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첫 시행 후 학교 전통으로
학생, 양심 선언으로 마음 다지고 교사, 최소한의 점검으로 도움
일기·서약서 통해 자체 평가도 새로운 인성교육으로 자리매김

'학생들의 표정엔 긴장감이 감돈다. 두 손 모아 기도하는 학생부터 한 페이지라도 더 보려는 학생까지…. 정적이 감도는 교실에 또각또각 시계 소리와 감독관의 발소리만 울려 퍼진다.'

시험 기간 여느 학교의 풍경이다.

학창시절 시험 하면 긴장된 분위기 속에 치렀던 기억과 함께 무서운 감독 선생님 표정을 떠올릴 테지만, 밀양 밀성여중이 치르는 시험에는 감독 교사가 없다.

밀성여중은 감독 교사 없이 학생 스스로 시험을 본 지 올해로 40주년을 맞았다. 1978년 시작한 무감독 시험은 이제 밀성여중만이 자랑하는 전통이 됐다.

무감독 시험에 앞서 '양심껏 시험을 치르겠다'는 의미로 하는 선서 모습. /밀성여중

◇40년째 무감독 시험 전통 이어와 = 밀성여중은 지난 1978년 무감독 시험을 처음 도입했다. 매주 두 과목씩 시험을 치르던 주초고사를 감독 없이 치르도록 한 게 시작이었다.

무감독 시험이 자리 잡기까지는 3년 가까이 걸렸다.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부정행위를 염려한 학부모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중단 위기에 놓였던 무감독 시험은 당시 정수성(전 세종고 교장) 교무주임이 무감독 시험 시행 이후 달라진 학교 분위기와 학생들의 높은 만족도를 바탕으로 끊임없이 설득작업을 진행했고, 결국 1980년 4월 월례고사부터 본격적인 무감독 시험이 시작됐다.

전국적으로 무감독 시험을 시행하는 학교는 진주 삼현여고를 비롯해 인천 제물포고 등이 40년 넘는 전통을 이어오고 있지만, 중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곳은 흔하지 않다.

◇감독관 없이, 양심껏 시험 치러 = 밀성여중에서 시험을 칠 때 교사는 최소한의 준비 과정만 돕고, 시험 시간에는 교실을 빠져나간다. 교사는 시험 시작종이 울리기 전 시험지를 나눠주고 나갔다가 시험 종료 직전에 돌아와 답안지를 거둬간다. 대신 3개 교실마다 1명의 관리교사가 배치돼 답안지 교체 등 시험 편의를 돕고 있다.

밀양 밀성여중 무감독 시험 40주년 기념 행사에서 학생들이 퀴즈 대결을 하고 있는 모습

그렇다고 시험이 허술한 것은 아니다. 학생들은 시험 전 양심 시험을 선언하는 의미로 서약서를 쓴다.

'나는 1978년부터 시작한 우리 학교 무감독고사 제도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로 시작하는 양심 서약서에는 △나는 선배들이 물려준 아름다운 전통을 지켜나가겠다 △나는 어떤 경우에도 부정행위를 저지르거나 도와주지 않겠다 △나는 시험을 방해하거나 교실 분위기를 흐리는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겠다 △나는 시험을 방해하는 행동을 하거나 부정행위에 가담하였을 경우, 교칙에 의한 처벌을 달게 받겠다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또, 시험 후에는 '마음일기'를 쓴다. 마음일기는 시험에 대한 학생들의 소감과 평가는 물론 커닝 등 부정행위가 있었는지를 점검하는 내용이다. 이를 토대로 교사들은 부정행위를 적발해내고, 보완해야 할 점도 찾게 된다.

밀성여중 선경진 교사는 "초등학교부터 습관이 되지 않은 저학년 학생들은 시험 방해행위 등을 하는 경우가 있지만, 고학년이 될수록 무감독 시험에 적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밀양 밀성여중의 무감독학력고사 관계철. 40년 역사의 무감독 시험 전통을 알려주는 듯 빛이 바랬다.

◇학교의 전통이 된 무감독 시험 = 밀성여중의 무감독 시험은 올해로 40주년을 맞았다. 27일 오후 3시 30분부터 밀성여중 해심홀에서는 무감독 시험 4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 있는 행사가 열렸다. 이날 학생들은 양심과 관련한 동영상을 시청하고, 퀴즈를 풀며 무감독 시험의 의미를 되짚었다. 또, 학생들이 직접 만든 무감독 시험 동영상을 함께 보며 학교의 자랑스러운 전통으로 자리매김한 무감독 시험 40주년을 자축했다.

밀성여중 김진호 교장은 "40년째 무감독 시험 전통을 이어오기까지는 많은 교직원과 학생들의 노력과 헌신이 있었다"면서 "무감독 시험은 양심을 일깨우고 새로운 인성교육의 활기를 되찾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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