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여론에 향토사연구회 성명 발표 "반드시 보존해야"

"통영에서 발견된 원문성터가 어떻게 잡다한 돌담 수준이란 말인가."

아파트 공사 도중 통영 '삼도수군통제영 관문'인 원문성터 발견과 관련, 통영향토사연구회(회장 김창욱)가 일부 전문가들의 저평가에 우려를 표했다.

통영향토사연구회는 28일 성명에서 "지난 6월 애조원지구 도시개발사업(1200가구 아파트단지 조성) 시행업체가 의뢰한 학술자문회의에서 이른바 전문가가 '(이번에 발굴된) 원문성은 조잡한 돌담 수준'이라거나 '말이 도망가지 못하게 차단하는 목장성 수준'이라고 저평가한 것으로 안다"며 "지역 향토에 대해 공부하는 사람들로서 깊은 유감을 표시하지 않을 수 없다"고 우려했다.

삼도수군통제영은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3도 수군을 총지휘·담당한 조선시대 해군본부로 1604년(선조 37년) 통영에 설치됐다. 발견된 원문성터는 이 통제영의 관문이었다.

연구회는 "통제영 군문(軍門)으로서의 위상은 재론할 필요가 없을 만큼 국가적으로도 중요하다. 특히 숙종대에는 그 위상을 높이고 늘어나는 인구를 수용하고자 군문을 확대했다"고 밝혔다.

연구회에 따르면 원문성은 1678년(숙종 4년) 통영성을 먼저 축조하고, 1682년(숙종 8년) 통제사 원상(元相)대에 통제영의 북쪽에 성문을 세웠다. 이후 지속적인 보완작업을 거쳤고 원문성을 통하지 않으면 통제영으로 들어올 수 없는 완벽한 육로의 요새가 만들어졌다.

<통영지>에는 원문성은 수문장이 원문성문을 지키고 신임 통제사가 전임 통제사와 인장(印章)을 인수인계하는 '원문교인(轅門交印)'을 행했던 곳이라고 기록돼 있다. 그리고 2층으로 된 누각인 공신루에는 '삼도대원수원문(三道大元帥轅門)'이라는 편액을 걸어, 이곳으로부터 통제사가 직할하는 통제영임을 알렸다.

연구회는 "1895년(고종 32년) 통제영 폐영 이후 일제 등에 의하여 훼손된 원문성이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다시 한 번 확인됐다"고 강조했다.

연구회는 이어 "조선시대 조그마한 생활용품(도자기)도 귀중한 문화재로 인정한다"며 "우리가 원문성을 보존하자는 이유는 없는 문화재를 새삼 다시 만드는 것도 아니고 과대평가를 하자는 것도 아니다. 원문성을 보존함으로써 통영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잘 모르는 학생과 시민, 통영을 찾은 관광객들에게 교육 장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연구회는 문화재청과 통영시에 "우리는 아파트 신축공사를 반대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원문성 보존을 최우선으로 해 그 보존대책을 먼저 수립한 후, 아파트 개발 행위를 해야한다"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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