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입자·추출방식·물 온도따라 맛 달라
단순 음료 아닌 기술발전 상징 과학식품

달콤 쌉싸름한 커피는 전 세계적으로 널리 소비되고 있는 음료 중의 하나다. 세계 커피 시장은 약 2600조 원에 이르며, 코카콜라 연간 매출액 20조 원과 비교해 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커피를 즐기는지 짐작할 수 있다. 커피 열매가 전혀 생산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도 커피 소비가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다. 2014년부터 연평균 9.3%씩 성장해 2016년에는 커피 시장이 6조 4000억 원을 넘어섰고, 성인 한 명이 연간 377잔의 커피를 마신다고 한다. 필자도 하루에 한두 잔의 커피를 서슴없이 마시고 있다. 일상에서 흔하게 접하는 커피 한 잔에는 음료 이상의 건강의료, 다양한 커피 추출기술, 과학과 상업적 혁신을 맺어주는 매개 역할 등 과학기술적으로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커피의 대표적인 효과는 카페인에 의한 각성 효과이지만, 이외에 클로로겐산, 트리고넬리 카베올과 카페스톨 등 수백 가지의 성분이 다양한 생리적 효과를 내고 있다. 지금까지 보고된 연구결과에 의하면 커피는 심혈관질환ㆍ당뇨병ㆍ간질환ㆍ근감소증 등을 예방하고 수명연장에 효과를 발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6년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25년 만에 커피를 발암 물질에서 제외하고, 오히려 자궁암ㆍ전립선암 등 암에 걸릴 위험성을 줄여주는 것으로 발표했다. 커피 생두의 로스팅(볶는 것) 시간에 따른 커피의 항산화와 항염증 효과 분석 등과 같이 커피의 의료효과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가 증가하고 있고, 긍정적 연구결과가 현대인의 커피 소비를 더 부추기고 있다.

한편, 동일한 품종의 커피 열매일지라도 원두의 수분함량, 로스팅 시간, 분쇄된 커피 입자의 크기, 커피 추출방식과 압력, 물과 커피가 접촉하는 시간과 물의 온도에 따라 각양각색의 커피 맛을 낼 수 있다. 그야말로 각 공정의 조건 변화를 통해 각자의 기호에 맞게 얼마든지 다양한 커피를 제조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원두에서 커피가 만들어지는 각 공정에 대한 과학기술적 이해, 분석 그리고 기계적 장치들이 연구·개발되고 있다. 심지어 '커피과학'이라는 용어가 등장할 정도로 최상의 커피 맛을 내기 위한 과학적 접근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예를 들어, 생두의 수분함량이 10% 미만이면 커피의 향이 떨어진다든지, 커피머신의 추출 압력이 낮아 커피와 물이 접촉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쓴맛이 강해진다든지, 분쇄된 커피의 입자가 굵으면 물에 닿는 면적이 작아 신맛이 추출된다든지 다양한 조건에 따른 커피 추출기술이 연구되고 있다.

혹자는 커피 한 잔의 여유로움을 즐기는데 웬 과학기술이 필요하냐고 핀잔할 수 있다. 커피가 주는 향긋한 내음과 정신적 여유로움만으로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커피는 과학과 혁신을 이끄는 태생적인 운명이 있다. 지적활동을 자극하는 커피의 각성효과 때문에, 17세기 유럽에서 커피는 성직자ㆍ작가ㆍ과학자 등 이른바 지식인 계층을 상징하는 음료였다. 당시 유럽의 '커피하우스'는 단순히 음료를 파는 곳이 아니라, 과학자ㆍ기업가ㆍ투자자들이 모여 뉴스와 지식을 교류하면서 다양한 토론과 비즈니스가 거래되는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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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경제연구소 김근영 연구원의 보고서에 의하면, 런던의 커피하우스에서 종종 열렸던 자연과학 강의는 이후 산업혁명을 가능하게 만든 시대적 분위기를 제공했다고 한다. 오늘날에도 프로젝트 미팅, 학술회의와 같은 모임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커피는 과학기술 발전을 상징하는 음료라 할 수 있다.

커피 한 잔에는 건강의료, 추출기술 등의 다양한 과학기술적 의미가 담겨 있다. 그리고, '깨어 정신을 차린다' 혹은 '깨달아 안다'라는 커피의 각성효과에는 과학기술자들이 지녀야 할 혁신의 덕목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오늘 필자가 마주한 커피에는 더 진한 향기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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