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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 머무는 곳마다 샘솟는 이야기

[우리 고장 역사문화탐방] (3) 밀양
예림서원·밀양향교 찾아 경관·건물 둘러보며 미션 수행
밀양독립운동기념관 견학 수많은 항일투사 자취 더듬기도

2017년 06월 20일(화)
김훤주 기자 pole@idomin.com

<경남도민일보>가 진행하고 경상남도교육청이 지원하는 '청소년 우리 고장 역사문화탐방'이 5월 27일 김해 장유고교 학생들과 밀양을 찾았다. 밀양은 자연경관도 빼어나고 물산도 풍성하다. 예로부터 사람이 살기 좋았다는 얘기인데 그러다 보니 역사도 오래고 문화재도 곳곳에 그득하다.

◇예림서원과 밀양향교

서원과 향교는 요즘 중·고교에 해당한다. 서원은 사립이고 향교는 공립이다. 옛날 학교는 공부도 하면서 제사도 지냈다. 공부는 훌륭한 인물들의 가르침을 배우는 것이고 제사는 그런 인물들을 본받자는 취지로 모시는 것이었다. 그래서 서원이든 향교든 앞쪽에 공부하는 강당이 있고 뒤쪽에 제사 지내는 사당이 있었다. 어려운 한자말로 전학후묘(前學後廟)라 한다.

서원과 향교는 차이점도 있다. 향교는 공립이라서 모시는 인물이 공자·맹자·주자와 최치원·설총·안향처럼 국가 공인 선현들이었다. 서원은 사립이다 보니 세운 사람들 취향에 맞게 모시는 저마다 사람이 달랐다. 예림서원은 밀양 출신 선비 점필재 김종직(1431~1492년)의 제자들이 스승이 세상을 떠난 뒤 그를 기리기 위하여 만들었다.

미션 수행 중 예림서원 강당 마루에 앉아 있다.(아래 사진)

김종직은 제자들에게 독서를 강조했다. 세종 때 태어난 김종직은 단종을 쫓아낸 세조 치하에서 벼슬살이를 시작했다. 당시 조정은 훈구세력 독차지였고 김종직 같은 사림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사림은 세조의 단종 제거에 비판적이었으나 표현하면 역적으로 몰려 목숨을 잃었기에 참아야 했다. 대신 같은 사림파가 조정에 많이 진출하도록 애썼다. 재산도 권력도 신분도 미약했던 사림은 실력 말고는 기댈 데가 없었다. 실력을 기르려면 사서삼경을 비롯한 유교 경전을 읽어야 했다. 김종직 모시는 예림서원의 정문이 독서루가 된 까닭이다.

이런 내용을 담은 미션지를 팀별로 나누어 주었다. 아이들은 예림서원 들머리에서 끝머리까지 설명을 찾고 또 상상력까지 더해 미션을 수행했다. 더러는 강당 마루에 앉아 사진도 찍고 뒤뜰 나무에서 그늘도 누린다. 이러는 가운데 몇몇이 말했다. "아, 참 좋아요!" 이것으로 족하다. 찾아와 둘러보고 건물이든 주변 경관이든 우거진 수목이든 좋은 느낌을 품었다면 탐방은 다른 필요 없이 그냥 성공이다.

독서루에 올라 함께 미션 풀이를 하고 간단한 선물을 나눈 다음 밀양향교로 옮겼다. 밀양향교는 구성이 독특하다. 보통은 강당(명륜당)과 사당(대성전)이 앞뒤로 자리 잡지만 여기서는 강당이 왼쪽에 있고 사당은 오른쪽에 있다. 아무러나 밀양향교는 나무들이 멋지다. 여느 향교에나 있는 은행나무·전나무는 더욱 씩씩하고 일제가 일부러 심었다는 향나무조차 그럴듯한 풍경으로 자리 잡았다. 들머리 길가에는 느티나무가 담장을 대신하고 뒤뜰에 심긴 크고 작은 배롱나무는 철 되면 피고 지는 꽃이 정말 볼만하겠다. 가는 날이 장날이었던지 무슨 행사를 치르느라 나와 있던 전교(典敎=교장) 선생님이 아이들 느닷없는 방문에도 시간을 내어주어 얘기를 나눌 수 있었으며 대성전에 들어가 위패들도 둘러볼 수 있었다.

