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대·창원대 등 지역 주요 대학
익명으로 마음 전하는 페이지 활성화
원하지 않는 관심·사생활 침해 우려도

요즘 익명을 내세운 페이스북 커뮤니티 페이지가 유행이다. 대부분 대학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경남대, 경상대, 인제대, 창원대 등 경남 주요 대학도 하나씩은 다 있다. 주로 '○○대학교 대신 전해드립니다' 식의 이름이 많다. 경상대는 '경상대 신문고'를 쓴다. 좋아요 수가 1만에서 2만 명이다. 이 정도면 대부분 대학생이 페이지 게시물을 본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런 페이지는 말 그대로 익명으로 글을 올려주는 곳이다. 지갑이나 신분증을 찾아가라거나 같이 공부하거나 여행갈 사람을 구하는 생활 제보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요즘 부쩍 익명 고백 글이 늘었다. 어디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가 잘생겼는데 여자(남자) 친구가 있는지 알고 싶다, 언제 어디를 걸어가던 이가 정말 마음에 든다며 옷차림과 생김새를 설명하고 그를 찾아달라고 부탁하는 식이다. 직접 말할 용기가 없으니 익명 페이지에라도 올렸겠다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고백 글에 거론되는 대상이 댓글을 통해 강제로 공개되는 일이 많다. 원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엄청나게 쏟아지는 관심이 부담스러워 페이스북 계정을 비공개로 돌리는 이들도 있다. 사생활 침해가 심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도내 익명 고백 페이지를 중심으로 실태를 알아보자.

◇익명 고백 진심일까

'○○ 방향으로 매일 7시쯤 빨간 자전거 타고 가시는 분 연락처가 너무 알고 싶어요. 익명으로 부탁드립니다'.

경남지역 페이스북 익명 페이지 3곳에 2주 동안 올라온 게시물 중 이런 익명 고백은 모두 244건이었다. 하루에 17건 정도 글이 올라온 셈이다. 이런 고백이 효과가 있을까 싶지만 실제 만남이 이뤄진 사례도 있다고 한다.

페이스북 페이지 '진주 익명 고백' 관리자는 "익명 고백을 통해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다며 감사하다고 기프티콘을 선물하는 사람들도 있고, 감사 인사를 하는 이들도 여럿 있다"고 했다. '창원대 대신 말해 드립니다' 페이스북 페이지 관리자 역시 "고백 글에 의한 만남은 어느 정도 있다고 판단된다"고 했다.

전국적으로 화제가 된 사례도 있다. 지난해 9월 '고려대 대나무숲'을 통해 한 남녀가 만난 이야기다. 한 카페 아르바이트생이었던 ㄱ 씨가 손님 ㄴ 씨에게 호감을 느끼고 '고려대 대나무숲'에 익명 고백 글을 올렸다. 담담하면서도 좋아하는 사람을 향한 그리움이 묻어나는 그의 글은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ㄴ 씨도 이 글을 본 뒤 답장을 했다. 둘은 한 달 뒤인 10월 그 카페에서 다시 만났고, 11월에는 페이지를 통해 '응원해 주신 모든 분에게 고개 숙여 인사드린다. 모두 행복하셨으면 한다'는 글도 올렸다.

하지만 모든 고백에 이 정도 진심이 담기지는 않았을 테다. 경남대 심리학과 고재홍 교수는 이렇게 진단했다.

"대개 속마음은 자신과 친밀한 사람에게만 보인다. 자신의 속마음을 타인에게 보여주는 행위를 '자기 공개'라고 한다. 그런데 창피하거나 부끄러운 내용은 타인이 알았을 때 자신의 약점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공개하기를 꺼리고 직접 이야기하지 못한다. 자기가 누구인지 드러나지 않으면 그러한 부담감에서 해방된다. 익명이 보장되는 공간에서는 그러한 말을 하기가 쉬워지는 것이다. 익명 페이지를 이용해 고백을 한다면 그것이 성사되지 않더라도 정신 건강에는 도움이 되겠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익명성이 보장되는 공간이기에 사람들이 그것을 마냥 진실되게 보지는 않는다."

◇고백 대상을 향한 신상 털기

익명 고백 페이지를 보는 이들은 고백자가 첫눈에 반한 그가 대체 누구인지 궁금해 한다. 고백 글에는 대상자 인상착의는 기본이고 무슨 수업을 듣는지,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도 적혀 있다. 학과나 학번, 이름이 공개되기도 하는 등 꽤 구체적이다.

"오늘 7시 35분쯤에 ○○번 버스에 하차하는 입구 두 번째 줄에 앉으신 여성분 찾아요. ○○ 치마에 ○○셔츠 학교였는데 어디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색 가방끈 있는 가방에 인형 두 개 달렸고 한 손에 음료수통 같은 거 가지고 있었어요. 휴대전화기는 아이폰처럼 보였어요." (진주 익명 고백)

"○○○에 여자 알바생 아시는 분 태그해주세요. 엄청 잘 웃으시고 머리 염색하셨고 키가 크셨습니다!!"(진주 익명 고백)

"○○○에서 일했었던 ○○○씨? 명찰보고 알았어요, 이름!! 마음에 계속 두고 있었는데 혹시 여자 친구 있으세요?" (창원대 대신 전해 드립니다)

"혹시 ○○학부 ○○○님 남친 없으시면 페메랑 페친 받아주시면 안 되는지…. 보시고 부담스럽지 않으면 꼭 답장 부탁한다고 전해주세요." (경남대 대신 말해 드립니다)

이런 글을 본 '페이스북 친구'들이 고백 대상이라고 생각되는 주변 친구의 이름을 댓글난에 '태그'한다. 이 이름을 통해 개인 페이지로 이동할 수 있다.

누군가 나를 좋아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기분 좋은 일이다. 하지만,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갑자기 대중에게 개인 페이지가 노출되는 일은 불쾌한 경험이다. 이 때문에 연세대, 성균관대, 한양대 등 서울지역 대학 익명 페이지는 고백을 통해 누군가를 지목해서 찾아달라는 '흥신소' 제보를 금지하고 있다. '한양대 대나무숲' 페이지 관리자는 "우리는 이성과 관련된 고민 글은 올릴 수 있지만 흥신성 제보는 올리지 않는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김형중 교수는 익명 고백을 할 때 어느 정도 수준까지 정보를 유출하는지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피해 당사자가 개인정보 유출에 해당이 된다고 판단하면 고소를 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 처벌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관련 사례에 대한 법은 융통성 있게 적용되기에 처벌 기준이 명확히 정해져 있진 않다. 개인정보 유출 여부를 판단하기보다는 익명 고백 글로 인해 상대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하며 항상 신중해야 한다.”

※ 본 취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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