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X, 인도일 맞추려고 휴일없이 일하던 도장 작업자 4명 참변
고용부 장관 "중대재해 시 원청 책임묻는 법 개정 진행"
노동계 "다단계 하청 없애고 국민참여사고조사위 도입"

또다시 하청 노동자가 휴일에 일을 하다 산업재해로 숨지는 참사가 벌어졌다. 창원시 진해구 STX조선해양에서 20일 오전 11시 37분께 폭발사고가 발생해 선박 탱크에서 일하던 노동자 4명이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지난 5월 1일 노동절 휴일에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발생한 사고로 하청노동자 5명이 숨지고 26명이 다치는 중대재해가 발생한 지 3개월 만에 또 발생한 것이다.

◇현장 동료 "'펑' 소리에 보니…" = 이날 사고 현장 인근에 있던 한 40대 노동자는 "갑자기 '펑' 소리가 나서 보니, 연기가 피어올랐다"고 설명했다. 5개 안벽 중 4안벽에서 노동자 8명이 특수 도장작업을 하고 있었고, 사고가 난 잔유 보관 탱크(RO 탱크)에서 30∼50대 노동자 4명이 작업을 하다 참변을 당했다. 이 선박은 길이 228m, 폭 32m, 깊이 20.9m였고, 내부 사고 탱크는 길이 10m, 가로 4m, 폭 7m로 290㎥ 크기였다. 그는 "사고 탱크 인근에서 작업 중이었다. 물에 띄워진 배에서 사고자들이 작업을 했는데, 마무리 스프레이 도장 작업 중이었던 것으로 안다. 그쪽 탱크에는 불꽃이 튀는 작업이 없었다. 전기 설치된 게 냄새를 빼내는 팬뿐인데, 거기서 혹시 사고가 난 게 아닌가 싶다"고 조심스레 추측했다. 폭발 사고 직후 소방관과 경찰관이 진화작업에 나섰고 20여 분 만에 불을 껐다. 방진복에 마스크·보호구를 착용한 사망자들은 불에 그을린 채 발견됐다.

20일 오전 창원시 진해구 STX조선해양에서 화물운반선 내 탱크가 폭발했다. 현장에서 소방대원들이 사고 수습을 하고 있다. /창원소방본부

◇조선소 측 "안전관리자 배치" = STX조선 측은 이날 근무자 286명 중 220여 명이 하청업체 직원이라고 밝혔다. 사고로 숨진 이들은 모두 하청업체 소속이다.

사고 선박은 그리스 회사에 10월께 인도할 예정이었다. STX조선 측은 7만 4000톤급 석유·화학운반선인 이 배 인도일을 맞추고자 주말에도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선박 내 15개 탱크 중 선박 후미 쪽 잔유 보관 탱크에서 이날 사고가 났다.

조선소 측 관계자는 "조선소가 회생절차를 밟으면서 공장 가동을 중단했었다. 인도 기일을 맞추지 못하면 벌금을 물을 수 있어서 납기일을 맞추고자 주말에도 일을 했다. 기존 수주한 배 4척 중 거의 마지막 배였다"고 설명했다.

조선소 측은 사고 당시 안전관리팀(HSE) 직원 3명이 조선소 전체를 담당했고, 도장 작업 중인 배에는 직원 1명이 현장을 감독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고용부 장관 "중대재해에도 보고 없어" = 이날 오후 5시 20분께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이 현장을 방문했다. 김 장관은 "언론 보도를 보고 사고를 알았다. 경찰에 신고를 하면 고용노동부에 바로 접수가 돼야 하는데 시스템이 안 돼 있다"며 시스템 문제점도 인정했다. 김 장관은 이날 고용부 직원, STX조선 측 관계자들과 현장을 둘러본 후 문제점을 꼬집었다. 김 장관은 "사고 선박 탱크에 가보니, 노동자 4명이 사망한 곳에 가스를 빼고 있었다. 가스가 차서 사람이 못 들어간다고 했다. 현장을 보존해야 하는데 현장 보존이 안되고 있었다. 현장을 훼손하는 작업을 중단하게 했다"며 현장 조사를 명확히 할 것을 지시했다. 고용부 감독관 등에게 현장 조사팀을 꾸리고, 사고대책본부를 서두르라고도 했다.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이 20일 오전 폭발사고로 현장 노동자 4명이 숨진 창원시 진해구 STX조선해양 사고현장을 방문해 둘러본 뒤 사고선박 앞에서 철저히 수사해 엄중조치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박일호 기자 iris15@idomin.com

김 장관은 사고 원인 규명과 함께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원청이 책임지는 법 개정을 서둘러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원청이 협력업체에 납기일을 맞추고자 무리하게 지시하지 않았는지, 작업장 규칙을 준수했는지 등을 철저하게 조사할 것"이라며 "지금까지 원청이 위험한 일을 다 하청에게 하게 했다. 이제 사망사고 발생 시 책임자가 실형을 받게 하고, 원청의 책임을 철저히 묻는 것으로 바꿀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동계 "죽음의 외주화 탓" = 노동계는 또다시 '위험의 외주화'로 하청 노동자가 죽음에 이르게 된 것에 대해 정부에 구조 개선을 서둘러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이김춘택 전국금속노조 경남지부 조선하청조직사업부장은 "조선소는 다단계 하청 구조다. 하청 노동자가 정규직 4배 정도다. 새 정부 들어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겠다고 했지만, 조선소 현장에서는 먼 나라 얘기다. 하청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최근 정부가 사고 발생 시 원청 처벌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삼성중공업을 보면 박대영 사장은 처벌하지 않고 조선소 소장만 입건됐다. 처벌을 강화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최고 경영자의 책임을 묻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민주노총 경남지역본부는 국민참여사고조사위원회 도입 약속 이행을 정부에 촉구했다. 경남본부는 "지난 17일 정부에서 '중대 산업재해 예방 대책'을 발표했는데 3일 만인 일요일에 진해 STX조선에서 하청 노동자 4명이 산재로 돌아가셨다. 지난 5월 1일 노동절에는 거제 삼성중공업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6명이, 7월 4일에는 마산 양덕천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3명이 돌아가셨다"며 애통해 했다.

이들은 "정부와 국회는 사고 조사부터 재발 방지 대책까지 노조 참여를 보장하고 국민참여사고조사위원회 도입 약속을 이행하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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