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정치'에 대한 볼멘소리가 부쩍 늘어났다. '정치가 바뀌어야 우리의 삶이 달라질 수 있다'는 말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치가 도대체 무엇이며, 우리 생활과 얼마나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엔 적합한 답을 못하는 것 같다.

사실 나 자신도 그 개념을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한다. 정치인이나 국민이 객관적으로 느끼고 해석하는 의미가 가지가지이기 때문이다.

'정치'의 교과서적 의미는 통치자나 정치가가 사회 구성원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거나 통제하고 국가의 정책과 목적을 실현하는 일을 일컫는다. 다시 말해, 인간이 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일반적 규칙을 만들고, 보존하고 수정하는 활동 또는 개인이나 집단이 이익과 권력을 얻거나 늘이고자 사회적으로 교섭하고 정략적으로 활동하는 일이라고 정의한다. 철학자 홉스는 "정치란 주로 질서를 유지하고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존하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치인의 인식은 이와 좀 거리가 있는 듯하다.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의미 부여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다.

한 정치인은 "인간은 관계를 맺고 사는데 그게 다 정치다", "정치란 생물이다"라는 아리송한 말을 한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정치적 상황이란 생물처럼 움직이기 때문에 정치적 상황의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지 못하면 정치생명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경고의 이 말이 어쩐지 불편한 느낌을 준다. 때로는 진실을 외면하고 원칙을 손상할 수도 있다는 말로 들린다.

그러면 국민의 반응은 어떠한가? 애석하게도 불신을 넘어 혐오스러워한다.

시인 최영미의 정치 풍자 시를 보면 낯이 뜨거울 정도다. "'왼손이 하는 일은 반드시 오른손이 알게 하고/ 언론에 보도되지 않으면, 돌 하나도 옮기지 않는 여우들'로 정치인을 그리며 '언제나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장애아동의 손을 잡으며/ 윤기 흐르는 목소리로/ 고통을 말하며/ 너는 어쩜 그렇게 편안할 수 있니?"라고 조롱한다.

정치인의 이중성을 비판하는 쓴소리를 듣노라면 우리 정치가 소명 없이 정치공학에 따라 권력을 좇고 있지는 않은지, 여기에 책임이 빠져 있지는 않은지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된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정치 무관심과 정치 불신, 정치 혐오증의 원인은 도대체 뭘까? 그건 아무래도 '막말 정치', '상호불신'과 '말 바꾸기 논쟁', '정치적 포용력 부족' 그리고 국민에게 각인될 만한 민생법안이나 정책을 선보인 정치인물이 없었다는 것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다 선거 때만 무엇이든 원하면 다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처럼 공약하고 허리를 굽히며 뽑아 달라고 조아리다가 선거가 끝나기 무섭게 언제 그랬냐 싶을 정도로 자세를 바꾸는 태도 또한 한몫했지 싶다. 사정이 이쯤 되니 '그들에게서 배울 것이라고는 분열과 기회주의적인 자세뿐이다'라는 비아냥을 듣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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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 막스 베버가 이르기를 "정치행위는 악마적 힘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라며 "생각이 다른 사람을 강제적으로 끌고 가야 하는 폭력이 정치"라고 힐난했다.

이것이 바로, 타 세력을 포용하고 이해할 줄 아는, 자신과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는 법을 아는 사람을 지도자로 선출해야 하는 이유다. 상생의 정치는 상대를 인정해 존중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앞으론 제발 서로 상생하고 품격 높은 정치시대가 열리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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