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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추억 어린 논은 생명입니다

[습지 문화 탐방] (5) 논·논두렁·봇도랑·둠벙
'물길 만들고 자갈 고르고'고된 노동력의 산물 '논'
'집·논·밭·봇도랑'배치로 옛 자연 활용법 비추기도
'적당한 교란·풍부한 영양'생명의 보고 '논'있게 해
'웅덩이·풀베기·물 퍼내기&#

2017년 05월 09일(화)
공동취재팀 webmaster@idomin.com

◇논은 인간 노동의 집약체

농경은 채집과 수렵에 뒤이어 등장했다. 논은 밭보다 만들기도 어렵고 농사짓기도 고되다. 밭은 높낮이가 차이져도 대충 표면을 고르고 이랑만 타면 된다. 물을 담아야 하는 논은 높은 데를 깎아내리고 낮은 데를 높여 수평을 맞추어야 한다. 물을 확보하기 위해 저수지나 보·둠벙은 따로 만들어야 했고 논으로 이어지는 봇도랑도 내야 했다. 만든 뒤에도 돌·자갈은 쉼없이 골라내야 했다. 평지에 논을 만들어도 이런데 비탈진 데에 논을 만들려면 얼마나 더 고되었을까. 비탈이 가파를수록 만들 수 있는 논배미는 좁아진다. 반면 쌓아야 하는 논두렁은 높아지고 치워야 할 바위와 자갈은 많아졌다.

3월 7일 합천 대병면 허굴산 중턱에서 노부부를 만났다. 다락진 삿갓배미에 거름을 넣고 있었다. 좁다랗고 모양도 제각각이었으며 커다란 바위도 많았다. 다섯 마지기도 안 될 논배미를 내려다보며 할매는 말했다. "10년 전만 해도 칠십 배미였지. 이 양반 공직 생활 그만두고 포클레인 갖고 일곱 배미로 만들었어. 흩어진 바위를 한 데 모으고 논두렁을 크게 새로 탔지. 하이고, 고생고생 말도 못한다." 다랑논이 더욱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 까닭이다. 바위를 쌓아올려 만든 논두렁은 수직에 가깝다. 없는 살림에 땅을 한 뼘이라도 더 챙기기 위해서다. 삿갓배미 다랑논을 보며 "우와, 경치 좋네!" 감탄하면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다.

고성 대가 들녘의 논 모습.
합천 허굴산 중턱에 있는 삿갓배미.

◇논과 논농사의 역사

경남에서 논농사는 늦어도 3000년 전에 시작되었다. 밀양 산외면 금천리 일대가 가장 오래된 유적이다. 밀양강과 단장천이 합류하는 지점과 가깝다. 강물과 함께 떠내려온 흙과 모래는 오랜 세월에 걸쳐 여기에 충적지를 이루었다. 청동기시대 초기 마을 집터와 보(洑)·봇도랑·논 같은 농경유적이 확인된 자리다. 집터는 자연제방 높은 자리에 있다. 밭 터는 집터 바로 밑 다음 높은 지대에, 논 터는 그보다 낮은 지대에, 저수지 구실을 했던 배후습지는 논 터보다 뒤쪽에 있다.

봇도랑은 산비탈 끄트머리 부분을 따라 길게 나 있었다. 산기슭 아래쪽 언저리는 집터로도 논·밭으로도 적당하지 않았기에 이처럼 물길을 내었을 것이다. 논은 물론 보와 봇도랑까지 필요한 모든 것을 제대로 갖추었던 것이다. 집·논·밭·봇도랑의 이 같은 배치는 창원 진동 청동기시대 유적과 진주 대평 청동기시대 논농사 유적에서도 되풀이 확인되었다. 이를 보면 옛날 사람들도 주어진 조건에 맞추어 자연을 개발하기 위하여 치밀하게 계산하였음을 알 수 있다.

겨울논에 물을 채워놓으면 이처럼 청둥오리 같은 철새들에게 훌륭한 먹이터가 된다.

논은 그 뒤 2000년 넘는 동안 꾸준히 면적을 넓혀왔다. 그러다 획기적으로 넓어진 것은 일제강점기 1920년대 들어서였다. 토목기술이 낙동강 같은 거대 하천에까지 제방을 높게 쌓아올릴 수 있게 된 때문이다. 함안·밀양·창녕·창원·김해 일대 낙동강 하류는 그 때만 해도 사람이 살 수 없는 황무지였다. 비가 조금만 낫게 내려도 강물이 범람·역류하는 저습지였다. 일부는 그대로 습지로 남거나 저수지로 탈바꿈하였으나 대부분은 사라지고 대신 너른 평야가 만들어졌다. 지금부터 100년도 되지 않는 짧은 기간에 이루어진 일이다.

