎, 열매 모두 크게 자라는 것이 특징이다.

하얀 목련이 필 때면 다시 생각나는 사람/봄비 내린 거리마다 슬픈 그대 뒷모습/ 하얀 눈이 내리던 어느 날 우리 따스한 기억들/언제까지 내 사랑이어라 내 사랑이어라/거리엔 다정한 연인들 혼자서 걷는 외로운 나/아름다운 사랑 얘기를 잊을 수 있을까/그대 떠난 봄처럼 다시 목련은 피어나고/아픈 가슴 빈자리엔 하얀 목련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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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련 꽃봉오리. /윤병렬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회장

가수 양희은이 부른 '하얀 목련'이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하얀 목련', '행복', '봄비'가 함께 실렸던 양희은의 베스트 음반 중 하나다. 1983년에 서라벌레코드사에서 발매한 신곡 음반이다. 그 당시 양희은은 자신의 노래 상당수가 금지되는 바람에 활동을 중단하고 배낭여행을 떠났다 한국으로 돌아온 상황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건강마저 나빠져 암 선고까지 받게 되었다. 수술을 받기 위해 입원한 병원에서 문득 창밖에 핀 하얀 목련을 보게 된다. 병실 창밖에 만개한 하얀 백목련을 보고 마지막 유언이 될지도 모른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한편의 자작시를 쓰게 된다. 수술 후 기적적으로 부활한 양희은의 시는 작곡가 김희갑 선생의 손으로 노래로 만들어진다. '하얀 목련'은 이후 슬프도록 아름다운 가사 말로 대한민국 가사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불후의 명곡으로 남아 백목련꽃 필 무렵이면 지금껏 애창되고 있는 곡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목련 종류를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곳은 천리포수목원이다. 세계 최고 수준인 약 430개 품종의 목련이 4월부터 5월경까지 앞 다투어 꽃망울을 터뜨린다. 천리포수목원은 1945년 미 해군 장교로 한국에 첫발을 내디딘 칼 페리스 밀러에 의해 탄생하게 되는데 밀러는 1979년엔 민병갈이란 이름으로 한국 귀화 1호 미국인이 되었다. 충청남도 태안군에 위치한 천리포수목원은 1970년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수목 조성에 나서 1만 3천여 종류의 식물을 보유한 수목원이 되었다. 천리포수목원의 목련은 1997년 국제목련학회 총회를 유치함으로써 그 진가를 인정받기도 했다. 천리포수목원은 바닷가 풍광도 아름다운 곳이다. 붉은 목련, 자주 목련, 별꽃 닮은 목련, 노란색 목련 등 아주 다양하고 아름다운 목련을 볼 수 있어 좋긴 한데 목련꽃 축제 기간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붐빈다.

1.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구름 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아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빛나는 꿈의 계절아/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2. 목련꽃 그늘 아래서 긴 사연의 편질 쓰노라/클로바 피는 언덕에서 휘파람 부노라/아아 멀리 떠나와 깊은 산골 나무 아래서 별을 보노라/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빛나는 꿈의 계절아/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박목월 시인의 시 <사월의 노래>다. 여기에 김순애 작곡가가 곡을 붙여 그 유명한 '목련꽃 그늘 아래서'로 시작되는 노래가 탄생하게 된다. 6·25전쟁이 끝날 무렵 학생들의 정서를 순화하기 위해 작곡된 곡이라고 하는데 1960년대부터 학생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가 되었고 고등학교 음악 교과서에 실리게 되면서 더욱 사랑받는 곡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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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파트 벽에 핀 자주목련. / 윤병렬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회장

목련은 꽃차로도 이용되고 나무껍질은 한약재로 이용되기도 한다. 목련꽃차는 꽃봉오리가 터지기 직전에 따서 그늘에 말려 이용한다. 부기를 내리게 하고 눈을 맑게 하며 비염을 치료하는 약재로 쓴다고 알려져 있다. 여름철 집안에 습기가 많고 나쁜 냄새가 날 때 목련 나무 장작으로 불을 때면 악취가 없어지고 좋은 향기까지 난다고 한다.

목련은 영어로는 Magnolia라고 한다. 1703년 프랑스 식물학자 샤를 플루미에가 마르티니크 섬에서 본 목련에 식물의 조직적인 분류 체계를 세운 프랑스 식물학자 피에르 마뇰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목련과 식물은 중생대 백악기 무렵에 지구에 등장했는데 꿀벌이 출현하기 전이어서 꽃가루받이를 하는 딱정벌레가 손상을 입히지 않도록 암술이 단단해진 것이라고 한다. 목련꽃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해가 좀 더 쉬워진다.

예로부터 아름다운 목련꽃은 수많은 시와 소설 같은 문학의 소재가 되었다. 조선시대 세속을 떠나 산으로 들어간 어느 스님은 '산사의 뜰에 핀 목련은 내가 세속 버린 걸 한없이 후회하게 만드나니'라고 노래하기도 했다. 해마다 꽃샘추위에 벌벌 떨다 얼어버린 목련꽃만 본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얼지 않고 뜰 앞에 활짝 핀 하얀 목련꽃 바라보며, 향기 맡으며 앉아 있으면 스님의 마음도 이해가 된다. 갑자기 하얀 목련이 필 때 영어의 몸으로 떠나간 그님 소식도 궁금해진다.

온 산이 녹음으로 짙어갈 무렵 깊은 산 계곡 등산로를 걷다 보면 북한의 국화로 알려져 있는 함박꽃나무를 만나게 된다. 함박꽃나무는 산에서 자란다고 해서 '산목련'이라 부르기도 한다. 꾸밈없는 청순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환한 꽃이다. 사람도 자연도 꾸밈없이 맑은 모습이 제일 아름답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는 꽃이다. 산속에 핀 함박꽃나무 이번 여름엔 꼭 만나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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