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청구조에 임금 들쑥날쑥 장시간 노동·산재율도 높아
개인마주제 전환 이후 외주화돼 조교사가 고용…마사회 "원-하청 아냐"

"12시간 가까이 일하지만, 월급이 일정치 않아요. 기본급에다 조교사가 성과급을 알아서 정해 주기 때문에 조교사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게 됩니다."

렛츠런파크 부산경남 소속 마필관리사 ㄱ(39) 씨는 10년 이상 이곳에서 일하고 있지만, 늘 불안한 마음을 안고 산다. 임금이 조교사에 따라 좌지우지되기 때문이다.

그는 새벽 4시에 일어나 4시 30분까지 경마장에 도착해서, 5시부터 일을 시작한다. 8명이 한 마방에서 일하고 있다. 30마리가 넘는 말에 먹이를 주고, 물을 채워 넣고 똥으로 어지럽혀진 마방을 치우며 하루 일과를 연다. 5시 30분에는 말을 타며 말 훈련을 한다.

ㄱ 씨를 포함해 2~3명이 말을 탄다. 남은 마필관리사는 마방을 치운다. 서너 시간가량 7~8마리 말을 타고 돌아오면, 경주로를 정비하는 시간에 잠깐 쉬었다가 다시 말에게 먹이를 주고, 수영 훈련을 시키면 오전이 훌쩍 지난다. 말을 씻기고, 닦기고 하다 보면 점심때. 오후에 다시 마방을 치우고, 말 워킹머신 운동을 시키고, 치료하고 샤워까지 시키고 나면 오후 4시다.

그는 "하루 일이 많다. 보통 하루 11시간 근무다. 마방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비슷하다. 1일 숨진 마필관리사는 업무량이 더 많아 하루 최대 20시간까지 일했다고 들었다. 당직에, 야간 근무까지 있으면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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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원식(맨 오른쪽) 원내대표 등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관계자들과 마필관리사 유가족,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회원들이 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마필관리사 2명의 죽음과 관련해 한국마사회 경영진 퇴진과 렛츠런파크 부산경남 경영진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매일 힘들게 일하는 시간은 비슷하지만, 임금은 기준 없이 들쭉날쭉하다. 그는 "최저임금 135만 2000원에, 당직비, 성과급 등이 더해진다. 당직비는 하루 3만 원이고, 성과급은 조교사에 따라 달라진다. 월급 책정이 매달 다르다. 말 성적이 좋더라도, 조교사가 주고 싶은 대로 준다. 그러다 보니 마필관리사끼리 조교사에게 잘 보이려고 경쟁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문제는 고용노동부 근로감독에서도 드러났다. 노동부는 최근 한 달간 렛츠런파크 부산경남 근로감독을 벌여 총 근로시간 위반, 통상임금 착오로 미지급된 임금 등을 적발했다.

한국마사회가 운영하는 실외 경마장 3곳에서 마필관리사 848명(부산·경남 265명, 서울 476명, 제주 107명)이 일하고 있다.

전국공공운수노조는 마사회가 마필관리사 적정 인원을 3.16마리당 한 명으로 보고 있지만, 부산·경남은 4.5마리를 관리하고 있다고 전했다. 마필관리사 산재율도 지난해 13.98%로, 전국 평균 재해율 0.52%보다 25배나 높다.

말을 돌보고 훈련하다 말에 밟히거나 떨어지는 사고가 잦지만, 마사회 마방 대부 심사 평가 요소에 산재율이 들어가기에 은폐되기 일쑤라고도 했다.

마필관리사는 1993년 개인마주제로 전환되면서, 이른바 '하청'에 가까운 형태로 바뀌었다. 경마 시행처인 마사회에 고용됐던 인력이 개인마주제로 바뀌면서 외부화된 것이다.

마필관리사는 마방을 임대받아 경주마를 관리하는 자영업자인 조교사와 고용 계약을 맺고 일을 하게 됐다. 조교사는 마주로부터 받은 위탁관리비, 경마상금 중 일부를 마필관리사에게 지급하는 형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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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필관리사 자료사진./연합뉴스

노조는 조교사가 사용자이지만, 한국마사회가 경마장 시설 유지관리, 경마 시행관리 등 전반에 관여하며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사실상 '원청'이라는 입장이다. 마필관리 업무는 마사회의 주요한 업무이자 상시 업무이기에 간접고용이 아니라 직접 고용 형태로 바꿔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마사회는 원청, 하청 관계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마사회는 "말 관리사는 마주로부터 위탁받은 경주마의 훈련과 관리를 위해 조교사에게 고용된 노동자다. 타 프로 스포츠에 비유하면, 마필관리사는 감독 밑에서 일하는 트레이너다. 마사회와 조교사·관리사·기수는 경기 주최 측과 코칭 스탭·선수이므로 원청-하청 관계에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또, 직접 고용에 대해서도 "경마경기를 주최하는 마사회가 관리사를 직접 고용해 각 조교사에게 파견하면, 이는 파견법상 불법 파견에 해당한다"며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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