◇월연대

월연대(月淵臺)는 조선 중종 때 인물 이태(1483~1536)가 지었다. 밀양강이 단장천을 받아들이는 어귀 맞은편 높다랗고 가파른 언덕배기에 있다. 두 물이 만나다 보니 흐름이 잦아들어 달(月)이 비치는 연못(淵)이 되었다. 여기 건물 가운데는 쌍경당(雙鏡堂)도 있다. 달을 비추는 거울이 물속에 하나 하늘에 하나 합해서 둘이다. 정자 월연대는 쌍경당 지나 개울을 건넌 다음 바위 계단을 올라가야 나온다.

이런 건물은 남자가 주인공인데 이를 짐작게 하는 두 군데를 찾아보라고 했다. 하나는 금세 찾았지만 다른 하나는 찾지 못했다. 찾은 하나는 부엌이 없다는 것이고 찾지 못한 하나는 기둥이 둥글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여자들이 해 주는 음식을 받아먹기만 했기에 옛날 남자들 건물에는 부엌이 없고 옛적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남자와 여자를 제각각 둥근 하늘과 모난 땅에 견주었기에 남자들 건물은 기둥이 둥글다.(여자 건물은 기둥이 네모나다.)

월연터널 들머리에서 폴짝 뛰어보이는 김해장유고 친구들.(위 사진)

친구들은 월연대와 쌍경당에서 사진을 찍으며 즐기더니 돌아 나오는 길에는 옛길 터널에 푹 빠졌다. 일제강점 이전 1905년 경부선 철도 개통 당시 뚫린 것인데 1940년 경부선이 복선으로 되면서 도로 터널로 바뀌었다. 너비가 3m 남짓으로 좁은 데다 적당하게 아담하고 어둑해서인지 아이들이 오가면서 사진을 찍으면서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를 내었다.

◇밀양시립박물관과 영남루

느지막하게 점심을 먹은 다음 밀양시립박물관·밀양독립운동기념관을 찾았다. 밀양은 독립운동가가 엄청나게 많이 나왔다. 우리나라 어지간히 큰 도시도 밀양만큼 많은 항일투사가 나지 않았다. 밀양 출신 독립투사는 60명을 훌쩍 웃돈다. 사정이 이렇게 된 데는 밀양이 물산이 풍부하고 교통이 편리해 새로운 문물과 사조를 받아들이기 쉬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조건은 어쩌면 다른 대도시가 더욱 잘 갖추고 있다.

밀양에는 훌륭한 선생 또는 선배가 있었다. 백민 황상규 선생이다. 밀양 고장을 든든히 지키면서 후배와 제자들을 길러내었다. 그래서 약산 김원봉을 비롯해 수많은 운동가·투사들이 생겨날 수 있었다. 이런 자취를 고스란히 담아놓은 데가 밀양독립운동기념관이다. 기초지방자치단체 가운데 밀양처럼 별도로 이런 시설을 꾸려놓은 데는 없다. 밀양독립운동기념관은 자체만으로도 밀양의 항일독립운동이 대단했음을 말해준다. 학생들은 밀양시립박물관과 밀양독립운동기념관을 하나로 아우르는 미션을 수행했다.

영남루 마당에서 노니는 모습.(가운데 사진)

마지막으로는 영남루에 올랐다. 평양 부벽루 진주 촉석루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누각으로 꼽힌다는데 풍광의 대단함과 건물의 우람함은 모두 영남루가 으뜸일 것이다. 이런 데서는 미션 따위 필요 없다. 마음껏 노닐고 즐길 수 있으면 그게 더 아이들 몸과 마음에 크게 새겨지니까. 몇몇 친구들은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살펴보곤 했고 나머지 대부분은 편하게 영남루를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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