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장소 없어 담벼락 철거, 망치 수작업·폐기물 26포대
확트인 마당서 음악회 개최

제가 통영에 와서 서피랑 99계단 옆에 집을 얻고 2016년 1월 서피랑공작소를 열면서 주인 어르신께 미리 말씀드렸던 것이 있습니다.

"어르신 어쩌면 제가 벽을 없앨지도 모릅니다."

"필요하면 그렇게 하게~"

"그럼 부수게 되면 미리 말씀드리겠습니더~"

흔쾌히 허락을 해주셔서 기뻐했더랬지요. 근데 시간은 흘러가는데 벽을 부수는 것을 시작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마당 안을 예쁘게 정리하고 난 후에 벽을 부수려고 했는데, 마당이 도무지 정리가 안 되는 겁니다. 내부가 엉망인 채로는 차마 벽을 부술 수 없었던 거지요.

▲ 서피랑공작소 벽을 허무는 통영시 명정동 건강위원회의 강장모 위원장.

그러다가 어느새 10월이 다가왔습니다. 제가 통영에 오기 전에 3년 동안 창원에서 진행하던 음악회가 있었습니다. 3회까지 진행한 도원아트존 10월애(愛)음악회입니다.

이제 제가 통영으로 왔기에 음악회를 통영으로 가지고 오려고 기획을 하는 중이었지요. 제가 무엇을 하든 늘 후원과 지원을 아끼지 않으시는 경남문화예술단 꿈앤꾼 김도연 단장님께 의논을 했습니다. 그렇게 10월 26일로 음악회 날짜가 정해졌습니다. 4회째부터는 서피랑10월애(愛)음악회로 명칭을 바꿔서 새롭게 준비를 했습니다.

그런데 음악회 날짜는 점점 다가오는데 공연을 할 장소가 마땅치 않았습니다. 음악회를 하면서 될 수 있으면 99계단을 부각시키면서도 전체적으로 느낌이 좋은 장소를 찾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발을 동동 구르며 고민을 하다가 결국 서피랑공작소의 벽을 부수고 마당에서 음악회를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주인 어르신께 전화를 드려 재차 허락을 받았습니다.

근데 제가 막상 벽을 부수려고 하니 이런 일을 해본 적이 경험이 없는 저로서는 정말 막막했습니다. 당시에 제가 갖고 있던 도구라고는 달랑 망치 하나. 그래서 벽을 망치로 몇 번 툭툭 쳐보니 일부가 부서지기에 '아~이렇게 부수면 되겠구나'하고 생각하면서 벽을 조금씩 깨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생각을 해보니 정말 무모하기 그지없는 발상이었지요. 며칠을 해도 일에 진척이 없었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벽이 아주 단단했던 거지요. 조그마한 망치로는 어림도 없었던 겁니다. 다른 데서 음악회를 해야 하나 다시 걱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간절히 하고자 하면 길이 열린다는 말이 맞기는 맞나 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서피랑 정상에서 서피랑사생대회가 열렸기에 겸사겸사 방문을 했다가 명정동 동장님과 사무장님께 벽을 부수기로 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서피랑지기 이장원 씨.

"멀쩡한 벽을 만다꼬 부수노? 고마 만들어진 데서 하면 되지."

당연한 반응이었습니다. 그렇게 걱정을 하며 시간은 점점 다가가고 애가 타던 어느 날 이른 아침에 전화가 한통 걸려왔습니다. 아는 형님께서 서호시장에 시락국(시래깃국) 먹으러 가자고 하셔서 가서 한참 신나게 먹고 있었습니다. 원조시락국 사장님 아들분이 명정동 건강위원회의 강장모 위원장님이십니다. 그분이 다가오셔서 벽을 허문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하시며 '장원씨, 공작소 벽을 부순다면서? 그거 내가 도와줄게!'라고 하시는 게 아닙니까. 그러고는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각종 공구를 빌리시고 다음 날 바로 일을 시작한다고 하셨습니다. 며칠간 너무 막연했던 저로서는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습니다.

드디어 10월 24일 오후 4시 '서피랑장벽 철거대작전'이 그렇게 시작 되었습니다.

벽이 조금씩 부서질 때마다 제 안에 묵었던 때들도 하나씩 벗겨지는 것 같았습니다. 정말 없애고 싶었던 벽을 없애게 되니 속이 시원하더군요. 기쁨도 잠시, 벽을 부술 때는 다 끝난 줄 알고 좋아했었는데 막상 부수고 나니 부수는 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높이 165㎝, 폭 3m 정도 되는 조그만 벽이었는데 그렇게 많은 폐기물이 나올 줄 꿈에도 몰랐습니다. 큰 폐기물을 폐기물용 포대에 들어가도록 망치로 잘게 부수는 일을 하는데, 손에 물집이 잡혀 터질 지경이었습니다.

그렇게 담은 배가 볼록한 폐기물포대 26개! 강장모 위원장님과 둘이서 사이좋게 그 무거운 포대를 들고 26번을 오르락내리락했습니다. 밥도 못 먹고 4시간 이상을 하다 보니 다리가 후들거리고 정신이 혼미하더군요. 나중에 잘 아시는 분 말씀을 들으니 26포대를 50포대로 나눠서 담아야 하는 데 우리는 무식하게 26포대로 끝내려 했던 거였습니다.

벽을 허물고 개방 공간으로 꾸민 서피랑공작소.

그렇게 마무리가 되고 서피랑의 장벽은 없어졌습니다. 다음날 벽이 사라진 걸 새까맣게 잊고 평소처럼 대문만 잠그고 나가다가 이상해서 보니 벽이 없더군요. 습관이 그래서 무서운가 봅니다. 저는 놀래서 부랴부랴 들어가 다시 문단속을 하고서야 나갈 수 있었지요. 그리고 이런 일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 뼈저리게 와닿았습니다. 무리하게 작업을 한 탓에 제 손은 숟가락을 잡지 못할 정도로 부어서 통증이 심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벽이 없어지니 너무나 기뻐서 미소가 절로 지어졌습니다. 그렇게 서피랑 시월애 음악회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서피랑음악회 이야기는 다음 편에 전하겠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서피랑장벽을 없애는데, 도움을 주신 강장모 위원장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렇게 서피랑공작소는 닫힌 공간에서 열린 공간으로 거듭났습니다. 벽을 허문 서피랑공작소로 놀러 오세요. 서피랑을 만나면 행복해집니다.

/시민기자 이장원(서피랑지기)

※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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