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 일었던 서울시 '슈즈트리'등 지자체 주먹구구식 설치-철거 많아
메시지·시의성 고민 없이 예산낭비...전문가 "주민 논의·참여 필요"강조

지역이나 건물의 상징성을 나타내는 공공조형물 상당수가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지자체가 충분한 주민 여론 수렴이나 타당성 조사 없이 막대한 예산을 들여 무분별하게 건립하고서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탓이다.

메시지나 장소, 시의성 등에 대한 고민 없이 설치된 이들 공공조형물은 시간이 흐르면서 파손·훼손되면서 흉물스럽게 방치되고 있다.

◇무분별한 설치-철거 되풀이 예산 낭비 지적 = 슈즈트리는 도시재생과 환경보전의 중요성을 일깨우고자 서울시가 서울역 광장에 헌 신발 3만 켤레로 만든 설치미술 작품이다. 작가의 재능기부로 큰돈이 들지 않았지만, 운반과 거치대 비용 등으로 1억 4000만 원이 투입됐다.

결국 철거된 서울로7017 개장 기념 작품 '슈즈트리'. /연합뉴스

하지만, 지난달 20일 설치돼 9일 만에 철거돼 애꿎은 세금만 낭비한 셈이 됐다. 높이 17m 서울로에서 수직으로 매어 늘어뜨린 신발을 멀리서 보면 폭포수가 쏟아지는 것 같다는 서울시의 의미 부여에도 흉물스럽다는 비판이 컸기 때문이다. 일부 시민은 "그렇지 않아도 빌딩 숲에 회색빛인 서울 도심을 더욱 보기 흉하게 만든다"며 "보지 않을 선택권이 없는 상황에서 예술적 의미는 둘째치고 일반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줘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충북 괴산군이 2005년 5억 원을 들여 만든 가마솥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 이 가마솥은 지름 5.68m, 높이 2.2m, 둘레 17.8m, 두께 5㎝로 애초 '세계 최대'라는 덩치를 내세워 기네스북 등재를 꿈꿨다.

하지만, 호주의 질그릇이 이 가마솥보다 더 큰 것으로 확인돼 괴산군의 계획은 수포가 됐다. 우여곡절 끝에 가마솥을 완공한 군은 이후 옥수수 삶기, 팥죽 끓이기 등의 이벤트성 행사를 하는 데 몇 차례 동원했을 뿐 딱히 용도를 찾을 수 없었다. 2007년부터는 이마저도 중단됐다. 바닥이 두꺼워서 솥 아래쪽과 위쪽의 온도 차가 크게 나기 때문에 사실상 음식 조리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가마솥을 유지·관리하는 데도 군민 세금이 들어갔다. 군은 무쇠로 만든 가마솥에 녹이 생기는 것을 막고자 지난해 500만 원(인건비 포함)을 투입한 데 이어 올해에도 비슷한 규모의 예산을 투입할 계획이다. 애물단지가 된 이 가마솥의 운명은 이달 말께 결정된다.

고철 신세 된 충북 괴산군 대형 가마솥. /연합뉴스

전북도는 39억 원을 들여 이달부터 도청 광장에 설치된 중앙분수대 등 시설물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실개천과 잔디광장 등을 만들 계획이다. 그동안 도청 광장은 지역의 문화·휴식·놀이 공간이자 전주의 랜드마크로 기능했으나 분수대 등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하자 내린 결정이다. 그러나 청사 광장이 건립된 지 12년밖에 되지 않은 데다 멀쩡한 광장을 뜯어 엎자 세금 낭비라는 도민의 지적이 쏟아졌다.

도는 "전기료 때문에 가동하지 않는 분수대가 사실상 장식물에 그치고 복사열이 많은 콘크리트 바닥을 잔디로 교체하면 훨씬 주민 친화적인 공간이 될 것"이라고 해명했다.

3대 악성 중 한 사람인 난계 박연의 고향인 충북 영동군은 2010년 2억 3000만 원을 들여 울림판 지름 5.54m, 지름 6.40m, 너비 5.96m, 무게 7t 규모의 대형 북을 제작했다. 이듬해 영국의 기네스 월드 레코드(GWR)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큰 북(Largest Drum)'으로 인증받았다.

▲ 기네스에 올랐으나 방치되어 온 충북 영동군 대형 북. /연합뉴스

그러나 세계 최대 크기를 자랑하는 이 북은 보관시설 없이 난계 사당 앞 임시보관소에서 4년간 방치되다 새로 지어진 국악 체험촌의 집(고각)에 겨우 자리 잡았다.

시의성이 없거나 예술성이 떨어지고 지역 랜드마크로서 기능하지 못하는 공공조형물도 허다하다.

2015년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 공원에 설치된 '평화의 발'은 절단된 발의 형태로 애국심을 강요한다는 논란을 빚었다. 비무장지대 순찰 중 지뢰가 터져 상처를 입은 군인들을 기리기 위한 이 '평화의 발' 건립에는 2억 원이 들었다.

서울 강남구는 지난해 4월 강남의 상징과 외국인 관광마케팅을 위해 4억 원을 투입해 싸이의 노래 '강남스타일'의 손동작을 본뜬 높이 5m, 폭 8m의 '강남스타일 말춤'이라는 조형물을 만들었다. 하지만, 2012년 노래의 상징물을 설치한 탓에 식상하다는 반응이다.

2015년 한강 원효대교에 1억 8000만 원이 투입돼 설치된 무게 5t의 '괴물'도 마찬가지다. 한강에 스토리텔링을 연계한 관광상품을 만들자는 취지로 2006년 1000만 명이 넘는 흥행성적을 기록한 영화 <괴물> 속에 등장한 돌연변이 괴물을 재현한 것이다. 그러나 10년이 넘은 오래된 아이템인 데다 적절한 스토리텔링이었는지에 대한 논란은 여전하다.

▲ 시의성 떨어지는 서울 한강의 '괴물' 상징물. /연합뉴스

◇전문가들 "주민 의견 수렴하고 사후관리책 마련해야" = 이런 전시행정의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에게 전가된다. 설치하느라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붓고 철거하느라 또 세금이 투입되기 때문이다.

공공시설물은 부산 547점, 경남 391점, 충남 378점, 경기 345점 등 시도마다 수백 점에 달한다. 공공시설물은 회화·조각·공예·사진 등의 조형시설물, 벽화·분수대·폭포 등 환경시설물, 상징탑·상징물 등의 상징조형물 등으로 구분된다.

최영규 전북도의회 운영위원은 "무분별한 조형물의 난립과 예산 낭비를 막으려면 광범위한 의견 수렴과 함께 전문가들의 심의를 거치도록 조례를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공공시설물 훼손자에 대한 신고포상금 지급 제도를 운용해 우수한 공공조형물을 효율적으로 보호하고 일정 시기마다 재심의해 재지정, 이전, 해제 등을 결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남규 참여자치 전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지자체의 입맛과 유행에 따라 예술성도 없는 공공조형물 설치·철거를 반복하면 예산만 낭비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공공조형물이 지역 랜드마크로 자리 잡으려면 주민의 자발적 논의와 참여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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