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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만 모르는 그곳, 히말라야로

[임채민 기자의 마르디 히말 트레킹] (1) 히말라야를 꿈꾸며

2017년 05월 11일(목)
임채민 기자 lcm@idomin.com

이미 오래전 일이다. 지리산과 덕유산 등을 오르며 한창 등산하는 재미에 빠져들 즈음 히말라야 트레킹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왔다. 짧게는 3∼4일, 길게는 한 달여 동안 만년설이 덮인 8000m급 산을 바라보며 해발 3000∼4000m의 산길을 걷는다는 정보를 접했을 때 무척이나 설렜던 것 같다. 그러다 히말라야는 점점 잊혔는데, 그곳에 신혼여행을 가게 될 줄이야 누가 짐작이나 했겠는가.

큰맘 먹고 2주간의 휴가를 내고 네팔로 떠났다. 오랜 시간 산을 걷는다는 건 자기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일이었다. 입사 후 처음으로 경험해보는 긴 휴가였고, 어느 순간 내 눈앞에는 우뚝 솟은 안나푸르나 남봉(7273m)과 마차푸차레(6993m)가 다가와 있었다. 그 순간순간의 느낌을 짤막한 메모로 기록하다 보니, 결국은 '나'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졌다. 네팔과 안나푸르나가 불러낸 '나'였고, 그것은 <경남도민일보>에서 근무한 지난 15년을 반추하는 시간과도 어우러졌다.

사람들은 왜 히말라야에 오는 것일까? 압도하는 풍경의 힘 때문일까?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을 보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구도 목적으로? 카트만두 외곽에 있는 트리부반 국제공항에 내리는 순간부터 무수한 질문이 쏟아졌다.

마르디 히말 뷰포인트(해발 4300m)에서 바라본 안나푸르나 사우스. 구름이 좀더 걷히길 기다렸으나 오히려 구름은 점점 더 많아져 어느새 안나푸르나를 덮어버렸다. 압도해 들어오는 자연은 잠시 나를 잊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안나푸르나 앞에 섰을 때, 거대한 힘으로 육박해오는 자연은 잠시 모든 생각을 앗아가는 듯했다. 선정(禪定)의 세계를 맛보았다고 하면 주제넘은 이야기가 될 터이긴 한데, 어쨌든 잠시나마 이 세상에는 자연만이 존재하는 듯한 느낌에 빠져들었다.

그렇다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히말라야 산맥을 보는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사는 것일까.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 중 하나로 알려진 네팔에서 사는 사람들은 저 히말라야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네팔은 명목상 공산주의 국가라 할 수 있다. '마오주의 공산당'의 당수이자 한때 무장투쟁을 이끌었던 '프라찬다'가 총리직을 맡고 있기에 그렇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마오주의 공산당이 집권하는 과정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네팔을 '공산당 국가'로 정의 내리기 쉽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히말라야 트레킹을 준비하던 포카라 시에서 우연히 마주친 오토바이 시위대다. 수백 대의 오토바이가 순식간에 도로를 점령하고 시끄러운 경적 소리를 울리며 질주했다. 네팔 사회의 한 단면이 극적으로 드러난 순간을 운좋게 목격할 수 있었다.

1990년대 중반 왕정 폐지의 기치를 올리고 무장투쟁에 나섰던 마오주의 공산당은 단 10여 년 만에 국토의 80%를 장악했다고 한다. 해방구를 하나씩 늘려나갔던 중국의 마오쩌둥 혁명 전략을 성공적으로 펼친 덕분이었다. 그런데 이들은 혁명 완수 시점이 무르익었을 때 총을 들고 국왕이 있던 카트만두로 진격하는 대신 돌연 제도권 정당으로 탈바꿈한다. 그리고 제헌의회를 구성하기 위해 치른 선거에서 제1당에 오른다. 다양한 종교, 카스트, 인종이 한데 모여 섞여 있는 데다 지역별 이해관계 역시 첨예한 곳이 네팔이다. 이런 곳에서는 계급혁명 완수가 쉽지 않겠다는 판단에 따라 마오주의 공산당이 제도권 정당으로 변신했다는 해석이 유력해 보인다.

왕정이 폐지되고 공화국이 수립되었지만 마오주의 공산당 역시 국왕과 마찬가지로 인기를 얻지 못한 듯했다. 헌법 제정은 늦어졌고 수많은 정당이 난립하는 가운데 지역 갈등 역시 분출했다. 여기에 더해 네팔을 둘러싼 두 열강, 즉 인도와 중국의 보이지 않는 내정간섭에 '10년 차 공화국' 네팔은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2015년 대지진은 1인당 GDP 600달러 수준이었던 네팔 경제를 더욱 나락으로 떨어지게 했다.

