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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준생 일기] (4화) 삶을 키우는 취준생 시기

불안·초조함에 몸도 마음도 아프지만
미래 위해 죽도록 노력할 수 있는 기간
열평 남짓 원룸서 자취하며 취업준비
사소한 것들의 소중함 깨닫기도

2017년 07월 10일(월)
이지훈 webmaster@idomin.com

'취준생 일기'는 고단한 취업 전쟁에서 하루하루 불안한 삶을 이어가는 취업준비생 이지훈(26) 씨의 이야기입니다. /편집자 주

마음만으로도 병이 생길 수 있다. 서너 달 전 나는 아무 이유 없이 몹시 아팠다. 감기몸살은 아니었다. 생활비 버는 일에 치여 몸에 무리가 온 것도 아니었다. 그냥 온몸이 떨리는 증상이 계속됐다. 특히 집 밖으로 나가거나 다른 사람의 시선이 느껴질 때 그 정도가 심했다. 정신이 아득하고 시야가 평소 반도 되지 않았다. 편의점에서 계산을 하려고 계산대 앞에 서 있기만 해도 온몸에 땀이 흐르고 팔다리가 떨렸다.

나 자신이 이 정도로 망가져 버렸나 싶어 겁이 났다. 일을 하면서도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혹여나 내가 이상한 상태인 걸 알아버릴까 전전긍긍했다. 마음에 여유도 없었지만, 솔직히 어떤 진단을 받게 될지 무서워 병원에는 가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그저 몸이 피곤하다고만 말했다.

그렇게 2주를 보냈다. 어느샌가 증세가 사라졌다. 왜 아팠는지도, 어떻게 나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다 나았다고 생각한 이후로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편했다. 무언가 '내려놨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역시 마음이 가져다준 병이었구나 싶다.

한 달에 한 번쯤 내 작은 원룸에 오목조목 모아둔 가구를 모두 뒤섞고 다시 배치하는데 땀이 쏙 빠질 정도로 힘을 쏟는다. 겨우 열 평 남짓한 정사각형 방에 무슨 배치가 있겠나 싶겠지만 옮기기 전의 모습이 왜 그렇게 어수선했는지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잘 정리된 때가 있다.

그럴 때면 팔다리가 욱신거려 쉽게 잠들지 못할 정도로 힘들어도 '나의 장소'가 새로워지고 더 살기 좋아진 만큼 마음을 가다듬고 새로울지도 모를 내일을 기대하면서 잠든다. 내가 불평으로 들떠버린 마음을 가다듬는 방식이다. 이렇게라도 마음을 다스리지 않으면 언제 또 아플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는 취준생 시기를 겪어내고 있다.

나이가 제법 들어 삶을 되돌아보았을 때 가장 가치 있고 짜릿하게 떠오를 시기가 아마도 지금 이 취준생 시기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느냐고 수없이 되뇌며 불평의 시기를 보내고 있었던 것 같다. 또래들 사이에선 '이생망'이란 말이 유행이다. 이번 인생은 망했다는 자조적인 표현이다. 누군들 일상이 늘 평온하고 불안이 없는 상태이겠느냐만, 취준생의 마음은 일상적으로 깊이 무너져 있다.

우리 사회가 좀 더 솔직해지면 좋겠다. 요즘 시대에는 쉽게 간과해서는 안 될 '취업준비 기간'이라는 하나의 '생애주기'가 생겼다. 하지만, 사회는 이것을 부정적인 것으로 여기며 하루빨리 해소하려고만 하고 있다. 청년 실업 대책이 주로 고용창출 대책인 것도 이런 이유다. 이런 대처가 외려 지금의 청년 세대에게 취업이 늦어지는 것이 곧 실패나 낙오라는 트라우마를 심어주는 것은 아닐까.

물론 청년의 노력을 좀먹는 구조적 모순은 해결되어야 한다. 그러나 원하는 삶에 가까워지도록 한번 죽도록 노력해보는 게 취준생 시기다. 쌀값이 생각보다 싸지만, 그만큼 일찍 떨어지는 것을 알게 되고, 어머니가 가져다주는 김치가 마트에서 사려면 얼마일지 신경이 쓰이며, 아무것도 가진 게 없을 때 나의 본 모습은 어떤지 돌아보고, 자꾸만 튀어나오는 부정적인 모습을 다스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기도 한다. 이런 시간이 그저 '빨리 지나가거나 혹은 없으면 좋을 시기'로 인식된다면 지금, 우리의 오늘은 어떻게 정의되어야 좋을까.

/시민기자 이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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