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아파트에서 주택으로 이사를 왔다. 줄곧 아파트에서 살아 온 내가 주택생활을 하게 된 이유, 특별하지 않다. 아파트 전세 계약기간이 끝나갈 때, 마침 산책로가 끌리는 동네가 생겼고, 하필이면 그 동네 아파트 전세는 꿈도 꿀 수 없을 정도로 비싸서, 할 수 없이 통장 사정에 맞춰 주택 전세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은근히 주택생활이 기대가 됐다.

삭막한 아파트촌을 벗어나 이웃 간의 정이 넘치는 골목이라든가, 획일적인 콘크리트 구조물 속에 사라져 버린 공동체 문화라든가, 신문이나 시사 잡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파트촌의 문제점을 떠올리니, 어쩌면 주택에서의 생활이 내 삶의 질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시켜 줄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생겼다. 그렇게 앞뒤 맥락 없는 환상으로 시작한 몇 달 동안의 주택생활,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으로 버겁다. 아파트에 길든 내 몸과 사고는 주택과 맞지 않다.

주택으로 이사를 한 뒤 며칠이 지나서였다. 퇴근을 하고 쉬고 있는데, 1층 집주인 할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호박죽을 쑤었는데, 집에 있으면 갖다 주겠다고 했다. 이미 저녁을 먹었고 약속이 있어서 나가봐야 한다며 정중히 사양했다. 그럼 내일이라도 먹으라며 다시 한 번 할머니가 권유했다. 내일은 아침 일찍부터 출장이라서 집에 없노라 다시 한 번 거절했다. 결국, 호박죽이 참 맛있는데 아쉽다는 말을 남긴 채 할머니가 마지못해 전화를 끊었다.

'못 먹더라도 흔쾌히 호박죽을 받아 둘 걸 그랬나?' 할머니의 친절을 거절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가 거절한 건 할머니의 정성이 담긴 호박죽이 아니라 나에 대한 할머니의 관심이었다. 나에 대한 이웃의 관심이 부담스러웠다. 혹시, 한 번의 호박죽이 두 번, 세 번 반복될까봐 경계한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나는 이웃과 관계 맺기를 원하지 않는다. 남 눈치 보지 않고 익명이 보장되는 아파트 생활패턴을 주택에서도 계속 유지하고 싶다. 서로 정을 나누는 훈훈한 이웃보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 관심이 없는 이웃이 더 편하다. 지금까지 말로는 해체된 공동체 문화를 복원시켜야 한다는 둥, 이웃끼리 정을 나누며 더불어 살아가는 마을에서 살고 싶다고 떠들었지만 막상 이웃이 내 집 현관문을 두드릴까봐 걱정하고 있다.

언제부터일까? 언제부터 이웃을 경계하면서 사는 삶이 편해져 버린 걸까? 호박죽 사건 이후, 스스로 되묻게 된다.

나는 아파트에서 나고 자란 아파트 키즈가 아니다. 그 반대로 내 집과 네 집의 경계가 없는 촌에서 나고 자랐다. 옆집에 숟가락 젓가락이 몇 개인지 훤히 아는 마을에서 컸다. 우리 집에서 부침개를 부치면 옆집 뒷집 앞집 사람들이 몰려왔고, 옆집에서 부부싸움을 하면 뒷집 앞집 사람들이 우리집에 모여 옆집 싸움을 중재했다. 엄마가 없으면 뒷집 할머니가 밥을 챙겨줬고, 뒷집 할머니가 편찮으시면 엄마의 마음도 편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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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까지 촌에서 생활했으니, 이웃 간의 정을 나누는 공동체 문화가 익숙해야 한다. 어쩌면 정서적으로 삭막한 아파트 문화를 불편해 해야 한다. 그럼에도 왜 지금 나는 이웃과 관계 맺기를 두려워하는 걸까? 나에 대한 이웃의 관심이 부담스러운 건 나 또한 이웃에 관심을 가지지 않겠다는 말과 같지 않을까? 아파트 콘크리트 벽보다 더 삭막한 내 마음의 벽이 느껴진다.

오늘도 나는 헷갈린다. 옆집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를 할 것인가? 가볍게 목례만 하고 지나갈 것인가? 인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이후 이웃과 관계가 달라질 것을 알기에 갈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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