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폭염·가뭄 현장을 가다]양식장 어민 무더위와 사투
때 이른 '고수온 현상'에 거제·통영지역 노심초사
산소 공급 등 임시방편뿐

"저놈들이 힘없이 주인만 보고 있는데…. 그런데 해 줄 게 없어서 애가 탑니다."

거제시 거제면 법동리 아지랑마을 앞바다에서 가두리 양식을 하는 박정권(45) 씨 하소연이다.

남해안 일대에 고수온 경보가 내려지면서 양식 어민들이 사투를 벌이고 있다. 박 씨는 쥐치와 돌돔 80만 마리를 키우고 있다.

이곳 어장은 7일 오후 2시 최고수온이 28.3도를 넘어섰다. 8일에도 오전부터 따가운 햇볕이 쏟아지면서 수온은 27도를 향해 오르고 있었다.

쥐치는 양식 어류 중에서 고수온에 가장 취약한 어종으로 28도 이상 온도가 지속하면 폐사한다.

양식장 쥐치는 대부분 활력을 잃고 그늘이 드리운 부표 아래 모여 있거나, 그물 벽을 따라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나마 상태가 양호한 놈들도 색깔이 흰색으로 변해 있었다.

8일 오전부터 따가운 햇볕이 내리쬐는 가운데 거제시 거제면 법동리 아지랑마을 앞바다에서 해상 가두리 양식장을 하는 박정권 씨가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쥐치의 상태를 살피고 있다. /유은상 기자

박 씨는 "상태가 안 좋으면 흰색이 됐다가 다시 검게 변해요. 저기 부표 아래 있는 놈들은 못 움직이잖아요. 가망이 없어요. 이대로 계속 가면 며칠 못 버틸 것 같아요."

기계장치를 통해 산소를 공급해주고, 활력강화제 위주의 사료를 주고 있지만 임시방편에 불과하다고 했다. 고작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밤낮없이 상태를 관찰하는 것뿐이라는 박 씨는 피로에 지쳐 오른쪽 눈 혈관이 터져 빨갛게 충혈돼 있었다.

"외국인 노동자 한 명과 같이 일을 하는데 해가 지면 퇴근을 하죠. 지난 주말 이후 저 혼자서 어장막에서 지냅니다. 계속 상태를 체크하고 신경을 쓰다 보니 힘드네요. 사람도 지치는 데 물고기는 어떻겠어요."

박 씨가 걱정하는 것은 올해 고수온 현상이 지난해보다 일찍 찾아왔기 때문에 더 오래갈 것 같다는 전망이다.

"20년 고기를 키웠는데 고수온 현상은 지난해 20만 마리가 폐사하면서 처음 알았어요. 고생은 고생대로 했는데, 큰 피해를 보면서 그 허탈감에서 벗어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금전적인 피해도 그렇지만 자식 같은 고기들이 죽어 나가는 것은 말로 못하죠. 매일 살얼음판을 걷는 느낌입니다. 운에 맡길 수밖에 없다는 것과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게 너무 무섭네요. 물고기들에게 매일 잘 버텨 달라고 부탁을 합니다"라며 허탈한 웃음을 보였다.

고수온 피해를 막고자 안간힘을 쓰는 곳은 장소만 달랐지 육상양식장도 마찬가지다.

거제시 남부면 저구마을 육상양식장에서 광어 6만 마리를 키우는 최재봉 씨 또한 근심스러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최 씨는 "태풍이라도 왔으면 할 정도입니다. 장마 때에도 비 오는 날이 적고 이상기온이 계속되다 보니 지난해보다 더 수온이 올라갈 것 같습니다"며 "그나마 광어는 쥐치나 강도다리보다 고수온에 잘 견디지만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습니다"고 말했다.

최 씨 또한 산소 공급과 활력강화제 공급, 사료량 축소로 위기를 넘기고 있다. 그는 "그나마 산소 공급이 다소 효과가 있습니다. 액화 산소 비용이 우리는 한 달에 200만 원 정도로 견딜 만하지만 해상 양식장은 수천만 원으로 부담스러워 하죠"라며 "도와 시에서 산소탱크 설치는 지원하지만 액화산소 비용은 지원이 안 됩니다. 앞으로 매년 고수온 현상이 지속할 가능성이 큰데, 경보 기간에는 경상북도처럼 일부 지원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하소연했다.

통영 지역 또한 고수온 피해 사례는 접수되지 않았지만 어민들은 크게 긴장하고 있다.

통영은 지난해 고수온으로 무려 471만 마리가 폐사해 67억 원 손해를 입었다. 경남도에 따르면 지난해 경남 도내 고수온 피해 규모는 704만 마리(거제 93만 마리, 고성 9만 4000마리, 남해 107만 마리, 하동 22만 마리) 90억 원 정도로 통영 해역 폐사가 대부분이었다.

통영시 가두리 양식장 어업권은 어촌계와 개인 총 305건으로 남해안에서 가장 많다. 여기에 450명 정도 어민이 관련 어업에 종사하고 있다. 우럭이 60% 정도로 가장 많고 참돔, 쥐치, 농어 등 식용 어류 대부분을 양식한다. 통영시 관계자는 "고수온 피해 예방을 위해 현장대응반을 운영하고 있다"며 "어업인들에게 차광막 설치와 먹이 급이 중단, 액화산소 공급 등 고수온기 어장 관리 요령을 반드시 지켜주라고 당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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