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한 노장? 사진에선 현역이죠"

한라장사 씨름 선수, 이제는 사진 작가

한때 씨름판을 호령했던 '털보' 이승삼(57·대한씨름협회 심판위원장) 씨. 2015년 12월 창원시청 감독직을 그만두고 씨름판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났지만 그의 존재감은 여전하다.

최근에도 그의 이름은 신문지면에서 자주 확인할 수 있다. 바뀐 것이 있다면 씨름 때문이 아니라는 것.

씨름판을 들었다 놨다 하던 그가 영화에 이어 토크콘서트에도 출연하더니 이제는 카메라까지 들었다 놨다 하고 있다. 최근에는 사진전까지 개최해 큰 호응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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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삼 대한씨름협회 심판위원장. / 유은상 기자

그는 현역 시절 17·21·36대 등 세 차례 한라장사 타이틀을 획득하며 명성을 날리다 1991년 선수 생활을 접었다. 이후 경남대 감독, 마산시청 감독으로 후진 양성에 매진했고, 2015년 창원시청 감독을 사임하면서 24년간 정든 모래판을 떠났다.

그랬던 그가 채 2년도 지나지 않아 감독 대신 작가라는 명함을 들고 돌아왔다. 전시회 소식을 듣고 전시 담당과 체육팀 중 어디서 챙겨야 하냐며 부서 내에서 농담이 오가기도 했다. 체육인이자 예술인으로 인생 제2막을 열어가는 그를 만나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Q. 씨름 외 영역에서 이름이 자주 거론됩니다.

"감독직을 그만두고 청소년 성장을 주제로 한 독립영화 <우리의 마지막 여름>에 씨름선수 출신 체육 교사로 출연했습니다. 그다음에는 악성 골육종 청소년 돕기 '털부자 토크 콘서트'에 나가기도 했고요. 그러다 최근에는 사진전을 열었습니다. 그냥 능력도 없으면서 지인들 요청을 마다 못하고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있습니다. 허허."

이승삼과 붓다의 나라 미얀마 사진여행전

Q. 이번 전시회는 어떤 것이었나요?

"사진작가 라상호 선생님과 대전의 동호인 6명이 미얀마 사진촬영을 가는데 우연히 동행하게 됐습니다. 가서 방해 안 하려고 혼자 다니면서 촬영했는데,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밝은 표정과 눈빛에 푹 빠져들었습니다. 그 사람들 눈 속에서 순수한 마음과 평화가 보이더라고요. 돌아와서 사진이 좋다며 주변에서 전시를 권유하기에 큰맘 먹고 결정했습니다. 지난달 17일부터 30일까지 '이승삼 붓다의 나라 미얀마 사진여행전'이라는 테마로 마산 창동갤러리에서 잘 마쳤어요."

Q. 전시회 반응은 어땠나?

"허허, '뭐 운동하던 놈이 되지도 않는 사진을 잡고 별짓을 다 벌인다' 이런 이야기 들을까 봐 걱정이었는데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다행히 '사진이 뭔가 전달하는 것이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사진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 저로서는 그런 이야기가 최고로 기분이 좋았습니다. 덕분에 자신감을 얻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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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사진여행전에 전시한 작품. / 이승삼 제공

Q. 어떻게 사진을 시작하게 됐나?

"사진 찍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평소에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으면 '구도가 좋다', '느낌이 있다' 이런 이야기를 가끔 들었어요. 또 나이가 들면서 점점 감성적으로 변한 것 같습니다. 여유가 생겨서 그런지 여성 호르몬 분비가 많아져서 그런지, 어느 날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게 됐어요. 전에 꽃이 없었던 것도 아닌데 예쁘다는 생각이 들고 세상이 넓어 보였습니다. 그러다 창동예술촌 1기 수료생으로 디카시와 서양미술사 강연을 들었어요. 그때 창동예술촌 라상호 촌장님도 알게 되고 조금씩 사진을 하는 사람들과 인맥이 형성됐습니다. 그렇게 그들에게 어깨너머로 조금씩 배우고, 그들이 권해주는 책도 읽고, 또 전시회도 다니고, 사진도 찍으면서 보람을 느껴왔어요. 이번 전시회는 생각에도 없는 사고였습니다."

체육인으로서, 예술인으로서 할 일 해나갈 것

Q. 사진과 씨름을 비교하면 어떤가요.

"씨름을 하면서 후회한 적이 없습니다. 정말 게으름 피우지 않고 열심히 했고 행복했어요. 그런데 좋았던 시절은 흘러갔고, 어느새 무대에서 내려와 한 발짝 떨어진 위치에 있습니다. 씨름에서는 은퇴한 백전노장이지만 사진은 이제 시작이고 지금 저는 현역입니다. 제 나이 70∼80까지 열심히 하면서 좋은 작품을 만들며 새로운 보람과 성취감을 느끼고 싶습니다."

Q. 씨름에 대한 미련은 없나요?

"제 인생 전부였기에 미련이 없을 수 없습니다. 사실 감독직을 몇 년 더 할 수 있었지만 후배를 위해 일찍 그만뒀어요. 사업가, 정치인 등 가진 사람들이 욕심이 더 많아 끝까지 그 자리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모습이 너무 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마지막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며 물러나고 싶었어요. 그래서 예상보다 좀 빨리 후배에게 자리를 비워주고 나왔습니다. 지금은 심판위원장 직을 맡고 있어요. 현재 씨름 경기 규칙이 너무 많고 복잡합니다. 그래서 논란과 갈등이 이어졌어요. 6∼7개 문제가 되는 규칙을 개선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경기 복장(씨름 팬츠)도 만들고 80% 정도 진척을 보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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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삼 대한씨름협회 심판위원장. / 유은상 기자

Q. 앞으로의 계획은 어떤가요?

"저는 씨름 덕에 많은 것을 누렸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씨름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후배들은 그렇지가 못합니다. 후배들을 지원하고 양성하는 일에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여력이 된다면 씨름 인기를 부활시키는 데도 작은 힘이지만 돕고 싶어요. 이것이 씨름 선배로서, 체육인으로서의 사회적 책무라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제 시작한 사진을 더 깊이 있게 배우고 깨치고 싶어요. 나만 만족하는 작품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좋은 영향을 주는 그런 작품을 남기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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