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조차 몸매 강조받는 현실
일상에 뿌리 깊이 박힌 고정관념
성평등 의미 알리기 쉽지 않아

'페미니즘 열풍'을 넘어 '페미니즘 유행'이란 말까지 나오고 있지만, 아직 한국 사회에서 여성주의를 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성차별이 일상에 공기처럼 스며들어 있고, 젠더 문제를 터놓고 이야기하는 게 여전히 낯선 문화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성평등'의 의미를 제대로 아는 페미니스트로 자라나는 것, 그리고 페미니스트를 키워내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서울 변두리 마을에서 세 아이를 키우며 가끔 공연대본도 쓰는 극작가 정가람 씨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이상한 반 번호

작년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몇 번이냐 물었더니 키 번호는 7번, 그냥 번호는 60번이라고 한다. 몇 번이고 다시 물었다. 60번이 아니라 17번이 아니냐고. 아이는 물을 때마다 60번이라 답했다. 이유를 알아보니 남학생은 1번부터, 여학생은 51번부터 시작한단다! 이해가 되지 않아 주위를 둘러보니 거의 모든 학교가 언젠가부터 남학생은 1번부터, 여학생은 51번부터라는 이상한 번호 체계를 쓰고 있었다. 이유는 행정시스템의 편의를 위함이란다.

23명 정원에 60번인 아이의 번호.

1985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한 내 번호는 38번이었다. 아마도 가나다순이었고, 남학생에게 번호를 준 후, 여학생으로 넘어와 '정'가인 나는 30번대 후반부에 자리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남학생이 앞, 여학생이 뒷자리 번호를 차지하고 있다. 몇몇 학교는 남녀 구분없이 가나다순 혹은 생년월일 순으로 번호를 정한다고 하지만 대다수 학교는 여전히 여학생들을 51번부터 줄 세우고 있다.

아이의 학급번호에 부당함을 따지고 있자니 태어나 처음 부여받는 주민번호에서부터 남자는 1, 여자는 2 (이제는 3과 4)를 받는다. 주민번호부터 이런 순서를 쓰니 대부분 학교가 20명 남짓의 학생들이 있는 반에 60번이라는 번호를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건 아닐까?

◇왜 뽀로로는 비행기를 타고, 루피는 요리만 할까?

아직도 선명하게 떠오르는데, 어릴적 만화 <독수리오형제>에서 여자는 4호 한 명뿐이었다. 30년 세월이 흘렀지만 아이들 만화에 여성 캐릭터는 한 명, 많아야 둘이다. 시즌을 거듭할 때마다 등장인물이 늘어나는 <뽀로로>인데 여전히 여성 캐릭터는 루피와 페티뿐이다. <타요>와 <미니특공대>, <터닝메카드> 등 다른 만화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뽀로로'는 시즌을 거듭해 비행기를 타고 하늘도 날고 에디는 뚝딱뚝딱 비행기며 로봇이며 만들어내는데 루피는 시즌 6이 되도록 요리만 한다. 페티는 그저 뽀로로와 같은 펭귄일 뿐, 별다른 특기와 에피소드 없이 그림으로 시즌 6까지 왔다. <타요>의 네 캐릭터 중 유일한 여성 캐릭터인 엠버도 구조 현장으로 출동하지만 응급환자를 돌보는 일만 거의 맡는다. 다른 캐릭터물도 대동소이하다.

유아 그림책에 실린 너무나 전형적인 성역할. 그림만 보면 엄마가 집에서 커피 마시며 전화만 하는 줄 알겠다.

고정된 성역할 캐릭터물이 방영되는 EBS보다 차라리 디즈니가 낫다. <겨울왕국>, <모아나> 모두 여성 캐릭터가 '왕자님' 없이 위기를 극복하고 당당히 전 세계 어린이의 사랑을 받고 있다. 디즈니 채널에서 방영되는 만화에서도 여성 캐릭터를 자주 만날 수 있다. <꼬마의사 맥스터핀스>는 밖에서 일하는 엄마, 집안 살림을 하는 아빠, 그리고 장난감을 고치며 노는 여성캐릭터 맥스터핀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EBS 프로를 들여다보면 여전히 아빠는 출근을 하고 집안일은 엄마가, 그리고 시즌 6이 되도록 루피는 요리만 한다.