◇논에 사는 생물이 많은 까닭

일본 간사이대학교 슈사쿠 미나토 선생은 논에 사는 생물이 5668가지라 했다. 2013년 6월 14일 창녕 부곡에서 열린 '제2차 논습지 생물다양성 증진을 위한 한·일 자치단체 네트워크'에서였다. 미나토 선생은 1981년부터 어린이들에게 논과 환경을 교육해 왔고, 2011년부터는 간사이대에 적을 두고 있다. 논을 30년 넘게 연구·관찰했더니 그렇게 많은 생물이 살더라는 얘기였다.

우리나라 논을 두고는 경상남도람사르환경재단이 2014~15년 조사한 적이 있다.

<논습지 및 덤벙의 생물다양성 조사 결과 보고서>를 보면 식물 173가지, 저서성 무척추동물 64가지, 곤충 141가지, 어류 11가지, 척추동물 14가지 등 403가지였다. 이 둘을 같이 놓고 비교할 수는 없다. 일본은 미나토 선생이 30년 넘게 조사했고 한국은 람사르재단이 2년밖에 조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논은 이처럼 먹을거리도 만들어내면서 생물다양성도 실현하는 훌륭한 생태계다.

고성 내산리 근처 논.

논에 사는 생물이 많은 까닭은 첫째 인간이 적당히 교란하기 때문이다. 생물의 종류는 강한 교란이 있어도 아무 교란이 없어도 줄어든다고 한다.

강한 교란은 생존 조건을 파괴하고 교란이 없으면 생존경쟁이 심해지기 때문이다. 적당한 교란은 경쟁에 약한 생물도 생존할 수 있게 해준다. 풀을 베고 땅을 일구고 논에 물을 대는 일은 중간 정도 교란이다.

이를테면 논두렁 풀을 자주 베면 키작은 잡초가 우묵해지고 베지 않으면 키큰 풀만 웃자란다. 하지만 적당하게 하면 키큰 식물이 베어져서 다른 작은 들풀도 함께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인간이 논을 관리하기 때문이다. 논은 거름 덕분에 영양분이 풍부하고 덩달아 미생물도 많아진다. 물높이도 일정하고 물온도도 차갑지 않게 유지되어 어린 생명이 자라기 알맞다는 것이다.

◇논두렁·봇도랑·둠벙

논은 과거에는 자연습지였고 지금은 인공습지다. 논농사는 계곡이나 개울·하천에서 물을 끌어들여 논 구석구석까지 물을 대거나 빼는 일이기도 하다. 논두렁은 물꼬를 여닫아 논에 물을 가두어두거나 빼내는 구실을 한다. 사람이 다니는 길이기도 하여 거기 자라난 풀은 때맞추어 베어내게 마련이다. 풀베기 덕분에 논두렁 풀밭에서 여러 생물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다. 논에서 사는 생물들은 논두렁에서 위험을 피하거나 겨울을 나거나 알을 낳거나 알에서 깨어난다. 논두렁을 거쳐 가까운 야산으로 옮겨가기도 한다.

남해 창선 둠벙.

봇도랑은 논을 위한 물길이다. 물은 스며들어야 제 맛이다. 스며든 다음 천천히 조금씩 내뿜으면 좋다. 논이 말라도 봇도랑은 촉촉하게 남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야 논에 살던 생물이 논이 메마르거나 겨울이 되었을 때 봇도랑으로 옮겨와 살 수 있다. 원래는 흙으로 도도록하게 쌓고는 물이 새지 않도록 진흙까지 발랐다. 지금은 원래 모습을 많이 잃었다. 물이 빠르게 흘러 정확하게 닿도록 하는 콘크리트 봇도랑이 대세다. 봇도랑은 생물 이동을 차단하고 생존을 버겁게 만든다.

둠벙은 논에 물을 대려고 만든 작은 웅덩이다. 지금은 둠벙이 별로 일이 없지만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다. 둠벙은 지하수가 나거나 지표수가 흘러 물이 고이는 자리를 따라 만들었다. 둠벙은 봇도랑과 함께 논이 발행하는 생물다양성 보증수표였다. 논이 살기 어려운 조건이 되면 손쉽게 옮겨갈 수 있는 데가 둠벙이다. 한 곳에 뿌리박고 살아야 하는 식물한테도 둠벙은 논두렁·봇도랑보다 좋은 터전이다. 언제나 물이 고여 있기 때문이다. 둠벙은 이처럼 인간과 습지의 조화로운 관계 그 자체다.

합천 허굴산에 있는 둠벙.

