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선생님에서 제2의 인생을 그리는 화가로

평생을 바친 직장을 그만두고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다. 오정윤(50) 씨도 그중 한 명이다. 20년이 넘게 음악 선생님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다 '유방암'이란 큰 병에 걸렸다. 그러나 오 씨는 낙담하지 않았다. 치료를 하면서 새로운 삶을 설계했다. 무엇을 해볼까 고민하다가 우연히 '그림'을 접하게 됐다. 재능이 있었는지 배울수록 그림 실력은 일취월장했고 한국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화려한 인생 2막을 시작한 오정윤 씨를 만나봤다.

재능이 많았던 소녀

창원시 성주동 지하에 위치한 작업실 내부는 한 마디로 깔끔했다. 미술용품들은 가지런히 정리돼 있었고 벽면은 오 작가의 작품들로 가득했다. 또 은은한 커피 향과 클래식 음악이 작업실 전체를 물들이고 있었다.

"부모님 두 분 다 교직에 계셨습니다. 그러다 보니 보수적인 면이 있으셨죠. 또 제가 큰딸이고 하니까 음악, 미술 같은 예체능을 많이 배우게 해주셨어요. 그렇게 학창시절을 보내고 대학 진학을 앞두게 됐죠. 전 당시 미술대회에 나가서 상도 많이 받고 해서 미술 쪽으로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음악을 전공한 후 음악 교사를 하라고 하셨어요. 당시만 해도 부모님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야 되는 시대였거든요. 결국 음악교육학과로 가서 음악 선생님이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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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정윤 화가. / 박성훈 기자

오 씨는 경남 하동군으로 첫 발령을 받았다. 가족들과 떨어져 외로울 거란 생각에 두려움이 앞섰다. 그러나 그곳에서 동창도 만나고 주민들을 이끌고 합창대회에 출전해 수상까지 했다.

"근처에서 고등학교 친구가 영어 선생님으로 근무하고 있었어요. 서로 의지하면서 재밌게 지냈죠. 또 동네 어머님들을 모아서 하동군 합창대회를 준비했습니다. 농번기에는 다들 바쁘기 때문에 주로 밤에 모여서 연습했어요. 열심히 노력한 끝에 대회에서 3등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즐거운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다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하고 창원으로 왔습니다."

갑자기 찾아온 병

순탄할 것만 같던 인생에 IMF가 찾아왔다.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져야만 했다. 자식들과 떨어져 살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오 씨는 하루하루를 눈물로 보냈다.

"창원에서 교직 생활을 하던 중 IMF가 터졌어요. 남편이 사업을 했었는데 상황이 너무 안 좋았죠. 그래서 남편은 진주로, 아이들은 함양에 계시는 아버지 댁으로 가게 됐습니다. 한참 아이들이 클 때였는데 주말에 잠깐 보고 오는 게 전부였어요.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내고서야 다시 가족들이 함께 살 수 있었죠."

끝난 줄만 알았던 위기가 또 한 번 찾아왔다. 언젠가부터 몸이 안 좋아지는 것을 느끼고 병원을 찾은 오 씨는 '유방암에 걸렸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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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정윤 화가 작업실 내부. / 박성훈 기자

"어느 날부터 몸이 결리기 시작하는데 일주일이 지나도 회복이 안 되는 겁니다. 병원에 가서 사진을 찍어보니 더 큰 곳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그 병원에서도 빨리 서울에 있는 병원에 가서 조직검사를 해보라고 하더라고요. 결국 서울까지 가서 유방암에 걸렸다는 걸 알게 됐죠. 수술을 받고 항암 치료를 한 후 다시 복직했어요. 그런데 제 몸이 지치고 힘드니까 수업하기가 벅차더라고요. 억지로 하다간 저와 학생 모두가 힘들 것 같아서 퇴임을 결심했죠. 막막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설레기도 했습니다."

제2의 인생 '화가'

퇴직을 준비하면서 틈틈이 여러 가지를 배웠다. 그러다 우연히 배우게 된 그림이 오 씨를 '화가'란 제2의 인생으로 이끌었다.

"원래 무언가 배우는 걸 좋아했어요. 교사 시절부터 영어, 꽃꽂이, 요리 등 여러 가지를 배웠는데 적성에는 안 맞았습니다. 그러다 어렸을 때부터 관심이 있었던 그림을 배워보기로 했어요. 서양화·한국화 등을 배웠는데 딱 제 적성에 맞는 거예요. 오랜 시간을 앉아서 작업해도 안 지겨웠고 전문적으로 해봐야겠다고 결심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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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정윤 화가. / 박성훈 기자

오 씨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섰을 때 느꼈던 감정들을 그림에 녹여낸다.

"암이란 병을 겪으면서 삶을 다시 돌아보게 됐습니다. 그때 느꼈던 생각과 감정들을 그림에 담으려고 노력해요. 오로지 제 머릿속에서 나온 것들로 그림을 채워야 하기 때문에 쉽진 않은 작업이죠. 또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간직하고 싶은 순간들이 있잖아요. 그런 것들도 그리고 있습니다."

