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인디씨네 6월 상영작 다큐멘터리 〈고려아리랑〉
카자흐스탄 이주민 조명 격랑과 위로의 시간 담아
'생생함' 바탕한 질문 던져

누군가 다큐멘터리를 한 단어로 표현하라고 묻는다면 '활어차'라고 답할 것이다. 극영화처럼 인물 중심으로 기승전결로 펼쳐지지만 이야기 안에서 나오는 특유의 '생생함'이 마음에 든다. 던져진 옷가지와 흐트러진 이불에서 느껴지는 생활감, 청소를 해도 군데군데 드러나는 오래된 시간과 손때를 우리는 알고 있다. 정신없어 보이는 그것들이 내 방과 비슷해 보인다고 생각하는 순간, 관객은 그 방을 실재하는 공간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현실을 훨씬 더 가깝게 담아내는 카메라, 그 안에서 드러나는 삶의 결, 그래서 더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메시지가 다큐멘터리의 매력이다.

진주시민미디어센터에서 운영하는 독립영화관 '인디씨네'에서도 매력적인 다큐멘터리 영화를 꾸준히 상영하고 있다. 초반에는 노동, 투쟁, 시사 등이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감독의 철학과 가치관이 드러나는 작품 위주로 주제와 색깔이 다채로워졌다. 이 '생생함'이 관객에게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더 많은 질문을 건네고 있다.

다큐멘터리 〈고려 아리랑〉 스틸컷.

그중 다큐멘터리 <그리고 싶은 것>(감독 권효·2012)이 건넨 이야기는 인상적이었다. 일본, 중국 작가와 함께 '평화 그림책 프로젝트'에 참여한 그림책 작가 권윤덕이 주인공이다. 다큐멘터리에서 권 작가는 일본군 '위안부'를 소재로 삼았다. 영화는 그의 그림책이 출판되기까지 우여곡절을 카메라에 담았다. 개봉 당시 관객이 참여하는 영화 수다 행사를 준비했다. 영화를 보고 나면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영화관을 나선 관객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기꺼이 시간을 내어준 관객 덕분에 10여 명과 함께 수다회를 진행했다. 참여자는 <그리고 싶은 것>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기억하고 바라봐야 하는지 고민하게 되었다는데 공감했다. 영화를 보며 떠오른 각자의 경험이 흘러나와 공유되었다. 경험은 자연스럽게 더 큰 주제인 '평화'로 연결되었다. 권윤덕 작가가 그림책에 표현하고 싶었던 평화, 권효 감독이 카메라로 이야기하고 싶었던 평화가 관객의 마음에 닿았음을 확인했던 자리였다.

이처럼 영화의 메시지가 관객을 만나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마법 같은 매력이 다큐멘터리의 또 다른 힘이다. 예컨대 김명준 감독의 <우리 학교>(2006)를 통해 재일 조선인을 알게 된 후 재일 조선인과 함께하는 단체에 후원을 시작한 학생도 있다. <할머니의 먼 집>(2015)에서 이소현 감독과 그녀의 할머니를 본 관객이 영화를 보고 바로 자신의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기도 했다.

이렇게 작든 크든 변화를 만들어내는 다큐멘터리의 힘을 봐왔기에 인디씨네는 6월 상영작으로 <고려 아리랑: 천산의 디바>(2016)를 선택했다. 카자흐스탄 남동부 알마티 시에 고려극장이 있다. 카자흐스탄에서 가장 오래된 문화 기관 중 하나다. 세계에서 유일한 고려인 민족 극장이면서 1932년 창립된 이후 200편이 넘는 연극과 음악으로 지친 고려인의 마음을 달래준 곳이다. <고려 아리랑>은 고려극장이 2대에 걸쳐 배출해 낸 걸출한 디바, 이함덕과 방 타마라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다큐멘터리 〈고려 아리랑〉 포스터

이함덕은 고려극장에서 처음 <춘향전>을 올릴 때 춘향역을 맡은 1대 춘향이자, 은퇴할 때까지 100가지 배역을 소화한 전설적인 배우다. 그녀는 고려인 최초로 카자흐스탄 인민배우 칭호를 수여 받을 정도로 실력 있는 예술인이었다. 방 타마라 역시 이국적인 외모와 깊은 음색을 바탕으로 70년대 고려극장의 디바로 활약했다. 영화에서 이들은 민요부터 재즈, 소비에트 유행가까지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들려준다. 김소영 감독은 공연 영상은 물론 실제 채록한 노래 음원과 악보, 다양한 인터뷰를 통해 고려인이 겪은 격랑과 위로의 시간을 직조해낸다. 덕분에 관객은 연해주로 이주한 한인의 150년, 특히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 80년 세월을 음악과 함께 경험할 수 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누군가는 고려인을 깊이 이해할 것이고, 누군가는 한발 더 나아가 국내 체류 고려인 처우 개선을 위한 '고려인 특별법'에 관심을 두게 될 것이다.

영화 <철도원>의 원작소설로 유명한 작가 아사다 지로는 <설국>의 한 문장을 읽고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몰락한 명문가의 아이가 소설가가 되는 경우가 많다'는 문장이다. <고려 아리랑>도 이처럼 누군가의 삶에 큰 흔적을 남길지도 모른다. 그것이 바로 다큐멘터리 영화의 힘이기 때문이다.

/시민기자 조정주(진주시민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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