일천한 지식이지만, 인터넷을 뒤져서라도 이렇게 네팔의 현재를 대충이라도 훑는 게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다. 상대방을 알겠다는 마음가짐은 존중과 인정에 이르는 최소한의 전제가 아닐까 싶었기 때문이었다. 나의 이런 생각은 히말라야 트레킹을 준비하던 '포카라' 시에서 어딘지 모르게 어긋나기 시작했다. 단시간 안에 네팔을 알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조금씩 알아간다고 부족한 깜냥을 뽐내려 할 때면 용광로 같은 네팔 문화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나를 뒷걸음치게 했던 것이다.

포카라 공항. 비행기 화물을 사람이 손수레를 이용해 직접 옮기는 모습이다. 공항 대합실을 이용할 필요도 없이 바로 비행기 앞에서 화물을 찾을 수 있었다.

포카라는 약 19만 명이 거주하는 네팔 제2의 도시다. 수도 카트만두에서 비행기로 30분이면 도착 가능한 곳이지만, 자동차로는 8시간이 걸린다는 점에서 네팔의 도로 상황을 가히 짐작하게 한 곳이기도 했다.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하기 위해 전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고, 지금은 과도한 상업적 냄새가 물씬 풍기고 있지만 한때 히피들의 안식처였던 곳이라고 한다.

푸릇한 잎사귀를 늘어뜨린 고목이 시내를 뒤덮고 있는 데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꿈인 듯 생시인 듯 하얀빛의 안나푸르나가 언뜻언뜻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시내에 있는 페와 호수에는 또 하나의 안나푸르나가 담겨 있기까지 했다.

포카라에서 네팔의 첫 아침을 맞이한 후 우연히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에 들렀다. 한국인 관광객들에게 트레킹 정보를 제공하기도 하는 게스트하우스였다. 그때 어디선가 굉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오토바이를 탄 일군의 무리가 경적을 울리며 도로를 질주하고 있었다. 오토바이 수는 점점 늘어났고 순식간에 도로를 점령했다. 뒷좌석에 탄 사람들은 각양각색의 깃발을 흔들었고, 운전하는 사람들은 액셀핸들을 쉴 새 없이 돌리며 지축을 흔들었다. 일종의 정치 시위인 듯했는데 이를 통제하는 경찰은 발견할 수 없었다.

깃발 펄럭이는 수백 대의 오토바이가 도로를 점령한 모습은 장관이었다. 어떤 목적의 시위인지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포카라에 오랜 기간 거주한 듯한 한국인 식당 종업원에게 시위대 정체에 대해 물었는데, 돌아온 대답이 가관이었다. "또 시작이네, 시작이야. 할 일이 없는 놈들이니까, 어떤 단체에서 돈 좀 쥐여주면 저렇게 오토바이 타고 나와서 시위하는 거다. 직업이 없으니까, 만날 저러고 사는 거지. 저런 시위가 좀 거세지면 파업으로 이어진다. 시끄러워서 못살겠네. 한심한 놈들."

나는 그 종업원의 말 속에 일말의 진실이 담겨 있을 수 있다고도 본다. 아니 어쩌면 현지인들에 대한 냉철한 진단일 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그 '한심한 놈들'에 대한 맹목적인 핀잔보다는 왜 그런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설명을 시도하는 게 옳은 자세가 아닐까? 그리고 그 한국인 종업원은 딱히 시위대의 정체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물론, 나의 이런 반감은 현지 사정을 잘 모르는 스쳐 지나가는 관광객이 네팔 사람들을 무조건적인 수혜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는 걸 안다. 외부인의 시선에 매몰된 또 다른 형태의 아전인수인지도 모를 일이고.

뭔지 모를 불쾌감과 복잡한 생각이 닥쳐온 탓에 제대로 인사도 하지 않고 한국 식당을 나왔다. 그리고 본격적인 히말라야 트레킹이 시작됐다. 외부인의 시선으로 쉴 새 없이 주변을 두리번거려야 했다. 나는 누구이고, 저들은 또 누구이며, 왜 안나푸르나는 저렇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서 있는 것일까? 해답이 나올 리 없었다. 안나푸르나에 점점 다가가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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