저 많은 캐리터 중 여성 캐릭터는 둘뿐이다. 그마저도 요리만 하는 루피. 하늘을 나는 건 뽀로로, 비행기를 만드는 건 에디의 몫.

◇뚱뚱한 여성의 자리는 없는가

1년 사이 부쩍 자란 아이들의 여름옷을 사려고 인터넷 쇼핑몰을 찾았다. 아홉 살이 되면서 주니어 코너에서 옷을 고르는 첫째. 과연 아이들 옷이 맞나 화들짝 놀랐다. 5학년만 되어도 키가 160cm가 되어 엄마와 옷을 같이 입는다는 얘기를 듣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 어린 아이들의 옷을 파는 사이트인데 화면 속 아이들은 하나같이 마른 체형에 어깨가 드러나는 옷과 짧은 치마를 입고 매끈한 다리를 드러내며 오묘한 표정을 짓고 있다.

천진한 아이들의 얼굴, 통통한 아이들의 몸은 찾아보기 어렵다. 얼굴만 가리면 44사이즈만 파는 성인복 사이트라고 해도 믿을 정도이다. 성평등은커녕 여성의 상품화가 아동복 시장까지 점령해 있다. 그것도 예쁘고 마른 여성만을 상품화하여.

시원한 민소매와 짧은 반바지를 사려던 계획을 나도 모르게 철회하고 첫째의 옷은 5부, 7부 옷으로 고르고, 원피스 안에 입을 속반바지도 담았다. 또래보다 통통한 첫째의 체형을 커버하며 속살을 최대한 감출 수 있는 옷으로. 그러나 둘째와 셋째는 무조건 시원한 옷을 고른다. 첫째만큼 셋째도 배가 볼록하게 나왔는데 말이다.

양성 평등 교육의 안내가 실린 가통에선 "생물학적 차이를 사회 문화적 차이로 직결시키지 않으며"라고 또박또박 써놓았건만 '예쁘고 조신한 딸', '멋있고 씩씩한 아들'의 상이 쉬 사라지지 않는다.

◇여자애 방이 이게 뭐야? 사내자식이 울고 그래!

성평등과 거리가 먼 환경 탓을 하다 문득 우리 집을 들여다보았다. 나이 탓도 있겠지만 식사 준비를 할 때면 무의식적으로 아홉 살 첫째 딸아이를 부르고 마당의 잡초를 뽑을 땐 일곱 살 둘째 아들을 부른다. 똑같이 어지럽혀진 방인데도 "여자애 방이 이게 뭐니? 여자애가 이렇게 더러워서 어떡해!"라는 말이 먼저 나온다. 삼남매가 싸우다 울음이 터지면 "사내자식이 울고 그래! 뚝!"이라는 말도 별 생각 없이 한다. 무려 2017년에 '성평등'이라는 말에 꽤 집중한다는 내가 말이다.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며 최근엔 문화예술협동조합의 대표로 일을 하는 엄마이지만 아이들 눈엔 엄마는 집안일을 하거나 집에서 쉬는 사람, 아빠는 회사에 출근을 하고 집에서도 글을 쓰고 책을 읽는 사람으로 인식되어 있다. 정확하게 엄마가 하는 집안일이 뭔지 물어보았지만 아이들은 그냥 빨래, 요리 정도만 대답할 뿐 집안일의 실체를 모르는 듯했다. 집안일로 이뤄진 집에 사는 아이들인데도 말이다. (사실 남편도 제대로 모르는 집안일이다.)

집 밖에서 하는 일만큼 집안에서 하는 일도 중요하고 두 일이 균형을 이루어야만 가족 모두가 잘살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을 해보지만 쉽지가 않다. 나부터도 결혼 9년차인데 직업란에 '주부'라고 쓴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리고 우리 집 가장은 '아빠'라고 아이들에게 말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부부싸움을 하면 늘 엄마가 아빠에게 혼나면서 끝이 난다고 아이들은 묘사한다. 생활에서 이런 부분들을 발견할 때마다 이길 수 없는 싸움 앞에 선 기분이다.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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