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바랜 천막 어눌하기만 한 동네 가게
상식적 조언마저 상처가 된 슈퍼 사장

골목길 이야기에는 가슴 떨리는 사랑도 위대한 역사적인 사건도 없다. 골목길을 가득 채운 이야기는 그저 사람들의 숨소리와 땀 냄새인 셈이다. 당신이 그렇듯 내가 숨과 땀을 떠나서 살 수 없는 건 살아있어서 그렇다. 무엇을 가졌든 어떻게 태어났든 살아가야 해서 말이다.

슈퍼이름이 '단지슈퍼'는 아닌데 간판이 없어서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슈퍼를 거래처 장부에 단지슈퍼로 등록을 한다. 오래된 아파트 단지긴 하지만 상가들이 나름대로 천막이라도 한 번씩 수리를 해서 깔끔한 편인데 슈퍼만 천막이 빛바래 있고 한쪽이 찌그러져 있다. 손님들이 들어오고 싶은 공간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지저분하다. 깔끔하고 현대적인 공간을 출입하면서 사람들이 느끼는 상쾌함이 있는데 슈퍼가 어눌하다 보니 어눌한 사람들이 단골이 된다.

노인들이 막걸리를 사서 주변 나무그늘에서 마시고자 종이컵을 서비스로 달라고 하면 막걸리 한 병 팔아서 얼마 남느냐고 되묻는다. 대부분 매상이 담배다. 슈퍼를 하면 엄마들이 많이 와야 하는데 주로 노인이고, 술·담배 손님이다.

나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저가 식품을 팔고 있었는데 아이들도 많이 오지를 않는다. 납품량이 점점 줄면서 방문 횟수도 줄어든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방문해야 하는데 어느 때는 한 달에 한 번 간다. 5년을 그렇게 거래했는데 또래 단지슈퍼 사장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 "장사 안 되니까 인제 그만 오세요."

잔뜩 화가 난 목소리다. 이유를 모르는 건 아니다. 결혼을 해서 애가 있는데 이혼을 해서 여자애를 돌봐야 하는 단지슈퍼 사장을 대신해서 할머니가 아침에 가게를 봐주고 있었다. 다리를 저는 단지슈퍼 사장과 병원에 다녀야 하는 아이를 두고 답답했던 모양이다.

이혼인지 가출인지 애엄마가 집에 없다는 건 확실하다. 알고 싶지 않아도 할머니에게 사정을 종종 듣게 된다.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도 없다는 증오에 찬 욕과 의심, 경계.

앞으로 잘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 거 같다. 점점 나빠질 거로 생각하고 늘 그렇게 얘기한다. 매출이 점점 떨어지면 물건을 더 채우고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하는데 역부족인 모양이다. 오지 말라고 해도 올 사람은 오고 오지 않을 손님은 오지 않는다는 생각을 한다.

방문할 때마다 나름대로 좋아질 방법을 말해본다. 갈 때마다 하나라도 구색을 갖춰서 내려놓는데 매번 단지슈퍼에서 그걸 방해한다. 할머니가 가게를 보고 있다. 다른 슈퍼에서 물건을 내리듯이 납품을 했는데 강매 당한 느낌을 받은 모양이다.

물건값으로 10만 원 큰돈 아닌데. 상식적이고 정상적인 최소한의 금액인데 단지슈퍼 사장은 공격받았다고 생각한다. 5년 동안 매번 그런 식으로 말했는데 말이다. 상식적이고 정상적인 모습에 대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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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서는 많은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에 대해서 말한 거뿐인데. 가게를 깨끗하게 하고, 시설투자도 하고, 가게 안에 물건도 좀 채우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긍정적인 말을 하면서 웃으면 장사 잘된다고 말이다. 그건 정상적이고 바람직한 모습인데 단지슈퍼 사장한테는 그 정상적인 게 자신을 옥죄는 뭔가였던 모양이다. "우리 가게는 장사 안 되니 오지 마세요."

화난 목소리를 듣고 장사로 치면 거래 안 해도 손해날 거 없는데 무안해진다. 그간에 내가 상식과 정상이란 말로 조언했던 것들이 단지슈퍼 사장에게는 상처였던 모양이다. 상식적이지도 정상적이지도 않은 단지슈퍼 사장에게 한 번도 공감하지도 못하면서 5년 내내 떠들어댄 상식과 정상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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