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지성 뛰어넘은 위키피디아 사례
두 지성 협력할 때 변화 에너지 발생

300년 가까이 세계 백과사전의 대명사라고 칭송받았던 브리태니커가 2012년 3월 종이 인쇄본 출간을 중단했다. 사람들의 시선은 일제히 위키피디아를 향했다. 집단지성이 전문지성을 압도했다는 논평이 나왔다.

사람들은 궁금했다. 어떻게 이름 없는 군중의 집합적 지성이 고도로 훈련된 전문가 지성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검증을 통과하지 않은 사람들이 누구나 편집할 수 있는 개방 시스템 속에서 어떻게 위키피디아는 정파적으로 쏠리지 않고 쓰레기장도 되지 않았을까? 이처럼 우수한 결과물은 일시적인 현상일까 오랜 기간 지속될까?

위키피디아 연구자들은 완벽한 개방이 중요한 균형추 역할을 했다고 분석한다. 사례가 충분하면 결과가 평균에 수렴하는 정규분포 곡선처럼 수많은 사람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합리적인 균형을 찾아가더라는 것이다.

낙태와 동성애처럼 민감하고 논쟁적인 주제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극단적인 이용자들이 이들 내용을 통째로 삭제해도 평균 2분 안에 완벽하게 복구됐다. 다양한 입장을 가진 이용자들이 수천 회에 걸쳐 수정과 편집에 참여하면서 내용도 몰라보게 균형을 잡아갔다.

그러나 개방만 하면 균형잡힌 결과가 보장될까? 사실 비슷한 개방정책을 취하지만 위키피디아와 달리 쓰레기장으로 전락한 사례 또한 적지 않다. 우리나라의 대표 포털사이트인 네이버의 '지식in'은 광고성 글로 도배되다시피 했고, 각종 게시판과 트위터는 일명 '댓글부대'라 불리는 세력이 조직적으로 개입하면서 여론을 수렴하기는커녕 오히려 왜곡하는 공간으로 전락하지 않았던가? 위키피디아는 어떻게 집단지성을 이끌어냈을까?

연구자들은 극소수의 절대적 기여자와 대다수의 일반 기여자 사이의 조화에 주목했다. 위키피디아의 편집권은 개방돼 있지만 모두가 비슷하게 기여하는 것은 아니었다. 5년 전 기준으로 위키피디아에선 2억 1000만 회에 달하는 편집 활동이 있었고, 약 430만 명이 그 활동에 참가했다. 그중 100회 이상 편집에 참여한 기여자는 12만 9000명으로 약 3%에 불과했지만, 그들이 손을 본 콘텐츠는 1억 8000만 건 이상으로 전체 87%에 달했다. 10만 건 이상 편집한 기여자도 100명에 달했고, 그중에서도 9명은 무려 31만 건을 편집했다.

이 결과를 보면 집단지성을 전문지성과 대립된 개념으로 볼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위키피디아 내부에서 편집업무를 수행한 극소수의 핵심 기여자들은 집단지성 생태계 내부에 존재하는 전문지성이라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그들의 헌신과 활약이 있었기에 위키피디아가 쓰레기장이 되는 운명을 모면한 것 아닐까?

최근 기성 언론과 소셜미디어 이용자들 사이에 갈등이 커지고 있다. 특히 진보적 가치를 공유하는 시민들과 언론들 사이에서 날 선 반목이 일어나고 있다. 시민들은 언론의 편향성을 의심하고 해당 언론들은 침소봉대라며 억울해 한다. 사안별로 시비를 가릴 수도 있겠지만, 불신이 불신을 부르는 악순환 구조부터 개선하는 것이 우선 아닐까?

지난가을 시작된 촛불 광장은 그야말로 집단지성의 현장이었다.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로 중무장한 시민들은 진실을 보도하려는 언론들과 환상적인 짝궁을 이뤘다. 저널리즘이 새로운 사실을 밝혀낼 때마다 광장의 시민들은 즉각 여론으로 증폭시켰다. 시민들의 차고 넘치는 제보는 기사의 질과 양을 향상시켰다. 그 거대한 집단지성이 작동하며 마침내 부패한 정권을 탄핵하고 새로운 정부를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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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관계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전문지성과 집단지성이 대립하지 않고 협력할 때 세상을 바꿀 만한 에너지가 생산된다. 집단지성과 괴리된 전문지성은 브리태니커의 운명을 피할 수 없을 테고, 전문지성을 거세한 집단지성 또한 얼마 지속되지 못하고 쓰레기장으로 전락할 것이다.

바람직하기로는 전문지성이 집단지성의 수호자가 되는 것이다. 집단지성이라는 큰 생태계 안에서 자유로운 소통과 진실의 유통을 위해 활약하고 또 헌신하는 것이 소셜미디어 시대에 전문지성이 취해야 할 최선의 덕목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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