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시 회현동 주택가 골목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
한데 모인 분야별 예술가 소품·음식 가게 주인으로
오래된 거리 곳곳 '새 활력'숨은 보석 찾는 재미 '쏠쏠'

새 연재 '인턴이 간다'는 이달부터 일하고 있는 양청 인턴기자가 주인공입니다. 경상대에 다니는 양 기자는 지난해 여름 본보 실습생으로 온 적이 있습니다. 경상남도지역신문발전위원회에서 인턴사원 지원사업을 한다기에 다시 불렀습니다. 앞으로 양청 기자가 찾은 공간과 만난 사람 이야기를 매달 한두 번씩 지면에 실을 계획입니다. /편집자 주

김해시 회현동 주택가에 가 본 적이 있는가. 법정동으로는 봉황동 지역으로 점집이 많아 한때 '신의 거리'라 불리던 곳. 지금은 낡은 집과 건물이 많아 김해에 살아도 일부러 찾아가는 일이 드문 곳이다. 봉황2동 노인회관 옆, 길을 지나다니는 어르신들 사이로 새 단장을 한 건물이 보인다. 문화공동체 '재미난 사람들'이 김해시 내동에서 운영하던 문화카페 '재미난쌀롱'이 '회현종합상사'란 복합문화공간으로 이름을 바꿔 이사를 온 것이다. 몇 달이 지나도록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아 아직 가게 간판도 채 달지 못했지만, 그런 만큼 이곳을 멋진 문화 공간으로 꾸미겠다는 포부가 야무지다.

회현종합상사는 '종합상사'라는 명칭에 걸맞게 식당, 공방, 카페 등 총 여섯 개의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공간을 맡은 이들이 각자 돈을 들여 가게를 꾸몄다. 페인트칠부터 가구배치, 실내장식까지 전부 '셀프'다. 일손이 부족하면 서로 도우며 공사를 해 나갔다.

회현종합상사 영업팀장 김혜련(왼쪽) 씨와 지하 하라식당 주인 김충도 씨.

1월에 공사를 시작했는데 벌써 5개월이 지났다. 아직 손봐야 할 것이 많아 공사는 언제 끝날지 미지수다. 지난 22일 준비가 다 된 가게부터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홍희정(31) 씨가 하는 소품가게 '유니포밀리'가 그중 하나다. 식기도구가 진열품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오래된 성냥갑과 레코드판 등 독특한 물건도 있다. 그 옆으로 허계숙(43) 씨의 로스팅 가게인 '릴리 로스터스'이다. 가게 이름과 어울리게 백합을 꽂은 꽃병을 놓을 생각이다. 핸드드립 커피와 커피 원두를 판매하며, 로스팅 교육도 할 예정이다.

고풍스러운 느낌이 드는 하정화(31) 씨의 카페 '낙도맨션'은 아직 인테리어 공사가 덜되어 오픈을 하지 않았다. 지금은 거의 흰색으로 페인트칠만 되어 있어 썰렁한 1층의 나머지 공간에는, 스물일곱 살 청년이 국수와 돈가스를 파는 음식점인 '낭만멸치' 체인점을 낼 계획이다.

골목이 아닌 건물 안쪽으로 들어가니 탁 트인 마당이 있다. 한가운데에 커다란 테이블과 의자들이 모여 있다. 여러 사람이 모여 만찬을 즐기거나, 바비큐 파티를 해도 좋겠다. 마당에는 잔디가 깔렸다. 조그만 인디언 텐트까지 지어진 것을 보니 가볍게 캠핑 온 기분도 난다.

마당 한편에는 김서운(43) 씨의 바느질 공방 '니들두들'이 들어서 있다. 마당을 둘러보는데 김 씨의 몰티즈 '향이'가 호기심을 보이며 따라온다. 올해 여덟 살이라는 향이는 재미난쌀롱 시절부터 공간 터줏대감 행세를 했단다.

하라식당.

지하로 내려가면 '하라식당'이 나온다. 제철 음식을 만들어 판다는 이 식당은 하라(김충도·45) 씨가 주인이지만, 그가 매일 요리하는 것은 아니다. 하라 씨는 일주일에 서너 번 식당을 운영하고, 나머지는 객원 요리사가 돌아가면서 운영할 예정이다. 그렇게 식당 운영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연습 삼아 해볼 수 있도록 열려 있는 공간이다. 이 식당은 앞으로 공연장과 조합 사람들끼리 모여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는 용도로도 활용될 예정이다.

낭만멸치를 제외한 회현종합상사 가게 주인들은 모두 음악, 미술,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다. 회현종합상사 영업팀장이자 동네 사람들에게 '회현댁'이라 불리는 김혜련(45) 씨는 "장사를 하겠다고 모였지만, 여기 있는 사람들이 대체로 게으르다"며 웃었다. 세상에 돈 벌기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이들은 그 욕심을 조금은 내려놓고, '예술의 거리'로 탈바꿈하겠다는 뜻을 품었다.

시계방향으로 회현종합상사 마당.

김 씨는 사람들이 종종 '왜 하필 회현동에 들어왔느냐'고 묻는다고 했다. 그들이 보기에 회현동은 점집도 많고, 집과 건물도 낡아 그저 낙후된 지역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이다. 김 씨 역시 "회현동은 장사가 잘되는 동네는 아니기에, 그만큼 작정하고 입점하지 않으면 버티기 어려운 곳"이라고 했다. 그렇기에 재미난 사람들도 오랜 고민 끝에 이곳으로 이주할 결심을 굳혔다.

하지만, 이 동네엔 숨겨진 매력이 있었다. 낡고 오랜 동네이기 때문에 그만큼 보물과도 같은 곳도 많았던 것이다. 예를 들어 남들은 허허벌판이라 생각할 수도 있을 김해 봉황동 유적지인 봉황대는 사실 3~4월에 김해에서 벚꽃이 가장 예쁘게 피는 장소다. 이건 아는 사람만 아는 비밀이고, 대부분 잘 모른다는 게 김 씨의 설명이다. 김 씨는 이런 장소들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회현동은 나이 많은 어르신, 오래된 물건들이 잘만 가꾸면 보석이 될 수 있는 김해의 유일한 장소일 거예요. 사람들이 그 가치를 알아야만 와서 구경도 할 테니, 많은 사람에게 일단 이 공간이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바느질 공방 '니들두들' 내부.

낙후된 동네의 한적한 골목길. 보통 사람들에겐 그냥 무시해버리거나 별생각 없이 지나치기 쉬운 장소일 뿐이다. 하지만, 재미난 사람들 협동조합의 조합원들은 이 동네가 지닌 특별한 잠재력을 찾아냈다.

회현종합상사를 나오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잠깐이지만 '왜 재미난쌀롱을 떠나 이런 곳에 입점을 했을까'하고 의문을 품었던 것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

마치 겉모습만 보고 그 가치를 판단해버리는 이들과 별다를 바 없었던 것 같다. 조만간 활력 넘치는 예술의 거리로 바뀌어 있을 회현동의 모습이 벌써 기다려진다. 가끔 머리가 복잡할 때, 잠시 휴식이 필요할 때 회현동을 찾아가보는 것은 어떨까. 낡았지만 소박한 이 동네가 숨겨둔 보물을 발견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점집이 많은 낡고 오래된 회현동 주택가에 들어선 복합문화공간 회현종합상사(오른쪽 긴 건물). /이서후 기자 who@

※본 지면은 경상남도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아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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