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아파트에 유기농 사료 호강하는 개
바쁜 농사철 대한민국 농부는 바보같아

그 친구는 60평 아파트에 삽니다. 수입 천연대리석과 장롱에 그리고 고급 전자제품에 새로 나온 공기청정기까지 다 갖추고 삽니다. 그러나 십 년 넘도록 단 한 번도 그 집에서 손님을 맞이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요즘은 모든 모임과 잔치도 더구나 집들이까지 모두 식당에서 하기 때문입니다.

엊그제, 그 친구 아들 혼인식에 초대받아 갔습니다. 혼인식이 끝나기 무섭게 식당으로 가서 밥을 먹습니다. 밥을 먹고 나와 커피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 집에 밥값이 얼마래." "1인당 사오만 원쯤 할 걸." "요즘 사오만 원짜리 밥도 먹을 게 없어." "맞아, 반찬은 수십 가진데 말이야. 먹을 게 있어야지." "그것보다 식당 밥 먹고 나면 속이 불편해. 짜고 맵고 달고…." "어쨌든 밥은 집에서 먹어야 해. 반찬 한두 가지면 어때. 된장찌개 보글보글 끓여서 먹으면 속도 편안하잖아." "어이구우, 요즘 세상에 그렇게 귀찮은 일을 누가 하나. 돈만 주면 밥이고 반찬이고 다 해 주는데." 손님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들으며 사람 사이에 흐르던 따뜻한 정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돈과 편리함'이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삶이 그만큼 잠시 돌아볼 틈도 없이 바쁘고 고달픈 것이겠지요.

그 친구는 부동산 투기하느라 바빠서 집에서 밥 먹을 틈이 없고, 그 친구 아내는 남편이 번 돈으로 요가학원으로 수영장으로 커피 집으로 돌아다니느라 집에 붙어 있을 틈이 없어요. 그렇다면 넓고 고급스러운 아파트는 누가 누리며 살까요? 그 집 개가 다 누리며 삽니다. 개라도 누리며 살고 있으니 얼마나 큰 다행인지요. 그 집 개는 하루 내내 수입 천연대리석과 장롱에 그리고 고급 전자제품을 바라보며 삽니다. 더구나 새로 나온 공기청정기에서 나온 공기를 마시며 삽니다. 주인이 바깥에서 화학첨가물 범벅인 불량식품을 사 먹을 동안, 그 집 개는 농약 성분 하나 없는 유기농 사료에 정수기 물을 먹습니다.

개 한 마리 키우는 데 들어가는 돈이 얼마나 될까요? 나는 아직 한 번도 개를 키워본 적이 없어 잘 알지 못합니다. 분양비, 샴푸, 린스, 빗, 옷, 예방접종, 구충제, 기생충약, 사료…. 크으, 생각만 해도 머리가 어지럽습니다. 개는 쓰고 버리는 장식품이나 장난감이 아니라 사람처럼 목숨이 있는 소중한 생명체입니다. 개를 키우다 보면 사람처럼 정이 들 것이고, 정이 들면 죽을 때까지 한 식구처럼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런저런 해야 할 일과 들어가야 할 돈을 생각하다 보면 저절로 고개를 젓게 됩니다.

서정홍.jpg

산골 농부가 왜 바쁜 농사철에 개 이야기를 늘어놓는 걸까요? 다 까닭이 있습니다. 그 친구가 도시에서 개한테 유기농 사료를 주고, 목욕을 시키고, 빗질을 하고, 개와 산책을 할 때에도 산골 마을에서 농사짓는 아내와 나는(농부들은) 들에 나가 일을 합니다. 농사철엔 번개가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농사철엔 누구나 번개가 됩니다. 해보다 먼저 일어나 콩을 심고, 얼른 집에 들어와 미숫가루 한잔 마시고, 양파를 뽑고, 바람에 흔들리는 고춧대를 묶고, 점심밥을 먹고, 감자를 캐고, 서산에 해가 기울면 다시 집으로 돌아와, 감자 택배 보낼 준비를 합니다. 호미에 찍힌 놈, 못생긴 놈, 작은 놈, 벌레 먹은 놈, 빛깔 퍼런 놈을 다 가려내고 상자에 담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저녁도 굶었습니다. 밤 10시가 넘어서야 저녁을 먹고 몸을 씻고 자리에 누웠는데, 아내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립니다. "여보, 우리 농사짓는 사람하지 말고 돈 주고 사 먹는 사람하모 좋겠소." 그 말을 듣고 나니 잠이 오지 않습니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에서 농부로 산다는 게 '바보' 같아서….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