어릴 적 농촌에서 자란 이들은 논두렁에서 메뚜기 잡고 봇도랑에서 미꾸라지 잡던 추억이 있다. 둠벙은 둘레의 예쁜 물풀이나 들꽃으로도 기억되지만 물고기 끓여 먹은 푸짐함과 따뜻함으로 더 많이 기억된다. 여름비로 논물이 넘칠 때 봇도랑 등에서 새끼 물고기를 몰아 넣은 다음 가을걷이를 앞두고 하루 날을 잡아 물을 퍼내면 된다. 둠벙 바닥은 물 반 고기 반, 붕어·잉어·미꾸라지·메기·뱀장어 따위를 잔뜩 잡아 솥에 끓여 먹는다. 3월 6일 창녕 성산면 연당지 부근에서 만난 할매는 자기 둠벙을 가리키며 말했다. "지난 장날에 붕어 하고 메기를 사서 집어넣었어."

창녕 연당지 근처. 경사진 데에서는 논두렁을 이렇게 층층으로 쌓아올려야 했다.

◇논에 스며든 정서

논은 삶을 받쳐주는 바탕이었기에 거기에는 사람 마음도 스며 있다. 가을논에 벼가 넘실거리면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 논이 메말라 벼가 제대로 못 자라면 사람 속도 함께 탄다. 도시 사람들도 고향 농촌을 떠올리며 편안함과 아늑함을 느낀다. 논을 떠올리면 논일하는 사람도 함께 떠오른다. 삽자루 하나 싣고 자전거 타고 가는 할배, 경운기 끌고 써레질하는 모습, 비맞으며 물꼬를 돌보는 모습 등등.

해오라기·백로·왜가리는 그냥 보아도 반갑다. 맑은 봄날 써레질할 때 뒤집어져 올라오는 벌레를 노리고 농부를 뒤따르는 모습이 떠오른다. 베어낸 벼포기만 보아도 콤바인으로 잘라넘기는 모습 위로 여럿이 줄지어 벼베기하던 옛날 모습이 겹쳐진다. 물레방아·디딜방아·연자방아, 연기 솟는 굴뚝, 허수아비, 탈곡기 등 사람 냄새 풍기는 풍경이 자동 연상된다. 논은 인간에게 자연이고 문화이며 생활이다.

창녕 성산면 논 한가운데 쌓여 있는 돌무더기.

논이 사라지고 있다. 전국을 보면 2005년 110만4811ha에서 2010년 98만4140ha를 거쳐 2016년 89만5379ha로 면적이 적어졌다. 경남은 2005년 11만3928ha에서 2010년 10만104ha를 거쳐 2016년 8만8753ha로 떨어졌다. 쌀 생산도 2005년 476만8368t에서 2010년 429만5413t을 거쳐 2016년 419만6691t으로 내려앉았다. 쌀은 남아돈다. 쌀소비 감소폭이 논 감소폭보다 크기 때문이다. 2016년 현재 쌀의 정부 보관 재고가 200만t이다. 농촌경제연구원은 여기에 더해 2017년에도 29만t가량이 초과 공급될 것으로 예상했다.

인위적인 소비 촉진은 한계가 빤하다. 북한 주민 지원도 뜻은 좋지만 근본 해결책은 아니다. 이런 방안을 추가하면 어떨까? 쌀 초과 생산에 해당되는 만큼 논을 떼어내 절반은 사람 놀이터로, 절반은 동물 먹이터로 만드는 것이다. 물론 쌀농가에 대한 정부 재정지원은 뒷받침되어야 한다. 동물을 위한 먹이터 활용은 이미 실행되고 있기에 더 말할 필요는 되겠다.

논을 사람들이 놀이터로 삼으면 무엇이 달라질까? 이나가키 히데히로 일본 시즈오카대 대학원 교수(잡초생태학자)는 2009년 발표한 <논의 운영과 은혜>에서 이렇게 밝혔다. "초·중학생들한테 '농업'이나 '논'이라는 말에서 무엇이 생각나는지 물었더니 논에서 놀아보지 못한 경우는 '쌀', '채소'처럼 농산물 관련 단어를 주로 떠올린 반면 놀아본 친구들은 '녹색', '흙', '물', '송사리' 등 생태환경·생물 관련 단어를 많이 떠올렸다." 논에서 논다는 것은 논에 들어가 거기 사는 무수히 많은 생명을 체험한다는 얘기다. 논에서 많이 놀아본 사람일수록 논에 대한 이미지와 지식이 풍성해지고 논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도 커지게 마련이다. 논을 지속가능한 미래 습지로 만들고 싶다면 우리가 먼저 논과 친해져야 한다.

/공동취재단

창녕 용호늪 근처 둠벙.

주관 : 경상남도람사르환경재단

문의 : 환경교육팀 055-533-9540, gref2008@hanmail.net

수행 : 경남도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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