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작가 기리는 문학상은 모순·난센스
살아있으면서 세우는 시비도 웃기는 일

적폐 이야기라면 문학계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여기저기서 적폐를 청산하고 새로이 거듭나자는 움직임이 있는 마당이니 동참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많이들 알려진 일이지만 환기하는 뜻에서 몇 가지 생각나는 대로 나열해 본다.(지난해 문단을 벌집 쑤시듯 헤집어놓은 표절문제와 성폭력문제는 잠시 접어둔다. 입(손가락) 아프다.)

문학청년 시절부터 같이 숱하게 술잔을 기울여온 한 시인은 시 창작을 접은 지 오래다. "문단과 문인이라는 이들이 꼴 보기 싫어서"다. 소위 문단권력과 서열화, 돈 받는 등단 관행과 지면 장사 등. 문예창작과를 나와서 한다 하는 문학상을 받은 그의 재능이 아까워서 가끔이라도 작품 발표를 하라고 옆구리를 찌르지만 요지부동이다. 다만 간혹 만나 술잔만 기울일 뿐이다.

선배 중 한 사람이 그런 얘길 한 적이 있다. "글쟁이로 행세하고 대접을 받으려면 제자가 많아야 한다"고. 독자가 줄어드니 제자를 통해서 작품을 읽게 하고 책 판매까지도 할 수 있다는 거였다. 그래서 문인들 중 대학을 비롯해 학교에 밥줄을 대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주장. 그렇지 못한 자신은 따로 창작교실을 열어서 운영할 계획이라고 했다. 글쟁이로 살아남기 위해서. 그렇게 운영되는 창작교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불문가지.

하루는 아는 분이 만나자마자 싱글벙글하면서 문예지 한 권을 내놓았다. 자신이 수필로 등단한 잡지라면서. 평소 안면이 있는 그 잡지 편집장이 전화로 수필 2편을 보내라고 해서 보냈더니 '당선증'을 보내주더라고 했다. A4용지에 프린트된 당선증 뒤에 한 장이 더 붙어 있어서 봤더니, 잡지 100권을 구매한다는 계약서였다. 등단비 혹은 심사비·후원비 등 명목으로 받는 돈. 문인 자격을 팔아 받는 돈으로 잡지를 운영하는 것이다.

등단과 관련해서 한 가지 더. 대체로 등단은 매체별로 신춘문예·문학잡지, 그리고 각종 문학상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그런데 어떻게 등단했느냐에 따라 대접이 확연히 달라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중앙일간지와 지방지가 다르고, 이른바 메이저 급 문학지와 나머지가 다르다. 등단지는 평생 그 작가를 따라다니다 보니 더 나은 매체로 재등단하려는 이들도 많다. 재등단에 성공하면 첫 등단지는 가차없이(!) 버리는 경우가 태반이다. 작품의 질보다는 이름값인 셈이다.

미당문학상이나 동인문학상, 그리고 팔봉비평상 등 각종 친일문학상도 문제다. 오랫동안 논란을 빚어왔지만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고, 앞으로도 숙제로 남을 가능성이 많은 적폐임이 분명하다. 과거 식민주의 시절 일제에 적극 협력하고 나아가 동포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데 앞장섰던 문인들을 기리는 문학상을 시행한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지독한 모순이요 난센스다. 그 당시 친일 안 한 사람이 어디 있느냐느니, 작가와 작품은 분리해서 보아야 한다는 식의 대응을 넘어 근본적인 정리가 필요한 때가 왔다.

하아무 소설가.jpg

누군가 우스갯소리로 한 "발길에 챌 만큼 많은 시비(문학비)"도 생각해볼 문제다. 특정 시인의 시 세계를 기리며 추모하는 뜻으로 그의 시 가운데 하나를 비석에 새기는 것이 시비지만, 요즘은 비 온 뒤 솟는 죽순보다 많이 세워진다는 비아냥이 들려오는 실정이다. 게다가 사후여야 빛나는 시비가 생전에 세워지고, 심지어 시인의 동창이나 지인들, 또는 자기 돈까지 들여서 세운다는 건 우스꽝스럽기 그지없다.

문인들이 참여하지 않거나 관광성 외유에 문인을 동원하는 문학제, 알음알음으로 돌아가며 나눠먹는 짬짜미 문학상, 비판은 드물고 칭찬 일색의 덕담과 격려로 일관하는 해설성 비평이 난무하는 문제 등 표절과 성폭력을 제외하고도 수두룩하다. 모두 깨끗이 정리해야 할 적폐들이다.(비록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날아올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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