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정부 대형조선소에 지원 쏠리고 RG발급 꺼려
성동조선 최악시 수주 계약 취소도…"단기 대책 필요"

"선가는 바닥을 쳤습니다. 올 4월 이후 세계 조선시장이 서서히 살아나는데 RG(선수금환급보증서) 발급 문턱은 여전히 높습니다. 이 문턱만 다소 낮추면 하반기 추가 수주가 충분히 가능할 텐데, 갑갑합니다."

STX조선해양이 최근 산업은행으로부터 17개월 만에 RG를 발급받아 4월 국내 선주로부터 수주한 11K 탱커 4척(3+1)을 건조할 수 있게 됐다. 14척의 수주 잔량으로 내년 1·2월이면 건조 선박이 없을 처지에 있던 STX조선해양은 수주 잔량을 18척으로 늘리며 숨통을 트게 됐다.

하지만, 이번 STX조선 RG 정상 발급을 계기로 조선산업에 대한 금융권과 정부 지원이 너무 대형 조선소에만 쏠려 중형조선소를 차별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에는 국민연금 손실까지 주면서 회사채 축소와 만기 연장, 뒤이은 2조 9000억 원에 이르는 신규 자금 지원까지 해주면서도 중형조선소에는 영업이익이 마이너스가 아닌 수주를 해 와도 국책은행과 금융권이 RG 발급을 꺼려 후속 수주까지 어렵게 하는 상황이 계속된다는 불만 제기이다.

통영 성동조선해양 전경. /경남도민일보 DB

또한, 새 정부는 초기 자본금 4조∼5조 원으로 한국해양선박금융공사를 설립해 국내 해운사 지원과 중형조선소 RG 발급 어려움 해소 등을 하겠다고 내세웠지만 이 공사는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등 금융당국 수장 인선, 기획재정부·해양수산부·산업부 장관 등 경제 관련 장관 인선을 마무리하고서 용역 등 정부 내 검토와 자본금 확충 방안, 참여기관 확정 등을 논의해야 해 빨라야 올 연말 혹은 내년에야 출범할 수 있다. 수주 잔량 급감으로 생사의 갈림길에 서있는 중형조선사로서는 공사 설립을 마냥 기다리기 어려운 게 현실이고, 그 사이 단기 대책이라도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도내 중형조선소 중 STX조선뿐만 아니라 성동조선해양도 현재 수주를 해놓고는 RG 발급 문제로 수주가 취소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성동조선해양은 지난달 그리스 선주사와 11만 5000DWT급 탱커(유조선) 7척 수주 계약을 체결했다. 3억 달러 규모인 이 계약은 은행권으로부터 계약 체결 60일 이내 RG 발급을 받는다는 조건 아래 체결돼 내달 중순까지 RG를 발급받지 못하면 무효가 된다.

수주 잔량 9척으로 당장 올해 10월 말이면 일감이 소진돼 조선소가 올스톱 되는 성동조선 처지로서는 이 계약 성사에 회사 사활이 걸려 있다. 하지만, RG 발급을 두고 대주주인 한국수출입은행을 포함한 채권단협의회(수출입은행 + 농협 + 무역보험공사)는 관리비 축소를 발급 조건으로 내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사 노조는 관리비 축소는 인건비 축소를 뜻하고 이는 곧 추가 인력 감축 요구라며 반발하고 있다.

금속노조 성동조선해양지회 관계자는 "이번 계약 건은 영업이익이 어느 정도 보장된 것인데 채권단에서 추가 인력 감축을 요구하며 RG 발급을 미루는 셈"이라며 "더구나 이번 수주 실패 땐 추가 수주도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런 우려는 STX조선도 마찬가지였다. STX조선해양 관계자는 "전 세계 선박 시장에서 '국내 빅3'라는 대형조선소와 중형·소형조선소는 4대 6으로 나눠 수주한다. 대형과 중·소형조선소는 건조 선종이 각기 달라 서로 경쟁하지도 않는다"며 "4·5월을 기점으로 선가가 바닥을 친 상황으로 세계 신조(새 선박 건조) 시장 회복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이때 금융권 지원만 있으면 선주들은 중고선 가치가 더 높고 품질이 더 뛰어난 한국 중형조선소를 먼저 찾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저가 수주에 도와달라는 게 아니라 영업이익이 어느 정도 보장되면 지금처럼 RG 발급을 까다롭게 하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정치권과 금융권이 전향적인 태도 변화를 보여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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