영감은 그림을 그리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손꼽힌다. 그렇다면 오 작가는 어디서 작품에 대한 영감을 얻을까?

"여행을 통해서 영감을 많이 얻습니다. 국내든 해외든 여행을 하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죠. '이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왔고 이 공간에선 어떤 일들이 일어났을까' 같은 생각을 하다 보면 영감이 떠올라요. 영감이라고 별게 아니에요.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했던 경험, 내가 지나갔던 장소에서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어요."

힘든 시간을 이겨내게 해준 그림

오 씨는 벌써 4회나 되는 개인전을 열었다. 국내뿐만 아니라 미국 LA·뉴욕에서도 개인전을 진행했다.

"첫 개인전은 '마루'라는 미술가들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화랑에서 했습니다. 2016년에 창원 성산아트홀에서 2회 개인전을 했고요. 3회는 미국 LA에서 부스 개인전으로 진행했고 저번 주에 뉴욕에서도 했습니다. 저는 주로 개인전을 하려고 하는 편입니다. 육체적으론 힘들지만 얻는 게 더 많거든요. 작품에 대한 구상부터 시작해서 생각해야 할 것들이 한두 개가 아니에요. 그럼에도 개인전을 한 번 하고 나면 그림도 더 풍성해지고 스스로 성장하는 느낌도 들어요. 해마다 한 번씩은 하려고 생각합니다."

그림을 말하는 오 씨의 얼굴에선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힘들었던 순간보단 그림을 그리면서 위로받고 행복했던 시간이 더 많았다는 오 씨. 언제가 가장 힘이 됐을까?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을 때는 아이들과 떨어져 살 때였죠. 당시 아이들이 3살, 5살이었는데 앞서 말했듯이 일주일에 한 번씩, 그것도 밤에 잠시 보고 다음 날 내려와야 했어요. 그때를 생각하니까 지금도 눈물이 나네요. 너무 슬픈데 하소연할 곳도 없어서 그림에 더 몰두했죠. 그때 느꼈던 감정들을 그림으로 나타내기 위해 하루 종일 매달렸어요. 그림도 거의 울면서 그렸죠. 그림이 완성될 때까지 울고 나니까 한결 가벼워지더라고요. 힘들었던 걸 많이 내려놓게 되고 완성된 작품을 보니까 치유받는 느낌도 들고. 힘든 시간을 버티게 해 준 고마운 존재죠."

지금까지 많은 작품을 그린 오 씨.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게 있을까. 그래도 가장 아끼는 작품이 있는지 물었다.

"모든 작품이 소중하죠. 꼭 하나를 꼽자면 2회 개인전 때 메인으로 건 작품이 있습니다. 제목은 '체인지'인데요. 체코로 여행을 갔을 때 찍은 사진을 그림으로 옮겼습니다. 집 대문을 기준으로 오른쪽과 왼쪽에 빛과 그림자가 극명하게 드러나 있었어요. 마침 한 여행자가 그 문을 지나가는 모습을 순간적으로 찍었죠. 사진을 자세히 보니까 한 인간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어둠인지 빛인지도 모른 체 앞만 보고 달려가잖아요. 잠시 멈추고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돌아보는 게 정말 중요합니다. 제 인생도 크게 한 번 바뀌었잖아요. 이 작품을 본 사람들도 저처럼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길 바라면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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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정윤 화가의 작품 'CHANGE'. / 오정윤 씨 제공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서

앞으로 오 씨는 어떤 그림을 그리고 싶을까?

"한정된 것만 그리는 작가들이 있습니다. 그 분야에선 최고가 될 수도 있겠지만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죠. 저는 새로운 것에 계속 도전할 계획입니다. 한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하게 제 생각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어요. 앞으로 제 그림이 어떻게 변할지는 저 스스로도 모르는 일이죠."

인터뷰는 끝이 났다. 완성해야 할 작품이 있다며 다시 붓을 드는 오 씨를 붙잡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사람들은 전환점이 있어야 깨닫는 것 같아요. 다들 자신은 천년만년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잖아요. 저도 과거에는 아무 생각 없이 살아왔죠. 물론 IMF를 겪으면서 물질적으로 힘들 때도 있었어요. 그때는 절망은 했지만 인생을 돌아보거나 그러지는 않았죠. 암에 걸리고 죽음과 맞닥뜨리는 순간에야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또 주변 사람들에게 '행복 바이러스'가 되고 싶어요. 저와 관계를 갖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거든요. 그럼 어떻게 사는 게 정답이냐? 간단해요. 매 순간을 소중하고 감사하게 살아가는 거죠. 또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고요. 저처럼 제2의 인생을 꿈꾸는 분들이 있다면 주저 말고 도전했으면 좋겠어요.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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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정윤 화가의 작품 '밀라노 광장'. / 오정윤 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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