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 벗어난 성 인식 공직자들 활개
더구나 이들을 두둔하는 현상이라니

사람의 상상력은 죄가 없다. 성에 눈뜬 남자 아이가 임신한 여자 교사에게 뭘 상상하든 그 권리는 보장되어야 한다. 자신만 알고 있는 한, 머릿속 생각이 건전하거나 남 보기 좋아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런 판타지는 남자학교에서 남자 교사들이 아이들 잠을 깨우기 위해 입에 올리는 음담패설에 등장하는 부류여서 새로울 것도 없고 진부하기만 하다. 좋은 교사를 만나 성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것이 어린 탁현민의 불운이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 그걸 입 밖으로 드러내는 건 전혀 다른 일이다. 자랑이라고 떠벌리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못된 짓일 텐데 자손만대에 남을 활자에다 박을 정도의 배짱이라면 혐오스럽기까지 하다. 그래도 여기까지만 했어도 빠져나갈 구멍은 있었을지 모르며, 공직 사퇴 요구까지는 안 나왔을 수도 있다. 하나 한 여성을 '공유'했다는 발언은 사고가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사람이라면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며, 공동체가 용납할 수 있는 경계를 넘어선 것이다.

나는 사람에게 공유라는 말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내게 익숙한 공유는 화학 시간에 배운 원소끼리의 공유결합밖에 없다. 최근엔 대안 경제로서 공유경제라는 말도 나왔다. 탁현민은 원소나 경제 같은 비인격체 사물이나 개념을 여성과 나란히 놓은 것이다.

사람을 성적으로 공유하는 자들을 집단 강간범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탁현민의 행동을 여성 비하니 여성의 성적 대상화니 하며 점잖게 말하지만 그가 과분한 대접을 받아야 할 까닭이 없다. 그는 그냥 집단강간을 기획하고 추진한 자이다. 탁현민은 업계 용어를 아주 정확하게 썼다. 여느 집단 강간범들도 그렇게 말한다. 놀이 삼아 여럿이서 함께 공유했을 뿐이라고. 걔도 즐겼을 거라고. 사람을 공유하는 게 얼마나 몹쓸 짓인지 모르는 자가 공직에 있음을 봐줄 수 없는 건 당연하다.

미성년자 시절의 일인 건 참작하더라도 성인이 되어 떳떳하게 공표한 죄의식 빈곤마저 감내해줄 수는 없다. 강간모의범에 그쳤던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에 비해 성공범인 탁현민은 죄질에서 훨씬 윗길임이 분명하다. 이 나라가 아무리 막 나갈지언정 강간 교사 전력을 뉘우치지 않는 자를 옹호하는 곳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이 단순한 이치를 깨닫는 데 에너지를 낭비하는 중이다.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는 인사들 중 기를 쓰고 그를 옹호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걸 보면, 탁현민보다 그를 지지하는 자들의 존재가 사회문제로서 더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여성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나라는 탁현민이나 홍준표, 이들을 두둔하는 사람들을 수없이 양산한다. 심지어 여성마저 여기에 버젓이 합류한다. 이언주 국회의원은 학교 급식소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을 "그냥 밥하는 아줌마들"이라고 불렀다. 밥 짓는 노동과 비정규직의 이중 비하는 '아줌마' 표현을 만나 여성 비하라는 장강으로 수렴된다. 이언주는 정치하는 자신과 급식소에서 밥하는 아줌마가 다른 존재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밥 노동은 여성이 전담하다시피하는 데다 여성 고유의 일로 치부된다는 점에서 이언주의 악담은 전체 여성을 깔아뭉갠 것이기도 하다. 정치하는 이언주라고 해서 몸소 밥 노동을 한 번도 안 해 보신 적은 없을 것이다.

여성 스스로 자신이 속한 집단을 모독하고 업신여기는 일이 벌어지는 일이야말로 중증질환에 이른 이 나라의 성차별 수준을 말해준다. 이 때문에 자가당착의 이언주가 탁현민 부류보다 더 심각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공인으로서도 이언주는 탁현민에 비교될 수 없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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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언주를 '언년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언년이는 봉건시대에 밥 노동을 비롯한 가사노동을 전담한 여성을 멸시하며 불렀던 이름이다. 신분 차별과 성차별을 포괄하는 이 호칭 역시 이언주만 욕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여성을 차별하는 인식으로서, 여성을 차별하는 여성을 비난하는 이 착종과 전도, 자기모순이 횡행하는 사회야말로 탁현민, 홍준표, 이언주 같은 특이한 성인식의 소유자가 활개치는 근본 토양일진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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